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노을 아래 어느 성벽 위 누가 먼저랄 거 없이 두 손 꼭 잡은채 다뉴브 강 아래를 내려다보던 나와 그가 있었다. 이따금씩 스쳐 지나가는 진한 사랑의 기억이기도 한데ㅡ 그도 어느새 마흔 중반이 되었구나.싶을 때가 있다. 여전히 멋진 중년이 되었겠지.싶고 그런 기억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절로 미소짓게 되는 것이 있다.
추석 연휴 이토록 평온한 날일 수가 없는 이 순간, 문득 그 시절의 사랑이 떠오른 것도 뭐 그럴 수 있지.싶고 내게 절로 이는 생각들에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도 판단하지도 그저 있는 그대로의 바라봄이다. 서른 중반이후 나는 더욱 깊숙히 내면으로 들어갔고 또 어느 해엔 하루도 쉬지 않을 만큼 열심히 일에만 집중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고 눈 떠보니 마치 서른 아홉, 곧 마흔이 되었구나.싶은 또 그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만큼의 놀람과 묘한감이 있다.
오늘 문득 왜 그때가, 그 시절 사랑이 떠올랐는지. 사랑.에 어떤 로맨틱한 걸 부여하지 않은지 꽤 되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서로가 만나 사랑을 하고 그런 추억이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 아름다운 것이다. 두 손 꽉잡고 그의 어깨에 기댄채 다뉴브 강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 순간이 내 가슴 한 켠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실은 내가 경험하는 그 모든 순간들이 이토록 감사하고 행운이란 생각을 한다. 우울감이 밀려올 때면 어김없이 호흡을 통해 들숨과 날숨을 통해 내가 살아있음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린다. 들숨은 나의 생이요, 날숨은 언젠간 나의 마지막 숨일 것이다.
요즘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나는 결혼을 왜 아직 하지 않았을까? 스스로에게 묻곤 하는데, 실은 묻게 되는데, 실은 정말이지 어쩌다보니.가 맞겠다. 결혼을 하겠다.안하겠다.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고 어쩌다보니, 이렇게 이렇게 지나와보니 절로 그리 되었다는 것밖엔.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주변을 보면, 요즘은 정말이지 나도 이젠 결혼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곧 마흔.이라는 사실도 실은 내게 그 어떤 장애가 되지 않는다. 마흔.이라고 왜 결혼을 못할까?하는 생각과 그 어떤 것도 분별이라는 생각과 인연은 있다.는 생각도 있다.
참 많이 방황하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 시절, 스물 후반, 서른 초반에 결혼을 했더라면 어땠을까?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내 대답은, "아서라, 그때 결혼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나를 모르는데, 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데, 나라는 세계를 탐구해보지도 못했는데 내가 결혼이라... 나에게도 그에게도 서로에게 모두 다행이었으리라.싶다.
나이 들어가니, 서른 후반을 지나오니, 내가 지금껏 결혼하지 않은 것.이 마치 예정되어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아직 더 배워야 할 게 남았구나.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라는 거구나.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진짜 내 인연이 나타난다는 걸 이런 방식으로 자연은 날 알게하려는 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그 시절 사랑한 지난 나의 연인들에게도 고맙고 그들 역시 건강하기를 평안하기를 행복하기를 바라고 나와 그들 역시 이 생에서 한 번을 보았을 인연이었구나. 그래서 더욱 그 시절인연에 감사하게 된다.
마흔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건, 그러다 결혼도 생각해보는 건 어쩌면 내 마음도 그마만큼 안정이 되었다는 뜻이겠지. 평온해졌다는 뜻이겠지. 고요해졌다는 뜻이겠지.싶다. 그 안정감이 날 더 여유롭게 하는 것도 있고 날 더 깊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하지 않을까.하는 부분이 있다.
