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이현 Jul 26. 2019

입맞춤 : 8박 9일의 그리움

출발하는 날(번외편)

  결혼을 하고, 딸이 태어난 후로 가족과 이틀 이상 떨어진 적은 없었다. 출장이 많지 않은 부서에 있다 보니 하룻밤을 자고 오는 지방 출장조차 어색하다.  


  이번에는 무려 9일이다. 딸 승이는 내가 해외출장을 간다고 얘기한 날부터, 매일같이 아빠가 언제 떠나는지, 며칠이나 있다 오는지 확인한다. 어느 날은 저녁을 먹다 문득 울먹임을 삼키며, ‘선물 꼭 사와라 잉!’ 이런다. 가끔 뭔가 힘줘서 말할 때 나오는 말투다. ‘잉!’ 어디서 배운 말투인지 모르겠지만 귀엽기도 하고, 더 가까운 사이로 느껴진다. ‘알았다 잉!’이라고 대답하고 같이 까르르 웃는다.

  가끔 주말 밤에 친구를 만나러 나가면 전화를 해서 보고 싶다고 우는 녀석이다. 평일 밤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주말 낮에 내내 같이 있다가 저녁때 혼자서만 쏙 나가면 꼭 그런다. 그냥 좀 훌쩍이는 정도가 아니고 ‘엉엉’ 운다. ‘나라를 잃은 것처럼 운다니까, 하하.’ 전화를 끊으며 옆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는 친구들에게 하는 말이다.


  승이의 전화를 받은 것은 리스본 공항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할 때였다. 한국 시간으로 저녁 9시쯤.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전화는 ‘아빠 어디야?’로 시작되었다. 이미 엉엉 울고 있다. 아빠 보고 싶어, 언제 와, 몇 밤 자야 돼? 그야말로 서럽게도 운다. 하룻밤 떨어져 있었다고 이렇게 울어주는 사람이 또 있을까? 짠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혼자 온 것이 미안하기도 하다.

  ‘꼭 나라를 잃어버린 것처럼 우네요, 하하.’ 택시 안에서 내 통화를 다 듣고 있던 동료들에게 말했다.


  한국, 공항버스를 타러 가는 시각, 딸은 저녁을 먹고 친구들과 트램펄린이 잔뜩 설치된 키즈카페에서 놀고 있었다. 반 친구들 대부분과 함께 놀고 있는데 아빠를 배웅 나온다는 것은 초등학교 1학년생에게는 무리다. 놀고 있는 키즈카페에 찾아가서, 잘 다녀올게, 재미있게 놀아, 선물 사 올게, 했다. ‘응, 알겠어, 잘 갔다 와 아빠!’ 하고 트램펄린을 방방 뛰며 총총히 사라진다. 기분이 이상했다. 매일같이 부대끼던 아이와 앞으로 열흘 가까이 보지 못한다.

  아내가 공항버스를 타는 곳까지 배웅해줬다. 백팩을 메면서 차에서 내리고, 뒷 트렁크를 열어 20인치짜리 기내용 캐리어를 꺼내고, 잘 갔다 올게, 한다. 혼자 공항버스를 타려니 어색하다. 8박 9일 동안 혼자서 아이와 고군분투할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아내는 승이처럼 가볍게 총총 사라지지 못했다. 캐리어 손잡이에서 손을 떼 가볍게 포옹을 하고, 어색하게 입을 맞췄다. 어떤 온기가 전해져 왔다.

  8박 9일 동안 머금을 그리움이었다.

1년 전, 가족여행의 짐_ⓒ이이현


표지 사진 : 스위스 어느 기차역의 시계_이이현

이전 02화 출장 혹은 여행 : 엄마 오리의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