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슬복슬한 핑크 니트를 입었다. 얼굴이 까무잡잡한편이라 핑크가 잘 안어울릴법도한데 나는 늘 핑크가 좋고 선호한다. 연한 딸기 우유색의 핑크 니트가 2벌 있다. 유독 이 차가운 계절, 겨울에 잘 입고 다닌다. 좋아하는 옷을 입으면 덩달아 기분좋아지고 기운이 화사해지고 밝아지는 것이 있다. 내게 잘 맞는, 기운 나는 옷을 입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우중충하고 쓸쓸한 거리에서 우수수 떨어진 낙엽사이를 지나갈 때면ㅡ 절로 깊은 우수에 젖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 그렇게 절로 센티멘털해지고 멜랑꼴리하게 되는 것이 있다. 그러다 이내 곧 현실로 돌아와 갈 길을 터벅터벅 걸어간다.
한 겨울 카페 안의 무드를 참 좋아하는데, 코지하면서 따뜻하고 다정한 온기가 내 전체를 감싸는 듯한 그 감이 좋아서다. 희한하리만치 겨울의 카페 안의 풍경과 바깥의 풍경, 그 안의 부드럽고 포근한 공기가 주는 위로가 있다. 그 공기의 다정함과 친절함이 좋아서 겨울의 카페를 자주 찾는지도 모른다.
광화문 직장인 시절, 한동안 유연근무제를 신청해서 다녔다. 출근 시간을 8시로 했는데 7시 30-40분쯤 도착하면 가장 먼저 도착할 때가 많았다. 회사 로비에서 카드를 찍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사무실에 들어서면 불은 다 켜져있지만, 온기는 가득하지만 차분하게 가라앉은, 홀로 남겨진 듯한, 그 무음, 그 소리없음, 그 적막이 있었다. 그러다 청소 아주머니와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고 그렇게 컴퓨터를 켜고 탕비실로 가서 커피 한 잔을 내리고 제자리로 돌아와 아직은 환해지지 않은, 새벽의 그것이 잔잔하게 남아있는 그 아침 하늘을 바라보며 업무를 시작했던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소리없이 그 채로 그 적막과 고요함을 만끽했다. 매일 아침 출근하던 광화문역과 신문로의 거리들, 횡단보도, 그 시절 갖은 풍경들이 폭풍처럼 밀려올 때면 그 시절이 참 아름다웠구나.싶으면서도 무언가 아련한 기분이 든다. 아침 7시 반쯤 광화문역에서 내려 회사까지 걸어가는 그 길, 그 시절 듣던 노래, 사색, 풍경들이 유난히도 생각날 때가 있다.
출근해서 한 30분 정도는 넓은 사무실 안 혼자 차분하게 침착하게 조용히 숨직이듯 고요함을 유지할 수 가 있었는데, 그 고요함과 적막이 어쩌면 그 시절의 내게 위안이자 위로이자 생의 의지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광화문 거리, 식당들, 카페들이 모두 선명한데 지금은 많이 바뀌기도 했고 지나갈 때마다 여기에 참 뭐가 있었는데, 원래 여기 그 자리였는데.하며 그렇게 추억을 곱씹곤 한다. 어느 겨울이었다. 오후 4시쯤이었을까. 창밖엔 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통창 너머 펑펑 쏟아지는 눈소식에, 눈풍경에 잠시 숨을 고르고 모두가 눈을 바라보며 기분좋아하던, 웃던 그때 생각이 난다. 통창 너머 신문로 바깥 풍경은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산과 세련되고 화려한 고층 빌딩과 대비돼 그 자체가 한폭의 그림 같았다.
문득문득 그 시절이 절로 떠오르곤 한다. 20-30대의 추억 대부분이 광화문일만큼 지금도 광화문에만 가면 기분좋아지고 행복해한다. 약속도 늘 광화문에서만 한다. 서울 시내에서 내게 활력을 주는 건 광화문 일대다. 추억도 추억이지만 기운적으로도 잘 맞는 곳이란 생각을 한다. 그러니 절로 자주 찾을 수밖에.
나이 들어가니, 자꾸 그 시절 그 시절하게 되는 것이 있다. 힘들고 아팠던 기억들 경험들은 신기하리만치 희미해지고 좋고 아름다운 추억만이 남는 것이 신기하다. 나이 들어가는 지금, 지나온 나의 모든 시절이 참 아름다웠구나. 좋았구나.싶은 건 그마만큼 나 자신도 삶에 대해 많이 무뎌지고 갈고 닦여지고 이제는 자기 삶의 많은 부분이 이해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광화문 직장인 시절이 문득 떠올라 잠시 그 시절의 내가 되어 그 시절을 관조하다, 그 시절이 지금은 마치 내가 아닌 제3자가 바라보듯 관찰자 시점에서 내가 보인다는 것이 무척이나 재밌고 절로 미소짓게 된다.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어떤 말을 할까?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의 내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재밌는 상상도 되고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말들도 오간다.
마흔 가까이 되어보니, 인생은 정말이지 불확실성의 것들이구나.를 알아차리게 된다.
그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실은 인생의 묘미구나.싶고 때론 그 예측할 수 없음과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면 삶은 한결 가벼워지는구나.를 깨닫게 된다.
삶은 이토록 불확실성의 것들로 가득한데,
그동안 인생을, 삶을, 나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했구나.하는 아쉬움과 회한이 있다.
가볍게 살았더라면 좋았을 걸.
지금이라도 가볍게 살자.한다.
나이 들어가며 알게 된 건,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확실성보다 불확실성이 더 현실적이다.
불확실하기 때문에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다.
불확실성의 세계에 살면서 내가 해야할 것은ㅡ 다정함과 친절함을 유지하는 일인 것 같다.
그러므로 나 자신에게도 다정함과 친절함을 놓지 않는 것, 타인에게도 다정함과 친절함을 잃지 않는 것,
동시대를 살아가는 서로가 서로에게 다정함과 친절함, 사랑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마흔이 다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결국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