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자리에 앉아 있자니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이 생각났다. 그저 책 제목이 떠오른 것인데, 이 계절이면 나는 부쩍 그 겨울의 파리, 그 계절의 파리가 떠오른다. 사진첩을 뒤적이다 파리 살던 시절 한 번 사보곤 너무 맛있어서 자주 사쟁였던 시리얼을 찍어놓은 사진을 발견했다. 딱딱한 초코칩과 바삭한 그래놀라의 조합이 환상적이었는데 지금도 문득 생각나는 것 중 하나다.
모노프히에서 4천원 정도 했던 바삭바삭한 미니 바게트가 10개 정도 들어간 과자봉지도 생각났다. 아침이면 그것에 버터를 듬뿍 발라 돌체 구스토 롱고나 라떼 마끼아또를 내려마셨다. 눈보다 비가 자주 내리는 파리의 겨울, 그 부엌, 오븐의 온도, 어둡지만 주황의 따뜻하고 아늑했던 부엌의 조명, 우드 미니 테이블, 냉장고, 창문 너머 보이는 3구 어느 골목... 그 속에서도 나는 마치 헤르만 헤세가 된 듯, 보들레르가 된 듯, 발자크가 된 듯 나는 그렇게 그들을 동경이라도 하듯, 깊은 사색에 잠기곤 했다.
주로 Temple역이나 Chatelet역 모노프히에서 장을 봤는데, 감자, 고기, 버터, 치즈는 빠지지 않고 샀다. 저렴하면서도 가성비 좋은 와인은 개인적으론 모노프히보다 프헝프히가 괜찮았는데 그렇게 오는 길엔 프헝프히에 들러 레드와인이나 화이트, 로제를사서 돌아오곤 했다. 그러다 마지막으론 블렁제히 들러 demi tradition baguette를 샀다. 파리에서 살면서 좋았던 점은 나의 일상이, 나의 순간이, 한 순간에 한 눈에 한국에서의 삶보다 용이하게 들어왔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무얼하고 있는지. 나는 왜 여기에 있는지 게다가 나의 실존, 인간의 실존에 대해서도 절로 사색되고 사유되어진다는 점이었다.
파리 현지 친구들과 만나면 어쩜 이들은 이토록 자기 삶에 만족할까? 그리고 정말 만족하는 것일까? 그래보이는 것일까? 남의 눈이라곤 그들에게선 전혀 낯선, 게다가 자기 자신의 실존을 전혀 침범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 생경하기까지했다. 9살 딸 아이를 키우는 파리지엔느 친구에게선 자유가 그러면서도 흔들림 없는 자기만의 생, 가끔은 흐트러지는 것 같으면서도 다시금 제자리를 찾는 모습들에 너 참 멋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도 내게 비친 파리지앵, 파리지엔느 현지 친구들의 모습이란, 자유란, 방종이 아닌 자기 시민 세계안에서의 적극적인 참여이자 저항 그러면서도 지극히 인간적인 것들이었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전시가 한달 내내 조흐주 퐁피두 미술관에서 열리던 때였다. 아래층에는 샤갈의 그림들이 전시되어있는데 샤갈의 결혼 그림 앞에서 나는 한동안 서있기도 했고 마티스의 그림 앞에서도 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베이컨의 기괴스런 형상을 한 그림들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그림은 내게 위로 그 자체였고 벗이었다. 그림에 대단한 심미안이나 지식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 루브흐, 피카소 미술관, 퐁피두, 오흐세... 파리 시내 전 박물관과 미술관을 드나드는 것이 내게 숨쉬는 일이 되어버렸다. 내가 정말 잘한 것 중 하나가 파리 살던 때 수많은 명작을 아주 많이, 그것도 자주, 매일같이 보았던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그 시절의 나의 지독한 방황과 고독이 그것들과 맞물려 나의 내면으로 깊숙이 침잠해 나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심미안에 어떤 지식이 필요할까? 지식보단 직관과 절로 드러나는 것에 있지 않을까? 어느 순간 절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겠다. 감각이란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하는 것도 있다. 어릴적부터 이국적이다, 외국에서 살다 온 온 사람같다, 교포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는데 태어났을때부터 내게 내재되어있는 어떤 해외적 인자와 잠깐 동안의 파리에서의 삶과 생활이 주는 심미안과 분위기 그런 것들이 지금의 나의 분위기를 형성하지 않았을까.한다. 지금도 여전히 분명 외국에서 살다온 사람같다, 외국에서 오셨나, 외국인이냐는 소리를 아주 자주 듣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바이브를 반가워하는데 책과 글쓰기, 내면과의 독대, 이런 것들이 그 모든 것들과 서로 뒤섞여 발현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한다.
눈빛이 깊은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이 있는데 카페든 어디서든 나와 우연히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의 눈이 동공확장이 되거나 그런 걸 기감으로 느낄 때, 아주 다행스럽게도 나의 바람이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반갑다.
아주 추운 겨울 12월의 어느 날, 16구에 있는 발자크의 집을 방문했다. 즉흥적인 것이었는데 그 녹색의 집 가운데 앞뜰과 뒤뜰의 모든 것들은 황량했고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나무들 속에서도 나는 발자크가 마치 그 안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파리에서의 우울은, 파리에서의 고독은, 파리에서의 방황은 실은 지독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