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정확히는 35즈음, 생일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게 됐다. 절로 그리 되었다는 것이 적확한데, 생일이 무어람 하게 되는, 대수롭지 않은, 그저 여느 날, 어느 날과 다름없는 것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일 당일 엄마 아빠 생각이 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직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서 자연분만으로 나를 낳았을 엄마의 당시 그 출산의 고통을 감히 헤아릴 수 없지만 언젠가 내가 혹여 아이를 낳게 된다면 엄마 생각에 눈물이 펑펑 쏟아질 거란 것만은 알고 있다. 겨울생이라 이토록 질긴 생명력을 가졌나?싶을 만큼 곧 마흔인 내 삶은 나 자신에게는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은 드라마틱한 것이었고 그런 삶을 go right throught it! 해오며 살아온 자신에게 지금은 궁딩팡팡해줄만큼 많이 안정되고 단단해졌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선물이 아닌가.싶다. 나이 들어갈수록 다행스럽게도 아주 조금씩 자기 자신이 되어가고 있음을 목도하는 일. 이젠 그런 알아차림과 삶의 업앤다운이 재밌을만큼 초연해지는 부분이 있다.
늘 그렇듯 생일 아침엔 별 거 없다. 단 확실하게 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맛있는 점심을 스스로에게 사는 것이다. 이 순간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른다. 그런 다음 맛있는 한 끼를 한 뒤, 카페에 가 좋아하는 음료를 산다. 소소하지만 사소하지만 내겐 이만한 선물이 없다. 갖고 싶은 것도 나이 들어서일까 별로 없어졌는데 9,900원짜리 골드빛 미니 지갑이면 무척이나 만족스럽다. 여느 날과 다름 없이 운전을 하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잠깐 사색에 잠겼다가 짬짬이 책을 몇 장이라도 읽어내려가는 일상, 그것이 지금 내 순간의, 내 눈 앞의 현실이자 삶이다.
이름은 아빠가 지어주셨는데 아빠가 총각이던 때, 딸을 낳으면 이렇게 지어야지 하고선 생각해둔 이름이었다. 어릴적부터 이름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부모님이 굉장히 세련된 분이실 거 같아. 이름이 너무 예쁘고 세련되었네!"라는 말을 늘 들어왔다. 이름 덕분에 이국적인 외모가 더욱 이국스러워지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외모는 엄마를 닮았고 키도 엄마를 닮았다. 엄마의 나이 든 얼굴을 보면 내 모습이 일 순간 겹쳐 보일 때가 있다.
어제 일하고 있는데, 늦은 오후 띵똥하고 카톡이 왔다. 아빠가 보내주신 케이크였다. 선물함을 열어보니 메시지도 있었다. 그렇게 가는 길에 바로 케이크를 테이크 아웃하고 사진을 찍어 아빠한테 보냈다. 전화를 걸어 아빠와 통화하는데 차가운 바람도 일순간 녹일 만큼 강렬한 따뜻함이 있었다. 집에 도착 후 냉장고에 잘 넣어두고 한가로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는 찰나, 띵똥소리가 나 확인해보니 엄마였다. "늘행복해"라는 적요와 함께 십만원을 보내주셨다. 카톡을 확인해보니 엄마가 케이크와 아메리카노 선물이었다.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몸과 마음이 늘 건강하고 행복했음 좋겠어(하트)" 갑자기 눈물이 났다.
문득 든 생각은,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이구나.싶고 이 세상에서 날 가장 사랑하는 사람도, 사랑해주는 사람도, 내 부모구나.였다. 생일 당일도 아닌 생일 전날 밤, 미리 딸에게 전하는 그 부모님의 마음. 엄마는 곧잘 생일 자정이면 띠리링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주시곤 했다. 마흔이 다 된 딸이 엄마 아빠에겐 아직 애기구나. 여전히 영원히 애기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로 인한 그 몽글몽글한 마음에 지난 나의 밤은 잔잔한 호수에 즈려앉은 에머랄드 빛의 향연처럼 그렇게 반짝였다. 외롭지 않았다. 나이 들어가니 부쩍 나는 좋은 딸인가? 좋은 딸이었을까?라는 질문에 아니다, 아니었다.라는 답이 절로 튀어나오곤 하는데 자식을 아직 가져보지 않았다고 해서 부모 마음을 모른다는게 말이 되나?싶고 마흔이 된 지금 이젠 지나온 나 자신의 삶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온전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있듯 내 엄마 아빠의 지나온 자기 생의 많은 것들이 이해되고 안쓰러운 부분이 있다.
오늘 아침 케이크 한 조각을 먹고 나오면서 나의 생일은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매일이 생일인데, 매일이 생일이라면 어제 오늘과 같이 이토록 감사하고 사랑 넘치고 퐁퐁한 것들이 늘 내 곁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Rupert Spira의 말처럼, "You are the happiness you seek." 나 자신이 행복 그 자체인 것을 어디서 구하려 하는가? 어디서 찾으려 하는가?
어제 엄마가 보낸 카톡 메시지를 오늘 내내 찾게 된다.
"몸과 마음이 늘 건강하고 행복했음 좋겠어(하트)"
엄마는 그 자신의 딸이 그 무엇보다 마음이 평온했으면, 즐겁게 살았으면, 행복했으면 하는 것이다.
올해 초 산방산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다 그 풍경을 엄마에게 보낸 뒤 엄마는,
"저 푸른하늘처럼 네 마음도 늘 맑았음 좋겠어."라고 보내왔다.
나 자신의 행복 그것은 늘 그자리에 있었다.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나였을 뿐.
생일 이토록 시시해진지 대수롭지 않아진지 오래지만,
이 시점을 말미암아 나는 바짝 힘을 내본다.
진짜 즐겁게 살아야지~^^
웃으며 살자.
맑은 마음으로 살자.
사랑하자.
친절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