카페에서든 길거리를 지나가다가도 어쩌다가라도 나와 우연히 눈을 마주치게 되면 눈을 떼지 못하고 쳐다보는 사람도 있고 돌아보는 사람도 있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나의 눈, 눈빛.이 아닐까.생각하게 된다. 꽤 오랜시간 이어져온 때론 지리멸렬하게 극복해낸 나 자신과의 대화와 내면의 성숙이 어쩌면 이제서야 비로소 외면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싶은 생각도 있고 나의 젊음과 예쁨은 점점 희미해가지만 나의 눈빛만큼은 외려 이전보다 더 깊어지고 맑아지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겐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있다.
옷장을 열어보면 이젠 커리어우먼 스타일이나 다소 화려한 것들은 정리한지 오래고 베이지, 브라운류의 모노톤이 대부분이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이목구비의 화려함 덕분에 이국적이다라는 말을 어릴적부터 들어왔는데 이젠 그 화려함이랄까. 그런게 스스로가 부담스럽고 내 마음에서 원하지 않게 됐다. 수더분하고 수수하고 빈티지스러운 모습이 내게 안정감을 준다.
나의 내적 깊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남의 시선일랑은 신경쓰지 않게 된다. 남과의 비교도 실은 내게 의미없는 것이다. 내가 편안하면, 내가 좋으면 되는 것. 유한한 삶에서 내가 선택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고 친절과 연민, 사랑, 수용, 감사가 더 깊어진다. 이 얼마나 다행인 것인지. 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지금 이 정도의 마음이 되어야지만이 나는 결혼하더라도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어쩌면 나는 이렇게 조금은 늦은 나이가 되어서야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닐지. 그것은 곧.이 되지 않을런지.하는 직감이 든다. 그래서 외려 더욱 나의 지나온 모든 시절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다시 사랑하게 된다면, 나의 내면의 빛을 알아봐주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그것 역시 나의 몫이겠다. 매력이란, 그 내면의 깊이란, 그 내면의 빛이란 나 매력적이에요.라고 말하는 직접적인 방식이 아닌 절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내면이 건강하면, 아름다우면 나의 외면은 절로 빛이 날 것이요, 절로 드러날 것이란 믿음이 있다.
어제 아침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다 허리가 구부정하신 할머니가 비를 맞고 걸어가고 계셨다. 그러다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셨길래 나는 성큼 다가가 할머니와 함께 우산을 썼다. 할머니께선 고마워하시며 횡단보도를 걷는 내내, "참 고마워요, 고마워요. 운수 좋은 날 되세요. 좋은 하루 보내요..."라고 하셨다. 나는 돌아와 다시 버스를 타고 가면되는 일, 할머니 가시는 길에 조금 더 우산을 함께 쓰고 갔다. 연신 고맙다고 말을 하시는 할머니를 배웅하며 돌아서는 길,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 속에서 나는 마음 속으로 "나도 언젠가 할머니의 나이가 되겠지. 인생이란 무얼까? 이토록 찰나인 걸!"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 따뜻함을 안고 버스를 탔다.
나는 여전히 모른다. 그치만 인생이 이토록 찰나.라는 것만은, 지금 이 순간.뿐인란 걸 알아차릴 뿐이다. 지금의 나의 사색과 사유와 통찰이 가져다주는 지혜...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분명 이전보단 성숙한 사랑을 하게 될 것 같다. 사랑은 내어주는 것. 상대가 그저 평온하고 편안하고 평안하고 행복하고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 내게 사랑.은 이제 그런 것이 되어버렸다.
이전엔 지나가다가도 "아름다워요. 아름다우십니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는데, 예쁘다는 말보다, 아름다우십니다.라는 말보다 이젠 "눈빛이 아름다우십니다. 눈빛이 매력적이세요."라는 말이 더욱 반갑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분명 나이 들어가고 있구나.를 실감하게 되는 서른 아홉, 마흔의 어딘가에서 내가 관리해야 할 것은 내가 신경써야 할 것은 눈, 눈빛이다. 내면이 외면이고 외면이 내면이다. 내면의 확장이 외면의 드러남으로, 나의 그 분위기를, 그 빛을 알아봐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도 그와 같이 그 자신의 분위기를, 그 빛을 알아본다면 성숙하고 편안한 사랑을 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