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이상형

by Aarushi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 중 하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처음 읽었을 때 어느 장에서 갑자기 중간에 책읽기를 멈추고 그의 생애를 찾아보았다. 지금 당장 이 작가를 검색해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당시 나의 궁금증은, 두꺼운 책을 전혀 지루해할 틈없이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하는, 몰입하게 하는 작가, 그 자신이 너무 궁금했던 것인데, 읽으면서 "도대체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삶을 살아온건가?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가 있지?경이롭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오며가며 시간이 될 때마다 이책을 붙잡고 이틀만에 다 읽었던 기억이 난다. 문득 그 책을 읽어내려갔던 그때가 떠올랐다. 당시 추운 겨울이었는데 산책로를 걸으면서 읽어내려가던 때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았는데 그 추위보다 그 몰입감이 주는 강렬함과 온기가 지금도 인상적이게 남아있다.


책과 가까워질수록 꽉 채워짐, 텅비어있음으로 가득찬 걸 느끼게 된다. 책장을 넘기다 노트북을 꺼냈다. 지금의 내게 노트북을 꺼낸다는 건 글쓰기를 하겠다는 것인데, 내게 노트북이란 언제 어디서든 글쓰고 싶을 때 쓰기 위한 실용적인 도구다. 그래서 로고나 성능이나 이런 것들에 전혀 개의치않게 되는 것도 있다. 따뜻한 카페라떼 한 잔을 머금고 곧장 써내려간다.


나의 글쓰기는 대부분 그때그때 떠오른 잔상이나 그리운 것들, 알게되는 것들, 깨닫게 되는 것들, 사색과 사유의 것들인데다 즉흥적인 것이 대부분인데 그 즉흥성과 직관적인 흐름이 내겐 꼭 알맞다.


마흔이 되어서인지. 노화의 증상인 것인지. 부쩍 먹는 양이 줄었다. 1인분을 주문해도 이젠 2번에 나눠 먹게 되고 배가 금방 찬다. 먹는 것에 있어서 절제할 수 있다는 건 실은 내 마음의 안정과도 관계가 깊다. 먹는 양이 줄고 금새 배가 차는 요즘의 나를 보며, 신기할 노릇이라기보다 점점 더 자연에 가까워지는구나. 나는 죽어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죽어가고 있구나.라는 건 내겐 죽음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자 아주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나이 들어가고 있음에 대한 안도에 가깝다.


부쩍 자기 질량에 대해 생각해본다. 결국 분위기다, 아우라다.하는 것들도 실은 자기 질량의 결과다. 마흔의 내가 신경쓰는 건, 케어하고 있는 건, 내면의 질량이다. 방방 뜨는 것을 경계하는 편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차분하게 침착하게 내 안을 유지하는 것, 그것은 훈련이라기보다 알아차림과 지리한 자기와의 대화와 경험으로 점철돼 체화된 삶의 기술 내지 소위 내공이 아닐까.한다. 그래서 내게 내공있는 사람이란, 어떤 일이 있어도 무얼 만나도 침착함과 차분함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에게선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눈빛과 맑음이 있다.


스물 후반 서른 초반즈음 나와 스쳐지나간 인연들을 생각해보자면, 내가 바라던 이상형이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나의 경우 지극히 평범한 삶과 것들에 비해 예기치 못한 흥미로운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했는데 그 시절을 떠올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어떤 기운적 연결과 강렬한 끌림에 의해 만남은 있을 수는 있으나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은, 깊은 인연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의 문제였구나, 당시 나 자신의 내면의 질량이 그들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구나.를 깨닫게 된다. 인연도 서로의 내면의 질량과 주파수가 맞아야한다는 걸. 돌이켜보면 외적인 조건이나 모든 면에서 내가 바라던 남자였지만 어쩌면 나보다 내면의 질량이 높았던 기운이 높았던 그들과 나는 맞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원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선 나 자신부터가 자기 질량이 높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란 참으로 명료하다.


그 즈음이었을까. 내 삶의 총체적인 재전환과 재배치가 일어나게 된다. 마치 이 자연이, 이 우주가 내게 미션을 내린 듯한, 자기 자신 그리고 삶에 대한, 인생에 대한, 인간에 대한 전체에 대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시작된 시점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지리한 고독이 내게 우연인듯 필연으로 다가왔다. 지금의 내가 20-30대의 나를 회상하면 어쩜 이토록 정확할까? 오차가 없을까?싶을만큼의 소름돋음이 있다. 이 모든 시간이 내겐 정말이지 필요했던 것이구나. 나는 이 시기를 꼭 지나와야만 했구나. 내게 이토록 아름다운 성숙과 사랑이란 열매를 주기 위한 자연의 계획이었구나.를 확신하게 된다.


마흔이 된 지금,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자기 질량이 높은 기운이 높은 남자가 이상형이다. 그것은 드러낸다고 드러내지는 것이 아닌 절로 드러나는 것인데, 누군가의 눈빛에서 고독과 사유와 사색의 농도가 읽혀질 때면 더할나위 없이 섹시하고 지적인 것이 된다. 어떤 사람이 이상형이에요?라고 물으면, 지금의 나의 대답은 한결같은데, 눈빛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눈빛에서 그의 스토리가 궁금할 때, "그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자라면 언제든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있다. 그것은 누가 알아봐주는 것이 아닌 서로가 알아봐주는 것이 된다. 설명하기 어려운 그러나 기운적으로 직관적으로 서로를 알아보게 될 거라는 믿음이 있다.


나이 들어갈수록 남자를 볼 때 가장 중요하게 되는 것은, 지성이다. 결국 대화가 되는가?와도 같은 맥락이다.

사색을 넘어 사유로 사유를 넘어 지성으로 그 지성의 확장은 외연으로.

나이 들어갈수록 지성이란 나 자신을 지키는데, 사람을 인간을 사랑하는데 가장 강력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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