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기운, 자기 기운이다

by Aarushi

어제는 가운데 도날드 덕이 자수로 새겨진 짙은 브라운 폴라 니트를 입었다. 조금 유니크한 게 가죽과 천이 뒤섞여 색을 채웠기 때문인데 꽤 오래된 옷이기도 하고 무난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거라 잘 입는 옷 중 하나다. 그걸 입고 갔더니 어제 동료 한 분이 옷이 흔하지 않은 스타일이라며, "한국에서 안팔죠? 외국에서 사셨어요?"하는 것이다. 맞기도 하고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이 해졌다. 유행타지 않는 옷을 선호하고 옛날 감성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옷에 있어서도 확실히 단추며, 디자인이며, 옷감이며, 재질이며 확실히 옛날 옷이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기운을 차린 차제에, 다시금 나의 미.를 소생시켜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한 것은 아니고 메이크업도 내게 알맞게 과하지 않은 선에서 다시 잘하고 다니자.는 생각과 헤어스타일도 외적인 부분에 있어 나의 강점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다. 실은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차려입어야하는 날이 아니면 정말이지 수수하게, 가급적 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당시 내 마음의 반영이었으리라. 외려 예뻐 보이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라면 설명이 될까. 무튼 그랬던 때가 있었고 얼마 전까지도 이어졌다.


어릴적 나의 사진을 들여다보기도, 파리 살던 시절 예뻤던 나의 모습도 들여다보기도, 20-30대 초반 나의 모습들, 연애할 때 나의 모습들을 상기해보기도 했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왜 지났다고 생각했을까? 모든 아름다운 순간은, 시절이란 늘 지금 이 순간뿐인 것을.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을. 결국 자기 기운.이다. 내 기운이다.이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마음이 굳게 닫혔던 시절, 예뻐보이고 아름답게 보는 시선이 내 안의 것과 괴리감을 느끼면서 나는 피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전만큼의 화려함에도 관심없고 화려해보이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그 화려함보단 수수함과 소박함이 내게 더 알맞다하더라도 그것은 그것대로, 또 외적인 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생각을 했다. 이 가을과 함께 내 마음도 다시 활짝 열려가는 것인지. 내 기운을 살리는 것이 모든 면에서 이롭다는 걸 나는 확실하게 알게된 나이가 됐다.


옷장을 열어 젖히고 다시금 가지런히 정리했다. 깔끔하면서도 나의 분위기에 가장 알맞는 옷으로 잘 입고 다니자. 내가 신경써야 할 것은 눈빛과 생기있는 얼굴이다. 은행 동기로 만나 20대 중후반, 서른 초반을 정말 친하게 지냈던 유연언니와 주말 아침 마포역 맥도날드안에서 모닝커피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때가 생각났다. 나와 4살 차이였던 언니는 당시 지금의 딱 내 나이였다. 39. 무슨 이야기를 하다 언니 왈, "왜 이래~~ 39, 마흔 이제 시작이야~~~!!!^^" 그렇다. 이제 시작이다.


마흔의 나이가 이런 것일까. 과거가 후회된다기보다 이젠 그 시절이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고 수용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아련한 구석이 있고 어느 날은 그 시절이 너무 아름다워 생각만으로도 환희에 벅찰만큼, 그 환희에 눈물이 찔끔 날 만큼 그토록 그 시절의 낭만이 그립고 감사하다.


내년 여름이나 가을즈음 여행을 꼭 떠나야 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인다. 오랜만이기도 하고 그동안 나름 잘 지내온 나에게 선물하고 싶다. 그 시절의 여행과 지금의 여행은 분명 다른 것이겠지. 이젠 방황보단 온전히 나의 순간을, 나의 삶을 받아들이며 온전히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만끽하게 되겠지.싶은 것이 있다.


나이 들어서일까. 부쩍 나와 인연한 모든 사람들이 그것이 시절 인연이었든간에 모두가 행복하기를. 모두가 건강하기를. 모두가 평안하기를 바란다. 그 모든 것은 사랑.이었단 걸. 맑고 푸른 하늘과 대지의 녹색의 대비가 어쩜 이토록 내 마음을 따스하게 데울까.


음료 한 잔을 테이크아웃해서 가야지 싶은 차제에 해피포인트 사용과 통신사 할인을 했더니 제주말차라떼를 반값에 살 수 있었다. 별 거 아닌 것일수도 있지만 이런 살뜰함이 나를 기분좋게 하는 것이 있다. 살아보니, 뭐 그리 집착할까. 내 안에서 만족할 줄 알면 나는 부자인 것을.


나는 마흔이 다 되어서야 내 안에서 만족할 줄 아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요,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요, 친절한 것이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내 안에 세상이 있는데 나는 왜 자꾸 시선을 외부로 돌리려 했는가?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내가 시선을 돌려야하는것은 내 안이다.


남과의 비교도 실체 없는 허상.이란 걸 알아차리면 삶은 한결 수월해진다.

자기 기운이 부쩍 살아나는 차제에 이 흐름을 잘 타봐야겠다.


거친 파도도 실은 바다임을.

파도도 잔잔한 물결도 바다 그 자체라는 걸.

나이 들어갈수록 모든 순간이 통찰과 사색의 순간이 아닌 것이 없고 그 통찰과 사색은 내게 삶의 지혜로 돌아온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경이로운 것인가.


결국 자기 기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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