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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현 Jul 01. 2019

샌들에 양말 신기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양말을 벗어던지는 일이다. 사실 요즘은 양말을 신고 있는 게 그렇게 답답하지만은 않고, 특히 겨울에는 발이 시리기 때문에 집에서도 양말을 신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밖에서 신었던 양말은 일단 세탁기 안에 넣고, 샤워를 하고 새양말을 찾아 주섬주섬 다시 신는다. 그래도 얼마 전(삼십 대 초반?)까지만 해도 집에 오면 답답한 양말을 먼저 벗어재껴야 비로소 집 밖의 불편함을 벗고 홀가분해짐을 느꼈다.


여름이 되면 슬리퍼나 샌들을 신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 중학교 몇 학년 때였나, 어느 여름, 남학생들 사이에서 칠부 반바지와 샌들이 선풍적으로 유행을 했다. 나도 적당한 샌들을 하나 장만했다. 샌들을 신을 때의 불문율이 있다. 양말을 신지 말 것.


여름인데, 시원하게 신으려는 샌들에 굳이 양말을 신는 이유가 뭐람. 양말 위에 샌들을 신으면 아저씨 같다고 듣기 전부터, 그 모습은 이미 충분히 어색했다. 유독 나이 든 아저씨들이 꼭 그랬다. 간혹 친구 중에 샌들에 양말을 신고 오면 한참을 놀리거나, 아예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그 해 여름이 지난 후에는 이상하리만치 샌들의 열풍이 뚝 끊겼다. 샌들에 양말을 신지 않아도, 샌들을 신는다는 것 자체가 좀 올드한 것으로 여겨졌다. 샌들의 자리에는 ‘게딱’이 들어왔다. 그 뒤로는 쪼리라고 불리고, 요즘에는 플립플랍이라고 불리는 날렵한 형태의 슬리퍼. 그 슬리퍼를 처음 봤을 때 다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망설이는데 누군가 ‘게딱’이라고 했다. 일본어 ‘게타(げた)’의 변형된 발음이었다. 게딱이라고 부를 때마다 왠지 이 발음이 맞는지 어색했는데, 어느 날부터 ‘쪼리’라는 확실하고 어색하지 않은 명칭이 생겨 반가웠다.


아무리 유행이고, 보기에도 시원해 보였지만 나는 신지 못했다. 처음 신었을 때 엄지발가락 사이가 까지고 불편해서 도저히 신을 수 없었다. 포기하고 슬리퍼를 신었다. 몇만 원짜리 슬리퍼를 차마 사달라고 할 수는 없었고, 그나마 삼천 원이면 살 수 있는 삼선 슬리퍼가 남은 자존심을 지켜줬다. 쪼리든 슬리퍼든 당연히 양말은 금지.


대학에 가서는 큰 맘먹고 브랜드가 있는 슬리퍼도 샀다. 아디다스나 나이키보다는 저렴한 스포츠 브랜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왠지 가벼운 쪼리를 신어줘야 진정한 여름 패션의 완성처럼 느껴졌으나 도리가 없었다. 발가락 사이의 피부가 까진 채 쪼리를 신은 경험이 있다면 절대 다시 신을 수는 없다.

  

아무래도 모양새가 나지 않는 슬리퍼 대신 좀 더워도 로퍼나 보팅 슈즈를 신었다. 여기에도 양말은 금지였다. 아무래도 여름 패션에 양말은 상극인가 보다. 대신 신발을 벗으면 엄청난 발 냄새가 기다리고 있었다. 발 냄새는 신발안에 감출 수 있었지만, 양말은 아니었다. 아저씨로 등극하기보다는 발 꼬랑내를 택했다. 얼마 안가 발목양말이라는 기발한 상품이 나왔지만 썩 내키지는 않았다. 싸구려 발목양말은 신발 안에서 자꾸만 벗겨졌고, 무엇보다 여전히 양말이 신발 위로 노출된다. 그냥 계속 발 냄새를 감추는 쪽을 택했다.


다들 땀 차지 않나요?

몇 년 전, 스포츠 샌들의 유행이 다시 돌아왔다. 외국에 가면 배낭여행족들이 많이 신고 다니던 브랜드였다. 쪼리는 아무래도 불편하고, 슬리퍼는 영 태가 안 나고, 양말 없이 운동화나 구두를 신으면 땀이 차고, 발목양말을 신으면 자꾸만 벗겨지고, 그렇게 진퇴양난의 여름을 십 년 이상, 이십 년 가까이 보낸 후였다. 반가운 마음에 덜컥 한족을 사서 여름마다 꺼내어 신는다.


그런데, 샌들도 점점 불편해진다. 바람이 시원하게 통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양말 없이 발바닥과 신발이 직접 닫을 때 왠지 끈적한 느낌이다. 땀 때문인지, 몇 년째 제대로 빨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신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시 보니 샌들에 양말을 신은 아저씨들이 왠지 편안하고 푸근해 보인다. 나도 한번 시도해볼까? 뭐, 양말도 패션인 시대인데, 누가 알겠는가. 샌들에 양말, 패피의 상징이 될지.


정말로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래도 삼십 대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마지막 여름이다. 삼십 대의 마지막 여름.



표지 이미지 : The Creative Exchange on Unsplash

본문 이미지 : Yuriy Kleymeno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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