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살면서 좋았던 풍경들, 황홀경, 황홀하고 아름다웠던 기억들, 추억들, 순간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부쩍 잦아졌는데, 이 불러옴이 이 가을과 함께 내게 짙은 그리움, 기분좋음, 행복감, 즐거움, 사랑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2018년 여름 스페인 톨레도의 성벽에 앉아 중세 시대 그대로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그곳의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내려다보던 일이 떠올랐다. 유선 이어폰을 길게 늘어뜨린채, 긴 머리를 가녀리게 묶고 여름 슬리브리스 상의와 베이지 롱스커트와 푹신한 샌들, 오르는 길에 산 생수 1.5리터... 당시 방황하기를 거듭했던 내게 그곳은 잠시나마 쉼터였고 안식처였다. 그 아름다운 풍경이 내면으로의 침잠을 더욱 수월하게 했다. 거짓말 같은 시간.을 반복재생하고 그렇게 나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채 몇 시간을 사색에 잠기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 순간의 기억이, 잔상이 지금껏 날 이토록 행복하게 한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난 참 행복한 사람이야. 난 참 행복한 사람이었어.라고 한다는 것. 황홀경, awe의 경험이 이토록 아름다운 이유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김에 오랜만에 거짓말같은 시간.을 재생하며 나왔다. 벌써 8년 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나는 그 시절 왜 그토록 방황했는지. 홀로 아파했는지. 홀로 심각했는지.하는 아쉬움도 있다. 지금도 가장 좋았던 여행지가 어디였냐는 질문을 받으면 고민없이 스페인이라고 답하곤 하는데, 퇴사 직후 홀로 떠난 한 달 간의 스페인 여행이 내게 여전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지금을 살게 한다. 그로부터 3년 뒤 또 다시 떠난 스페인, 언제 또 스페인에 가보게 될까?하는 그리움이 있다.
톨레도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느꼈던 감정들, 사색이 내 몸 속에 알알이 박혀있는 것은 아닌지. 그때만해도 참 젊었는데 나는 왜 마치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방황했는가?싶지만 지금은 그저 그 어떤 자조나 자책보단 수용과 연민의 마음같은 내 자신에게 보내는 온화환 미소를 짓게 됐다.
언니네는 오늘 제주 엄마댁으로 출발했고 추석 연휴동안 가족들과 식사만 하고 나는 홀로 쉬기로 했다. 사놓은 겨울 패딩과 겨울 패딩 베스트를 보내려고 9시에 우체국에 다녀왔다. 보내고 난 뒤 곧 엄마에게 닿을거라 생각하니 이토록 마음이 몽글몽글할 수가 안정될 수가. 부모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을까.싶지만 분명한 건 부모님은 자식에게 크게 바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바라는 것이라곤 그저 자식이 조금 더 편안한 삶을 살길, 제 살길을 잘 찾아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효도.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글은 당최, 도통 이런 의식의 흐름으로 씌여지는 걸 어떡하나.싶고 그저 생각이 일어나는대로, 내가 쓰고 싶을 때 쓰는 그 자유로움과 사색과 사유를 글로 풀어내는 그 언어의 조합이, 그 다른 어떤 것보다도 날 쉬이 위로하는 것이 있다.
어릴적 내가 보아왔던 학자나 유명인들의 별세 소식을 들으면서 더욱 알게 되는 것들... 그래,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우리는 분명 죽는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 서른 중반부터였을까. 죽음이 아주 명징하게 인식되고 알아차려지고 그래서 화가 없어지고, 화낼 일이 없어졌다. 그래서 무엇하나.하는 생각과 우리 모두는 죽어가는 존재, 그러니 옳고 그름이 도대체 무엇이 중요한가? 친절하기만 하기에도, 사랑만 하기에도 너무도 찰나인 것을.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마흔이 두렵다기 보다, 외려 기대되는 것도 그 어느 때보다도 죽음을 인식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두려울까? 무엇이 불안할까? 나는 무엇에 집착하는가? 집착해서 무엇하나?... 하는 것들. 나이 들어가며 좋은 것 중 하나는,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가 줄었다는 점인데, 사람과의 관계도, 일도, 모든 면에서 내려놓아지고 기대하지 않게 되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고 그 무엇보다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귀기울이게 되면서 보다 직관적인 삶을 살게 된다는데 있다.
성시경 노래, 김동률 노래, 전람회 졸업, 기억의 습작, 여전히 아름다운지... 어릴적부터 들어왔던 그 시절의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의 지난 시절이 아련해지고 아늑해지고 때론 서글프고 슬퍼지고 쓸쓸해지는 것이 있다. 광화문 일대, 분당 율동공원... 곳곳에 서려있는 지난 연애의 순간들, 지난 연인들도 문득 스쳐지나갈 때가 있다. 그럴때면, 그들도 잘 지내고 있겠지? 그땐 참 그랬지^^ 흐뭇하게 미소짓게 되는 것도 있고 그들 모두 평안하길, 행복하길 하는 마음으로 끝을 맺곤 한다.
모든 시절은 그것이 슬픔이었든, 우울이었든, 방황이었든 그 어느 것 하나 아무 것도 아닌 시간은 없었다. 그로 인해 나는 나아갈 수 있었고 사색하는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모든 순간은 현재였고 삶은 오직 지금 이 순간 뿐이란 걸,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그 앎을 알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나이 들어서일까. 부쩍 살랑이는 가을 바람에도, 노래를 들으며 내 앞에 펼쳐진 풍경들을 아늑히 바라보고 있다보면 노래 클라이맥스 부분과 함께 갑작스레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그 붉어짐이 나는 외려 감사하고 감동으로 밀려온다. "아, 삶이란 이런 거였구나! 이토록 찰나구나!"
삶과 죽음은 하나다. 삶과 죽음은 맞닿아 있다. 삶이 죽음이요 죽음이 삶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만을 붙잡고 살아야 한다.
갈수록 삶이 더욱 아름다워지는 마법.
마치 인간이란 그 자신을 이렇게 알아가기로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