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의 밀도, 정신성의 밀도다

by Aarushi

읽는 즐거움이 있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것은 시끌벅적한 것도 아니요, 침착하면서도 차분하면서도 몽글몽글한 환희와도 같은 것이다. 주로 고전을 읽기 좋아하는, 책에 관해서라면 편식이 있다. 고전소설을 읽어내려가다보면 문득 "이 아름다운 수많은 고전들을 나는 얼마나 읽다 가게 될까, 죽게될까? 아마 내가 읽게 되는 것은 그 중 아주 미미한 수준이겠지?"하는 생각이 든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그 제목만은 누구나 알만큼 유명한 책이 아니던가. 나는 전에 제목에 이끌려 사놓기만 하고 도통 손이 가지 않아 지금껏 읽어본 적 없는 것이었다. 지금껏 책을 읽을 때, 책을 고를 때, 서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 노벨 문학상 수상작, 베스트 셀러, 추천책 이런 것들은 내 선택에 영향을 준 적이 없을만큼, 제목이 날 부르거나, 절로 손이 간다거나 읽어보고 싶은 책을 골라 읽어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어내려가고 있자니, 첫 부분부터 내 마음에 훅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학시절 언론사 시험 준비할 때, 도서관에서 나는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논술과 작문을 썼다. 첨삭을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그저 꾸준하게 묵묵하게 침착하게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쓰자.가 나의 다짐 내지 일정이었다. 도서관 서가에 파묻혀 살았을 때이기도 한데, 오랜 책 냄새에 파묻힌 채 책을 무척이나 많이 읽었다. 장르 가리지 않았는데 다독과 다작을 통해 나는 그렇게 홀로, 혼자 글쓰기 시간을 보내다 늦은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어느 순간 물리가 트이는 것인지, 어느 순간부터 지원하는 방송사, 신문사 필기시험에서 연달아통과했다. 논술과 작문에는 어떤 주제가 나와도 나는 통과했고 자신이 있었다. 책 이야기를 하다 문득 대학시절 그 때가 생각나 이런 방식으로 흘러가는 사유의 무작위함이란.


지금껏 글쓰기를 통해 숨쉬고 에너지를 쏟아내고 나와의 내면소통을 하는 나를 보면, 어쩌면 글쓰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해야하는 것이 필연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글쓰기에 정답이 있을까? 나의 경우 나 자신과의 독대기도하고 내면 소통이기도 하고 나 자신을 제3자처럼 보기가 수월한, 용이해지는 강력한 도구이기도 하다.


읽는 즐거움과 쓰는 즐거움을 알면 심심할 새가 없다. 지루할 새가 없다. 혼자가 좋아지고 편해지고 고독을 아그작아그작 씹는 것에 외려 환희를 느끼게 된다.


부쩍 나이들어가서일까. 부쩍 더욱 삶에 대해 관조하게 되어서일까. 무엇보다 눈빛을 생각하게 된다. 눈빛에서 드러나는 그 자신의 심연이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사실 깊은 대화를 나눈다는 건 나의 심연과 상대의 심연이 만나는 일이다. 그 심연을 통해 서로의 것들을 이해하고 안아주는 일, 진짜 대화란 이런 것이 아닐까.


눈빛이 무턱대고 반짝이기만 하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 기운으로 느낄 수 있는 그 깊음, 그 밀도, 그 적정한 온도 이런 것들이 주는 그 기가 있다. 그 기의 흐름이 드러나는 것이다.


감기약을 처방받고 약국에 들러 약봉투를 받고 보니 내 나이가 38세로 찍혔다. 별 생각 안하고 있다 숫자를 보자 아직 젊네.싶은 생각이 든 건 무엇. 이제 마흔이구나.하고 생각하게 되는 게 있는데 막상 공식적인 나이랄까. 38이란 숫자를 보니 아직은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호랑이 기운이 아주 찰나 샘솟았다. 이젠 무엇을 해도 금세 수그러들고 이내 침착함과 차분함을 유지하게 된 나의 성정. 이전의 내가 보면 놀랄 일이다. 웬만한 일엔 크게 동요하는 법 없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는 괜찮아라는 마음이 생긴다. 방방 뜸이란 안드로메다로 간 지 오래고 침착함과 차분함과 잔잔한 즐거움이 그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확실히 20대 30대 초반의 발랄함과 명랑함과 날 것의 생기는 사그라들었지만, 나 자신만의 순수는 그때의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있다. 외려 그 순수함이 원초적인 것에서 닦이고 닦여 삶의 기술로 변환돼 지금의 나를, 내 삶을 더욱 수월하고 편안하게 하고 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눈빛의 깊이란, 밀도란 나 자신의 심연의 깊이다. 그 심연의 깊이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는, 실로 고귀한 것이다. 유행하는 옷, 신발, 가방, 스타일, 책... 이런 것들보단 나 자신만의 것을 따라 향유하고 만끽하는 일이 내겐 더 가치있는 것이 된다. 확실하게 구별되는 눈빛, 나는 그것에 관심이 있다.


눈빛이 중요한 이유는 눈빛은 한 사람의 정신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눈빛의 무너짐은 정신성의 무너짐이고 눈빛의 밀도는 정신성의 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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