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둘째 조카는 토요일 오전 중 우리집에 자주 놀러온다. 형이 스포츠하고 있는 동안에 이모네 놀러가고 싶다고 한다. 중간에서 언니와 만나 조카를 픽업하고선 손을 꼭 잡고 산책을 했다. 점심까지 먹여 보내기로 했는데, 페퍼로니 피자는 전화로 주문해놓고 가는 길에 조카와 수풀이 우거진 그린그린한 공원을 걸었다. 가을이구나!. 이 내음새... 조카와 걷는 그 길에 잠자리도 우리의 주위를 맴돌고 호랑나비도 우리를 반긴다. 그러다 조카와 끝말잇기를 했다. 조카가 이.로 시작하는 단어를 말할 차례인데 나는 이사.를 생각하곤 힌트를 준다고 "어디에서 어디로 보통은 집을 옮기는거?"라고 했더니 귀여운 조카 왈, "이리와????ㅋㅋㅋㅋ" 어린이는 시인.이라는 헤세의 말처럼, 정말이지 아이의 순수에, 어린이의 순수에. 내 마음은 그렇게 몽글몽글해졌다.
가을바람은 어쩜 이토록 아름다울까? 이 공기, 이 내음새, 이 분위기, 이 무드... 모든 것이 조화롭기만 하다. 유독 가을이면 나는 왜 이토록 더 진한 생명력을 느끼게 되는 걸까? 10월 중순쯤 이사를 가려고 마음 먹었는데 나는 어쩜 이리도 태평한지. 어떻게서든 되겠지.하는 마음과 살아보니 경험적으로 인생은 결코 내 마음대로,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차제에 너무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쫄 필요가 없다는 것.때문인지. 9월 말 나는 이토록 여유롭다.
어떻게서든 되겠지. 어떻게서든 흘러가겠지. 걱정마.하는 마음이 있다. 실은 평소 간소하게, 단출하게 사는터라 이삿짐도 크게 부담이 없거니와 아직은 싱글이라 어디로든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것이 날 좀 더 자유롭게 하는 것도 있다. 날씨가 제법 서늘해졌다. 곧 겨울이겠구나.싶고 겨울옷을 꺼내놓아야 겠다.는 생각과 엄마에게 보내려고 사놓은 겨울 패딩과 겨울 패딩 베스트를 내일이면 보내야겠다... 이런 저런 생각과 계획들이 사사삭 정리된다.
언제 이렇게 서른이라는 계절이 지났나? 언제 이렇게 눈깜짝할 새 마흔을 맞았나?싶은 것이 있다. 문득 떠오르는 까마득한 어린 시절, 부모님의 모습, 십대, 이십대의 나, 그 시절의 나, 그 계절의 나...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마흔이라고 무엇이 다를까?싶지만서도 내심 아쉽고 서운한 건 어쩔수가 없다. 누구에게나 젊음은 공평한 것이 아니던가? 이젠 어떻게하면 다정하고 친절하고 곱게 나이들어 갈 수 있을까?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갈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 시절의 젊음과 아름다움도 다 한 때요, 지금의 아름다움도 이 시절만의 타는듯한 아름다움과 내적 성숙으로 켭켭이 쌓인 젊음과 아름다움이 있다. 나이 들어가면서 아쉬운 점이라곤 실은 없다. 당연한 자연의 이치기도하고 외려 지금의 지혜와 통찰이 주는 안정감과 평온함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그 시절 수많은 고전에서, 고전 작가들이 말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것,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라."는 말이 이젠 무엇일지 왠지 알 수 있을 것만같은, 닿을 듯 말듯한 그런 지혜와 앎이 내게 편안함을 준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의 첫 페이지를 읽어내려가는 그 순간, 마치 흡입되듯, 그 세계가 날 빨아들이듯 나는 그곳에 흠뻑 빠졌던 그 순간의 기억이 선명하다. 그 자리에서 몇 시간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책의 절반을 읽어 내려갔고 가을 바람결에 천변을 걸으며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감탄하며 넘기던 그 기억, 그 내음새, 그 향기, 그 전율, 그 황홀경... 내면으로의 침잠이 나이 들어갈수록 더욱 깊어진다. 그 심연으로의 다이브가 내 외면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주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분명 이십대 젊은이들만큼의 생기는 잃었을지 모르나, 내 외면에서 흘러나오는 나만의 고유의 분위기랄까. 내면의 성숙이랄까. 심상이랄까. 사색하고 사유하고 질문하는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그 무언가. 내 눈동자의 반짝임과 깊이... 이런 것들에 관심이 있다.
80년대 후반생의 낭만, 어릴적의 아날로그적 감성은 그대로 간직한 채, 청년시절의 디지털 감성의 경계를 살아온 세대, 그리고 나... 그래서 난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실은 나는 옛날 감성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성향이라, 지금도 여전히 손편지가 좋고 90년대, 2000년대 감성을 좋아한다. 그 낭만을 가슴에 품고 내 방식으로 삶을 해석하고 그 낭만에 취해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한다.
내가 나이들어감에 따라 내 부모님의 나이도 그마만큼 들어가고 부쩍 연약해진 듯한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울컥 할 때가 있다. 다가올 내 죽음보다 부모님의 그것이 내게 더 슬프고 아프게 다가오는 것들... 그런 나이가 되었구나.싶은 것이 뭐랄까. 서글프다기보단 참 인생이란 무얼까? 인간이란, 우리는 왜 태어나는 것일까? 왜 죽는 것일까? 하는 물음이 인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되돌아보게 되고 인생 뭐 그리 두려운가? 불안한가? 어차피 나는 죽어가는 존재인 것을. 매 순간을 사랑해야지. 즐겨야지. 아쉬워하지 말아야지. 하고 싶은 것들을 해봐야한다는 용기가 솟는다.
부쩍 내 안에서 솟는 말이다.
"흘러가겠지. 흘러가리라."
가을 바람에 이토록 살랑이는 내 마음,
간질간질한 걸 보니, 이젠 알에서 나와야 하지 않는가?
내가 사랑하는 헤르만 헤세의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는 말이 명징하게 떠오르는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