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1
암스테르담을 거쳐 리스본에 도착했다. 예약해 둔 아파트형 숙소에 짐을 풀고 나와 점심을 해결할 곳을 찾아 기웃거리다, 처음 눈에 띈 허름한 식당에 들어갔다. 팔십 세는 거뜬히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주방을 맡은 곳이었다. 우선 낯선 메뉴판에 적응해야 했다. 메인 요리는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되어 있었다. Meat 그리고 Fish. 리스본은 바다에 접해있으니 생선을 먹어볼까? 서로 다른 메뉴를 적당히 골라 나누어 먹기로 했다. 아들인지 손자인지, 혹은 단순히 홀에서 일하는 직원인지 모를 남자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불과 어제 점심까지만 해도 회사 앞의 북적거리는 백반집에서 점심을 먹은 터였다. 인원수를 말하며 들어가 경쟁하듯 자리를 잡고, 메뉴를 한두 가지로 재빠르게 통일해서 옆 테이블보다 먼저 주문해야 하는 곳. 음식을 주문하다가 잠깐 머뭇거리면, 아직 주문할게 남아있는데도 바쁜 아주머니는 어느새 옆 테이블의 빈 접시를 치우고 있는 곳.
축구를 좋아할 것 같아 보이는, 직원인지 가족인지 모를 그 남자의 시간을 가능한 빼앗고 싶지 않았다. 이국땅에서 그들의 금쪽같은 시간을 빼앗아 민폐를 끼친다면 이 얼마나 코리아의 망신이란 말인가. 메뉴판 위의 포르투갈어와 영어로 쓰여있는 이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this and this, and… 하는데, 메모를 하려던 그 남자가 Speak English, I understand English 이런다. 흠, ‘this and this’가 피차 편하고 빠르지 않나? 생각하며 다시 영어로 음식 이름을 연달아 내뱉는데 그가 다시 말을 막는다.
맥주 세 잔과 콜라 한 잔, 까지 단숨에 말할 작정이었다. 음식 이름을 모두 말했을 때 주문이 끝났는지 알고 돌아서면, 다시 불러 세우기 미안하니까.
Easy, easy.
그러니까 그 직원인지 가족인지 모를, 잠시 후 우리가 밥을 먹을 때 다른 손님들과 축구 얘기를 하던, 나지도 않는 머리를 아예 삭발해버린 그 남자가 한 말이었다. 의역하자면, 숨 좀 쉬면서 얘기해, 정도의 느낌이랄까.
아 나는 지금, 조금은 더 여유로워도 되는 곳에 와있구나.
8박 9일의 여행은 그렇게, 이국의 느긋한 호흡법을 익히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