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harma, 마흔이 되어서야 비로소

by Aarushi

차가운 이 계절의 공기가 내게 생기를 불어 넣는 건 왜일까. 따뜻한 티 한잔이면 충분한 아침이 되는 그 계절이 되어버렸다. 티에 미엘 한 스푼이면 호사스러울만치 따뜻하고 다정한 아침이 되는 마법. 무너졌던 기운이 조금씩 회복되는듯하고 이번주부터 부쩍 기운이 차려지고 상쾌한 기분이다. 나이 들어가며 좋은 점 중 하나는, 참 많이 내려놓게 된달까. 그것은 어떤 포기보단 받아들임. 수용에 가깝다.


서른 중후반, 아니 어쩌면 마흔부터가 실은 진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인간은 꼭 한 번은 자기 생에 그것이 좌절이든 실패든 우울이든 고난이든 역경을 겪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 역경을 딛고 난 뒤에라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궁금해하고 질문하고 인생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닌가. 아마 그 즈음이란 마흔 언저리가 아닐까.싶다. 사람마다 다를진대, 나의 경우 서른에서 지금까지 10년의 세월을 나 자신을 알아가는 처절한 과정이었다. 그렇게 마흔 가까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를 수용하는 법을, 받아들이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지리멸렬했던 그 시간을 지나고 나니 그 모든 것은,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내게 큰 선물이었음을, 행운이었음을, 축복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어느 것 하나 날 성장시키지 않은 것이 없었고 마치 카르마 인연처럼, 그렇게 어쩌면 기가막히게 예정된 고도화된 것들이 아니었을까.싶다.


그것이 사랑인연이었든 무엇이었든간에 나와 만난 모든 인연은 결국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나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등장한 것이었음을 나는 알게 되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필연을 가장한 우연, 실은 모두 하나다. 어느 날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 할 때, 문득 지난 시간들이 절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때가 있다. 후회도 있고 안타까움도 있고 아쉬움도 있고 상처도 있고 슬픔도 있고 결국 그 모든 것은 하나라는 것도. 그 시절의 나.란 있는가? 존재하는가? 나는 과거에 있었던 적이 있는가? 그것이 과거라고 할 만한 것은 무엇인가? 지금 이 순간만이 존재한다는 걸 이런 방식으로 직관적인 앎이 일곤 한다. 그러니 후회할 것도 붙잡을 것도 슬퍼할 것도 아쉬워할 것도 없다는 것.


나.라고 할만한 것이 있는가? 나가르주나의 자성이 없다.라는 말을 상기하면 어느 순간 직관적으로 탁.하고 무릎을 칠 때가 있다. 그것은 그 어떤 들썩임이 아닌 차분하면서도 고요한 정적인 파동이요 미동이다. 어떨땐 이런 생각도 든다. 꼭 마흔이 되어서야만했을까? 서른을 우당탕탕 좌충우돌 보낸 나로서는 그 십년이란 세월이 가장 고됐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난 꼭 지금 이 시점에 이런 시간을 지나와야 했구나.를 알아차리게 되면 외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본래 고전이나 철학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책이, 글쓰기가, 대자연이 절로 스승이 되어준다. 삶의 통찰이나 지혜는 그 누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이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구절처럼, 나 자신이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는 것이다. 그 투쟁에서 얻어내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데 별다른 방법이나 방도는 없다. 그저 자기 자신이 알아차리는 것뿐. 그 과정 속에서 피어나는 빛. 나는 그것에 관심이 있다.


꽤 오래된 나의 변화를 살펴보면, 새 옷을 웬만해선 사지 않게 됐다. 옷.에 관심이 더욱 없어졌다는 것. 외적인 치장보단 수수하지만 깔끔한 것을 선호하고 색깔도 베이지나 아이보리같은 모노톤만 고르게 되고 튀지 않는 단조로운 걸 선호하게 됐다. 가방도 에코백이면 충분하고 지갑도 내 마음에 드는 것이면 만 오천원짜리도 만족스런 지갑이 된다. 그보단 나의 눈빛의 생기와 낯빛의 맑음을 챙기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것이 이롭다. 희한하리만치 튀고 싶지 않다. 화려함이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커졌는데 그보단 평범함과 수수함이 지금의 내겐 꼭 알맞고 날 편안하게 한다.


사람과의 만남도 현저히 줄었다. 실은 혼자가 가장 편안하다. 고독이 좋고 책이, 글쓰기가, 티 한 잔이, 잔잔한 영화 한 편이면 나는 외롭지 않다. 친한 사람들과는 언제 보아도 몇 달 만에 만나도 마치 어제 본 것처럼 편안하고 이토록 반갑다. 그럼 된 것이다. 늘 그자리에 있어주는 관계 몇이면 되는 것이다. 나 자신과 노는 시간이,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만이 지속 가능한 환희를 준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른 초반 해외여행을 자주 다녔던 때가 있는데,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것인지. 더는 나의 행복과 평온을 외부에서, 해외에서, 저 멀리에서 찾지 않는다. 내 안에 있는데, 그땐 왜 그리 멀리 도망치듯 해외로 떠났는지. 실은 나 자신을 제대로 볼 자신이 없어서이지 않았을까. 나 자신을 진실로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서이지 않았을까.싶다. 내 안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고독함으로써 고독과 외로움을 분별할 줄 안다. 내년엔 오랜만에 해외 여행을 잠깐이라도 떠나볼까.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이는 걸 보니, 진짜 여행이 하고 싶은가보다.


뭐 그리 집착할 것도 없다는 생각도 있다.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을. 나이 들어가며 확실하게 깨닫게 된 건, 나는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자기가 돈을 벌고 자기가 자기 생활을 꾸려나가고 자기 생을 씩씩하게 살아나가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자각과 지금은 채우는 삶보다 비우는 삶이 내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생각이 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우연히 태어난 것이겠지만 그 우연도 필연이라는 것.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 모두는 각자 특별한 생.이라는 걸. 연민과 감사의 마음이 인다.


20대 시절, 퇴근하고 왁자찌껄하게 맥주 한 잔하고 핫플레이스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도 다 한 때구나.싶다. 서른 중반이 되고부터는 사람 많은 곳보다 북적이는 곳보다 조용한 분위기의 장소를 다녔고 산과 바다가 좋았고 내 마음이 편안한 곳을 찾게 되었다. 이젠 20-30대 젊은 친구들이 자주 찾는 스팟을 지나가더라도 별 다른 감흥이 없게 되었는데, 나도 그 시절, 젊은 시절 다 겪어보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미련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의 젊음도 참 예쁘고 아름답지만 마흔의 것도 나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외려 섹시하다고 생각한다.


내적 성숙에서 드러나는 외면의 성숙과 분위기, 아우라는 결코 그 시절엔 갖기 어려운 것이다. 아름답게 나이 들어간다는 건 결국 분위기, 아우라다.


이국적인 외모라는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줄곧 들어왔는데 그래서인지 화려해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화려함은 온데간데 없고 수수하고 구수한 포근한 친근한 언니가 된듯하다. 그 수수함이, 구수함이, 포근함이, 친근함이 날 이토록 안정되게 하고 편안하게 한다. 그렇지만 눈빛의 생기와 섹시함만은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중년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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