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오래 되었다. 낡고 성한 곳이 없을 만큼, 충전기를 꽂는 곳에 크랙이 가서인지 충전이 잘 되지 않아 충전할 때 노트북 위치를 잘 고정시켜야 하는 등의 불편이 있은지도 오래다. 그래도 딱히, 감수할만한 불편함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사용하고 있다. 바꾸긴 해야하는데 싶으면서도 고장난 게 아니니 바꿀 마음이 당최 생기지 않는 것도 있다. 몇 년 전엔 기존에 쓰던 노트북이 수명을 다해 오랜만에 꺼내든 2011년에 산 둔탁한 노트북을 판도라의 상자를 열듯 꺼내 몇 년을 사용했었다. 옛날 버전 노트북 키보드에서 오는 그 둔탁함이 좋아 글쓸때 특히나 애용했는데 그것마저 수명이 다해 구매한 노트북도 이제 이 모양새가 되었다. 그런 나를 보며, "나도 참 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최신기기나 유행의 것이나 그런 것들에 크게 관심 없는 것도 있고 내가 불편하지 않으면 굳이 덥석 소비하지 않는 성미도 있다.
문득 자기 전, 글이 쓰고 싶어 집어든 노트북의 모양새를 보고 든 잔상들이다. 크랙도 있고 도통 느린 부분이 있지만 노트북을 사용하는 나의 용도는 대부분 글쓰기라서 새 것에 대한 흥미가 없는 것도 일리있다.
늦은 밤, 클래식 첼로 연주를 틀어놓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것들을 자연스레 써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일순간의 몰입이 주는 그 에너지가 있다. 그 에너지로 다시금 용기를 내기도 하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글감은 늘 대중없고 순간마다 피어오르는 의식의 흐름이다. 키보드위의 양 손가락이 절로 동시다발적으로 다다다닥 움직여지는 그 선율, 그 조화, 그 신기함ㅡ 그걸 코 앞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나, 그것들이 주는 안정과 위로가 있다.
며칠 전 길을 걷다 문득 머릿속에 불현듯 피어오른 문장 하나를 메모해 뒀다.
"홀로 흘러왔고 앞으로도 홀로 흘러 가겠지."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본래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채로 태어났고 갈 때도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그렇게 홀로 홀연히 떠나는 것이 인간의 삶 아니던가. 자기 생이란, 자기 자신이 홀로 짊어져야 하는 각자만의 숙명이자 부여된 어떤 것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내 삶이 힘겹고 고통스럽고 상처로 가득하고 슬픔에 허덕인다면 그 또한 내게 주어진 어떤 것이겠지. 그로 인해 나는 더 성장하겠지. 그렇다면 그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 수월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삶은 힘겹고 버거운 것 아니던가. 그 누구도 자기 짐을 대신 짊어질 수 없다는 그 사실을 직시하는 순간 바로 보아지는 것이 있다.
마흔이 되어보니,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다 자기만의 시간이 있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나의 20s와 30s가 긴 방황과 고독에 잠겨 있었다면 그것은 나의 끝이 아니라 밑바닥에서의 헤엄침이 아니라 세상과 멀어지는 시간이었구나. 그것이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이구나. 나는 그것을 끄끝내 지나와야 하는 것이란 걸 알게 된다. 세상과 멀어지는 시간은 새로운 도약과 출발과 시작의 것이란 걸, 그것은 보다 큰 복을 얻기 위한 반드시 통과해야 할 은둔과 고립과 어둠의 시간이었음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 고독 속에 피어난 삶의 통찰과 지혜를 가지고 나는 저먼치에서 나를 열렬히 응원하며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운명을 맞이하러 가야한다는 것도.
그 오래 전 아우렐리우스나 에픽테토스나 세네카나 수많은 고전 작가들이 왜 그토록 인간의 본질과 통찰과 삶의 지혜에 대해 이야기했는지 알 것 같은 직관적인 앎과 소름돋움이 있다. 그들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그들이 현 시대에 튀어나와 나와 대화하고 있는듯한,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세상과 멀어지는 시간, 그 고독은 내게 선물이었다. 당시엔 무척이나 방황하고 괴로운 시간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을 견뎌오면서 쌓아온 것들이 글자 그대로 내공으로 내 안에 알알히 박혀 살아 숨쉬고 있지 않을까.하는 안도감이 있다. 글쓰기를 통해 내 안의 것들을 끄집어내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 나는 무척이나 흥미롭고 즐겁다. 몰입한 뒤 써내려간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나 자신이 내 글의 독자가 되어 읽어내려갈 때의 기분은 야단법석이 아닌 굉장히 차분하면서도 고요한, 나 자신이 쓴 글이 아닌, 제3자 모르는 타인이 쓴 듯한 기시감이 있다. 그렇게 나는 내 글을 통해 내 안의 것을 다듬고 갈고 닦고 정화하고 치유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이런 연유에서다.
무얼 할 때 좋으세요?라고 물으면,
나는 독서와 글쓰기라고 답할 만큼 끌리셰하지만서도 그 끝엔 늘 고독이 있다고 말한다. 굳이 고독을 말하지 않아도 내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의 고독이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것은 매력과도 마찬가지로 절로 드러나는 것이겠지라는 생각을 한다.
꽤 오랜 시간동안 갑작스런 세상과 멀어지는 시간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치 우연처럼 결국 필연으로 그렇게 내게 찾아왔다. 생각보다 길어졌다는 것에 흠칫 놀라곤 하지만 이젠 알게 되었다. 세상과 멀어지는 시간이란, 역설적으로 세상과 멀어지는 시간이 아니라 세상과 더욱 가까워지기 위한 비로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삶의 기술을 터득하고 체득하는 배움의 과정이었구나.를 깨닫게 됐다.
세상과 멀어지는 시간, 그것은 축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