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냄새

by Aarushi

오늘 아침 나오면서 향수를 뿌렸다. 미국 고모가 한국에 왔을 때 선물해준 것인데, 나는 유독 차가운 계절이면 향수를 뿌리곤 한다. 나오기 전 향수를 내 옷안에 톡.하고 뿌리고 나면 나의 착장이 완성이 된듯한 기분도 있다. 향수를 한 방울 톡 내 속에, 내 안에, 내 옷안 깊숙이 뿌리는 이유는 이토록 단순한데, 고개를 내리거나 움직였을 때 은은하게 풍겨져 나오는 향기. 그것이 내 기분을 나아지게, 좋게 하기 때문이다.


패딩을 입어야 할까.할만큼 진짜 겨울 향기가 난다. 패딩 대신, 두꺼운 연카키 브라운에 니트 롱스커를 입었다. 겨울이 참 좋아졌다. 나이 들어서일까. 갈수록 차가운 계절이 좋아진다. 그 차가움이 그 추위가 마치 내 삶에 불어오는 어둠, 실패, 좌절, 우울, 두려움, 불안, 역경 같으면서 이젠 그 겨울이, 그 차가움이, 그 추위가, 그 살을 에는 듯한 공기가 바람이 외려 상쾌하고 벗같고 연민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었단 설명이 맞겠다. 이젠 그 겨울이 좋아졌다는 건, 반갑다는 건, 그마만큼 나 자신도 강해졌나.싶고 하는 것들이 있다.


청바지를 입지 않은지 꽤 되었는데, 사계절 내내 롱스커트를 즐겨 입는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고 루즈한 롱스커트가 입었을 때 더 편안해서인데 니트 소재의 롱 스커트며 겨울 롱스커트를 가지런히 정리하면서 옷가지들을 쭉 둘러보고 있자니 복잡하지 않고 잘 정리 되어있는, 가짓수도 많지 않은, 내 옷장의 것들이 날 편안하게 했다. 오래 잘 입어 보풀이 좀 일어나면 어떠한가. 아무렴 상관없는 것이다. 지금 옷을 입을 때도 기준은 오롯이 나에게 있다. 내가 입었을 때 편안한가? 입었을 때 기분 좋은가? 입었을 때 나 자신이 아름다워 보이는가? 그런 것들만이 있다.


파리 살 때, 인상 깊었던 건 파리 젊은이들은 유행을 따라가는 느낌이었고 오히려 중년, 노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패션이 내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어쩜 저렇게 나이 들어도 우아할까? 섹시할까? 고급스러울까? 나이가 든다면 파리의 할머니들처럼!이란 생각을 했었다. 화려하지 않아도 컬러의 매치와 조화가 뛰어났고 딱 보아도 오래돼 보이는 니트며, 가디건이며, 코트며, 신발이며, 가방이며 멋지게 잘 소화해내는 파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젊은이들보다 훨씬 멋있고 아름답고 섹시하고 지적였다.


집을 나섰을 때 느껴지는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내뺨에 스칠 때 오는 청량감이 있다. 한 겨울 어느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섰을 때 서리는 따뜻한 공기, 따뜻한 뱅쇼 한잔, 와인 한 잔에 내 안이 따뜻해지는 느낌... 함박눈이 오는 날 거리를 거닐 때 온 세상이 이대로 멈춰있는 듯한 기분... 실은 이 모든 것이 황홀경이 아닐까. 황홀경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늘 우리곁에 있다. 발견도 아니요 그저 늘 존재하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두터운 연카키 가디건이 이토록 따수웠나. 내 안에 따스한 공기가 스며든다. 바깥 공기와 대비돼 겨울이 왔음을 실감하게 한다.


광화문 사거리 교보 근처 내가 자주가는 카페 통창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고 있는 나를 소환한다. 절로 일으켜진 것인데,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사색하고 사유하고 삶을 통찰하게 되는 그 모먼트에 대한 애정이 있다. 결국 기운 관리구나.싶고 지금 여기.를 사는 것이 내가 할 일이구나.를 알게 된다.


파리 살 때, 오뗄드빌 역 앞에 있는 BHV 베아슈베 백화점에 자주 들렀는데 집에 가는 길에 들러 인테리어 소품이나 공구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도 사고선 포장하러 포장코너로 따로 가서 줄을 서며 기다리던 그때 생각이 났다.


겨울 그 특유의 스산함과 쓸쓸함을 사랑하는데, 그 스산함과 쓸쓸함이 나의 고독을 더욱 정제되게 한달까. 나의 고독은 외려 겨울에 더욱 짙어지고 활기를 찾는 경향이 있다.


나는 이 계절을, 이 겨울을, 눈이 오면 이 함박눈을 얼마나 더 경험하게 될까? 얼마나 더 보게 될까?하는 것이 내 생의 의지를 더욱 돈독히 한다.


니트 안으로 톡톡. 두 번 뿌리고 나온 향기, fragrance 잔향이 내 코 끝을 스친다. 차가운 공기와 거센 바람도 이젠 두렵지 않다. 함께 가면 된다는 걸 이제는 아는 나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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