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아름다운 것들에 대하여

by Aarushi

부쩍 추워진 이 날씨가, 이 추위가 나는 왜 이토록 반가운지. 나이 들어갈수록 겨울이 어쩜 이토록 좋아지는지. 모든 것은 변하는 것이라지.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일하러 가기 전 한 시간 정도 카페에서 차도 마시고 글도 쓰고 캘린더와 수첩에 일정 체크도 해야지싶었다. 털이 복슬복슬 달린 짙은 밤색 롱 가디건을 걸쳤다.


차안의 창문을 양쪽으로 여니 차가운 공기가 날 기분좋아지게 했다. 운전하는 내내 parachute, let go 노래를 들으며 다시금 생의 의지.를 다지며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이 아름다운 하늘과 겨울의 공기에 감사해했다. 따뜻한 말차.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 여유조차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나는 죽어가고 있음을 인식하는 삶은 이토록 이롭다.


날씨가 차가워져서인지. 겨울이 왔구나.라는 생각에서였을지. 실은 그 시절의 겨울 공기가 떠올랐던 것이겠다. 어제 오늘 문득 그이 생각이 났다. 그 겨울에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아름다운 추억이 많아서인데, 나는 유독 그 시절의, 그 도시의, 그 낮과 밤의, 그이와 함께 했던 순간들에 대한 진한 아름다움, 따뜻함, 감사함, 행복함이 있다. 그때를 떠올리기만해도 지금도 여전히 절로 미소짓게 되는 날 볼 때면, "너 진짜 그때 행복했구나! 그때 참 좋았지...^^"한다. 생각해보니 그이 나이가 당시 39이었으니 내가 딱 그이 나이가 됐다.


멋쟁이였고 지적였고 영어와 불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던 그와 나는 종종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시크한 외모와는 다르게 내겐 무척이나 다정했던, 내겐 한없이 아이같았던 그이 생각이 난다. 나와 인연이 닿았던 연인들 그 누구보다도 그이와는 서로가 인생에서 한 번은 만났을, 만나야했을 인연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되지 않는 우연과 필연... 그와의 연애를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누나는 현직 판사로 밀라를 임신했을 당시 서초동 법원으로 연수를 간적이 있다고 했다. 밀라는 태권도를 배운적이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서로가 한 눈에 반해 사랑을 하게 되고 그 순간만큼은 이 우주 우리 둘 뿐 인것만 같은, 온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마법. 사랑하는 자의 특권이겠다.


이따금씩 그이가 떠오를 때면, 그이는 결혼을 했을까? 잘 지내고 있겠지? 그에게 참 고마워.한다. 그와 그의 가족들이 항상 건강하기를, 평안하기를, 행복하기를.바란다. 살면서 잊지못할 사랑과 행복을 경험하게 해준 그와 가족들에게 감사하다.


아주 오랜만에 그 시절, 그때의 앨범을 들여다봤다. 그의 반려견 막스도 잘 지내고 있겠지.싶고 모든 사진들이 날 미소짓게 한다. 막스와 함께 내 왼쪽손은 그이 오른쪽 외투 주머니에 쏙 넣고 베오그라드 시내, 동네 밤산책을 나가곤 했다. 내가 시간이 될 때는 누나의 9살난 딸 밀라의 음악학교로 픽업을 가기도 했는데... 많이 컸겠구나.싶고 내게 한없이 따뜻하고 많은 사랑을 주셨던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잘 지내시겠지.싶고 잔잔하면서도 깊은 그리움이 밀려왔다. 옷에 관심이 없는 나와는 다르게 옷에 관심이 많고 스타일리쉬했던 그이의 옷을 빌려 입는 날이 많았는데 가디건이며 외투며 걸치는 것마다 고급스럽고 잘 어울렸던 기억이 난다.


다뉴브강과 사바강이 흐르는 성벽 위에서 두 손 꼭 잡고 아무 말 없이 지는 노을을 한참을 바라봤던 그 순간도 내겐 잊지못할 아름다운 추억이 됐다. 밤산책을 나가다 home style shop 쇼윈도에 있는 전구가 예뻐 잠시 보고 지나쳤는데, 다음날 주문해놓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치즈 케이크를 잘도 사왔던 사랑할 땐 누구나 그렇겠지만, 거창한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구나, 존중하고 있구나...하는 감정이 자신을 이토록 아름답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아주 작고 사소한 그러면서도 다정하고 따뜻하고 친절한 그 모먼트들이 켭켭이 쌓여 그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미소짓게 했다는 사실이, 그는 분명 내게 좋은 남자.였다는 걸 나는 안다.


아주 추운 겨울, 꽁꽁 얼 것 같은 날씨에 그의 운동을 따라 나선적이 있는데, 철봉이며 맨몸 운동을 하는 그이를 보며 서로 좋아 웃느라 외려 그의 운동을 방해하는 것이 되어버렸던 기억도 선명하다. 그의 친구들과의 만남도 참 좋았다. 저녁 초대를 자주 받았는데 친구네 부부와 함께 와인도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 한 번은 초대를 받아 간 집에서 내 소개를 해주고 초대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그가 나중에 이야기해주길 저 신사는 전 유고슬라비아 B사 대표였다고 이야기를 해주기도 마당발이었던 남자친구와 함께 다니면 어딜가도 아는 사람이었고 휙 지나가더라고 서로가 인사를 주고 받는 것이 나는 참 신선했다.


그와 중학교 동창이었던 엘레나 부부와도 자주 만났는데, 엘레나는 내게 늘 말했다. "샤샤가 널 많이 좋아해." 엘레나 남편은 남자친구와 변호사 동료기도했고 래퍼도 하고 꽤 유명한 인사라고 했다. 엘레나와 나는 은행원이었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여배우같았던 남자친구의 어머님은 늘 나를 불러 저녁을 해주셨고 함께 와인도 마시고 함께 남자친구의 어릴적 앨범 사진도 보고 어린 시절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늘 살뜰하고 따뜻하게 챙겨주셨던 쇼핑도 함께 나가고 그때 그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한다. 어머님과 아버님, 누나, 친구들 모두가 우리가 결혼하기를 바랐고 결혼할거라 생각했다. 결국 우린 함께 하지 못했지만, 내가 그이를 생각하면 무척이나 절로 미소짓게 되는 것처럼 그이도 내가 그런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싶다. 내게 아름다운 추억과 사랑, 행복을 선물해준 그가 늘 평안하기를, 늘 건강하기를, 늘 행복하기를.


그 시절 추억을 이렇게 꺼내자면 끝이 없을지도 모를만큼 잔잔하면서도 깊으면서도 강렬한 것이었다. 이렇게 아주 조금씩 풀어내는 것만으로도 내겐 사랑의 에너지가 넘친다. 그 시절 그 겨울의 밤산책. 그 차가운 공기가 오늘의 이 차가운 공기와 맞닿아 그 시절 그를 떠올리게 했다.


사랑은 그런 것. 서로의 품에 서로가 우산이 되어주는 것. 날 아름답고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눈빛 그리고 행동. 서로가 보호받고 있는 느낌. 그것이면 된 것이다.


또 다시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시절과는 또 다른 결일지 몰라도 나는 분명 그때와 같이 따뜻한 사랑을 하게 되지 않을까. 사랑은 한계가 없다는 것, 경계가 없다는 것. 사랑은 내어주는 것. 상대가 평안하기를 바라는 것. 서른아홉의 사랑은 내게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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