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일하러 가기 전 카페에 들러 책도 읽고 차분한 시간을 갖고 싶어서인데, 커피를 끊었다 싶었는데 차가운 겨울바람에 따뜻한 커피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 다시 커피를 주문했다. 엊그제 엄마가 보내준 케이크와 커피를 주문했다. 카페 안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놓여있고 캐롤이 울려 퍼진다. 오전의 공기가 캐롤 하나에 이토록 따수워진다.
선물함 쿠폰을 사용하려니 절로 "몸과 마음이 늘 건강하고 행복했음 좋겠어^~^"라는 메시지가 보인다. 멀리 떨어져 있는 엄마가 마치 내게 귓속말로 다정하게 속삭이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생각하고 주문한 걸 받아오는 길 나는 이렇게 다시금 힘을 내본다.
커피맛이 유난히 쓰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간만의 커피여서 그런지 커피를 끊었을 때 그 사이 내 미각은 어쩌면 순수한 자연 상태이리만치 자극적이지 않은 것에 다시 복구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커피를 선택한 건 그래도 잘한 일이었다. 이 케이크 한조각과 따뜻한 커피 하나가 내게 주는 잔잔한 기분과 감동이 오늘 하루 이 순간을 사는 내게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과 낭만을 선사했으므로.
나는 어른인가.라는 질문도 일순간 일고, 나는 지혜로운가.라는 질문도 인다. 마흔이 된다고해서 엄청나게 서글프거나 아쉽다거나 하는 것은 없는데, 서른 즈음 내가 마흔이 된다면.이라고 생각했을때보다 타격이 없는 편이다. 서른 아홉이나 마흔이나 뭐가 다를까.싶고 당연한 자연의 이치인 것을. 누구에게나 공평한 젊음을 나 또한 잘 경험했으므로 아쉬움보단 외려 나의 아름다운 중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만이 내게 중요하구나.라는 걸 알게 되어서겠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확실히 얼굴도 변한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이 단계에서는 아직 아닌 것 같고 무언가 깊어진달까. 농후해진달까. 짙은 무언가가 얼굴에 묻어난달까. 자기 생의 고독이 눈빛으로 투영돼 빛난달까.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이젠 내 또래 사람들의 그런 중후한 멋과 세련됨에 매료된다. 내겐 그것이 섹시함이다.
자기 만의 스타일을 갖는 것도 중요한데, 몇 천원짜리 몇 만원짜리 옷을 입어도 멋져보일 수 있는 건 자기 관리와 내면의 성찰과 깊음, 지적임이 외면으로 드러나는 자기 만의 분위기와 아우라때문이다. 니가르주나의 '자성이 없다'라는 말이 절로 알아차려질때가 있는데, 나라고 할만한 것이 있는가?를 알아차리면 순수한 날 것이 드러난다. 가진 것은 내가 아니요, 내가 신경써야할 것은 내면의 세계다. 인간은 그럴려고 태어난 것이 아닌가.
내가 사는 이 세계가 만약 시뮬레이션이라면, 게임이라면? 끌리셰하지만 재밌는 상상을 하다보면 일순간 탁하고 알아차려지는게 있다. 현실을 사는 가장 현명한 삶의 기술 중 하나는 내 두발을 이 땅에 딱붙여 살아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 오롯이 집중하며 산다는 것도 되고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는 것이 된다.
차분한 카페 안에 들어서면 글쓰고 싶어진다. 어느 순간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도, 노래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는 그런 몰입감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몰입의 순간은 우울도, 슬픔도 사라지게 하는 마법이 있다.
늘 봄과 여름을 좋아했는데, 어느 해부터인가 차가운 겨울이 좋아졌다. 아마도 서른 다섯즈음, 나의 고독이 더 깊어진 시기와도 정확히 일치한다. 그 겨울 특유의 쓸쓸함과 삭막함, 건조함이 주는 위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건조함과 쓸쓸함도 실은 사랑과 따뜻함과 온기와 같다는 걸 알게 돼서다.
나의 마흔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기대보다도 차분하고 침착하게 사랑 가득한 사람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길 하는 바람이 있다. 엄마가 보내준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다시금 사랑.을 생각했고 사랑 할 것, 사람을 사랑하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어제 잠들기 전, 3분동안 이었을까. 갑자기 눈물이 났다. 누운채로 눈물을 훔치면서 절로, "자꾸 눈물이 나요."라고 말했는데 내안의 나에게 위로 받고 싶었나보다. 어떤 연유에서는 아니었는데 문득 한 장면이 스치면서 눈물이 났던 것이다. 그것은 어린 시절 엄마와의 추억이었는데 그것이 트리거가 돼 나의 눈물샘을 터트렸다. 그렇게 눈물이 베갯잎에 축축히 젖고 나서야 멈추었다. 그러고 나니 왜 그토록 속이 개운한지. 시원한지. 잠깐 새 마치 새로 태어난 기분에 눈도 맑아진 기분이었다. 내가 눈물을 사랑하는 이유다. 울고 난 뒤 다시 태어난 듯한 그 개운함과 맑게 개임이 다시금 나아갈 힘을 주기 때문이다.
지나온 나의 눈물은 슬픔에서 사랑으로 승화되었다. 더는 눈물이 슬픔의 의미가 아니게 됐다. 눈물은 나약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고독과 성장에 필연이었고 정화였고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