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이현 May 07. 2019

손재주와 뚝심



손재주가 있는 사람을 동경한다. 그 재주로 하는 일이 창의적이거나 아름답기까지 하면 더욱 그렇다. 손재주는 도구나 연장을 잘 사용하는 일과 닿아있다. 도구를 쓰는 많은 직업 중 요즘 내가 멋지다는 생각이 든 직업이 하나 있다. 바로 메이크업 아티스트. 어느 백화점이나 1층에 있는 화장품 코너에서 일하는 그분들 말이다. 딱 붙는 까만 가죽바지를 입고 허리춤의 가죽 벨트에는 붓과 같은 화장 도구가 빽빽이 들어있다. 여러 종류의 붓과 색조 화장용 팔레트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을 화가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얼굴을 캔버스 삼아 붓질을 하니 그리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백화점에 가면 그분들이 메이크업 시연하는 걸 종종 볼 수 있는데, 아저씨 주제에 가만히 서서 지켜보기에는 아무래도 뻘쭘해 매번 그냥 지나치지만, 한 번쯤은 끝까지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손재주가  없는 사람이다. 운동 신경, 방향 감각, 운전 실력 등 안 그래도 부족한 게 참 많은데 거기에 손재주도 하나 추가다. 운동화 끈도 남들보다 한참 늦은 나이에 묶을 수 있었고, 아직 풍선도 제대로 묶지 못한다. 딸 애가 풍선 부는 걸 참 좋아하는데, 언제나 묶어주는 건 아내 몫이다. 평생 가도 딸애의 머리를 따 줄 일도 없을 것 같다. 따 본 적도 없을뿐더러, 괜히 도전했다가 머리카락에 짜증만 부리고 끝날 것 같다.


도구나 연장을 사용하거나 기기를 조정하는 것 또한 서툴다. 오죽하면 10년 가까이하는 운전도 아직 서툴다고 느낄까. 오토매틱 차를 운전할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수동 기어를 조작해야 했다면 그냥 포기하고 택시를 타고 다녔을지 모른다.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딸 때는 더욱 와 닿았다. ‘오픈워터’라는 제일 낮은 등급이라 자격증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지만, 여하튼 싸게, 속성으로 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스쿠버 다이빙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파도도 심하고 예쁘지도 않았던 바다에서 첫 경험을 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그 많고 많은 장비들. 우선 시커먼 잠수복을 낑낑대며 입어야 한다. 그리고 산소통을 짊어지고, 또 수경에 침을 퉤퉤 뱉어 닦아서 끼고. 아무리 닦아도 내 수경에는 왜 이리 김이 끼는지... 바닷속에 들어가면 수압에 맞춰 레귤레이터(호흡기)를 계속 조절해야 하고, 또 깊이를 체크해가며 부력기를 조절한다. 서투르게 조작하면 물 위로 올라와 마스크를 벗을 때 압력차 때문에 코피가 나기도 한다. (해 본 지 너무 오래되어서 설명이 틀릴 수 있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이해해 주세요. 한참 배울 때도 헷갈렸거든요…) 이럴 바에는 간편하게 물안경과 커다란 빨대 같은 것만 입에 물고 들어가는 스노클링이 훨씬 좋다. 자유롭게 바다 위에서, 편안히 호흡하며 유유자적 즐길 수 있다.   


한동안 직장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방황을 하며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꼭 조직의 일원이 되지 않아도 충분히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나만의 손기술을 익혀서 어디 가도 먹고살 수 있는 직업.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붓처럼 자신만의 도구를 사용하는, 조금은 창의적이고 미적 감각이 필요한 일. 예를 들면… ‘목수’, 같은 일? 얼토당토않게 귀농을 고민해보기도 하고, 다시 대학에 가서 공부를 좀 더 해볼까도 했으나, 여러 가지로 생각했을 때 목수라는 직업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건축과를 졸업했으니 집을 짓는 게 아무래도 이치에 맞는 것도 같았고, 전국을 누비며 튼튼하고 멋진 목조 주택을 지어 낼 생각을 하니 불끈 힘이 솟는 것 같았다.


파주에 있는 어느 한옥학교에 등록했다. 처음 학교에 가니 큼직한 공구통을 나눠줬다. 톱이며 대패, 다양한 크기의 끌 등이 들어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목수가 된 기분이었다. 선생님은 나무만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분이었다. 멋있는 예술 작품을 만들거나, 전통 한옥의 비법 같은걸 가지신 분은 아니었지만, 목수로서의 자부심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짧은 수업 기간에 집을 짓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고, 가구를 몇 개 만들기로 했다. 못이나 나사 없이 짜맞춤으로 만드는 법을 배웠다. 전동 공구도 가능한 쓰지 않았다. 오롯이 공구통 속의 톱이나 끌과 같은 기본 도구를 사용했다. 아침에 학교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대팻날을 갈았다. 쓰윽 쓰윽.


재미있었다. 고되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고, 옷이나 카시트 한쪽에 뿌옇게 쌓이는 나무 먼지는 싫다기보다 어떤 훈장 같았다. 자로 치수를 정확히 계산하고, 톱으로 재단을 한다. 여유 치를 감안하여 끌로 구멍을 내고, 부품들을 고무망치로 결속한다. 그렇게 전통 창호도 만들고, 사방탁자라는 내 키만 한 장식장도 하나 만들었다.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일요일, 아내와 어린 딸을 데리고 그 선생님을 따로 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목수를 해보겠다는 상담을 하기 위해서였다. 내 옆에 앉아있는 아내와 아기를 본 선생님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누가 지금 잘 다니고 있는 직장을 때려치우라고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 옆에 처자식도 앉아있는데. 나도 참 어렸고 참 한심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목수가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참 어리고 한심했던 내게 그럴만한 배짱은 없었다. 선생님은 이 일이 하고 싶으면 2, 3년은 벌이가 별로 없이 배우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했고,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에게는 목수를 할 만한 재능이나 손재주가 없다고 느껴졌다. 사실 ‘곰곰이’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선생님의 당황한 표정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은 이미 손바닥 뒤집히듯 뒤집혀 있었다. ‘그래, 지금 목수가 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수업 시간에 내가 했던 뻘짓들이 떠올랐다. 창문 살을 만들 때 애먼 곳을 잘라내 처음부터 작업을 다시 한 기억, 대패질이 영 서툴러 끝까지 표면을 매끈하게 만들지 못했던 기억, 끌로 구멍을 너무 크게 내서 조립할 때 결속이 헐거웠던 기억.



손재주가 좋은 친구가 하나 있다. 세 커플이 모여 캠핑을 함께 갔을 때, 다른 친구들이 모두 장을 보러 간 사이 텐트 세 개와 그늘막을 다 쳐놨던 친구다. 내가 이사를 가서 블라인드를 설치한다고 하자 전동드릴을 들고 와 땀을 뻘뻘 흘리며 설치 해준 녀석이다. 그 녀석의 두툼한 손을 보면, 목수는 이런 사람이 해야 하는구나 싶다. 아마 몇 개월 배운 나보다 나무를 더 잘 다룰 것이다. 얼마 전 그 친구를 만나 손재주가 없다는 말을 했다. 목수 수업을 듣고 깨달았다고. 손재주로 먹고 살기는 글렀다고. 그 친구가 대답했다. 손재주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더라고. 처음에는 손재주 좋은 사람이 잘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오랜 한 사람이 잘하게 되더라고.  


맞는 말이다. 나에게 없는 건 손재주가 아니었다. 나에게 없는 건 성큼 발을 내딛는 용기,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뚝심, 그것이었다.

이전 16화 그럭저럭 괜찮은 거 말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