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하게 살아

by Aarushi

차 안에서 듣는 오늘의 선곡은 캐롤 모음이다. 12월은 모든 날이 모든 주간이 마치 크리스마스인 것 같은 기분이다. 31일이 매일 크리스마스인 것처럼. 2021년 즈음이었을까. 눈이 펑펑오는 어느 주말 아침, 어느 스벅에 들러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던 날이었다. 어쩌자고 이 모양새를 찍어놨을까?싶지만 분명 그날 바이브가 좋았던 모양이다. 조금 전 우연히 보게 된 이 사진 한장에 나는 절로 미소짓고야 말았다. 2021년 겨울 어느날의 내가 안쓰러워보이기도 대견하기도 무척이나 사랑스러워서이기도한데 지독한 번뇌와 고뇌들로 더욱 깊숙이 고독속으로 빠져들어갔던 시기다. 책도 늘 끼고 다닐만큼 일로든 책으로라든 완전하게 몰입할 것이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이제 없다. 내가 거기에 있었단 걸 나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내가 만들어낸 스토리이자 환영일지도. 이젠 지나간 많은 것들이 어렴풋 구름처럼 그렇게 순식간에 흩어져버리는 것이 되었다.


훤히 뚫린 통창 밖 하얀세상, 풍경을 바라보며 가방에서 스케쥴이 빼곡하게 적힌 캘린더를 꺼내 스케쥴 시간까지 적어가며 당시 내 삶의 일정을 더욱 몰입의 것들로 가득차게 했던 그 시절의 내가 오버랩된다. 지금도 어느 카페를 가든 훤히 뚫린 통창이 있는 카페를 좋아하는데, 그 통창 너머가 마치 내겐 포탈이랄까.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여는 듯한, 깊은 사색과 사유의 것들로 가득찬 무한한 것들의 창고다. 주말 점심 약속이 있는 날이면 나는 한 두시간 전 쯤 그 근처에 도착해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들러 창밖의 풍경들을 바라보다 시선을 한 곳에 머무르다 그렇게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약속 시간 전엔 항상 여유 있게 미리 가 있는 것이 습관이자 성미기도하고 지금의 내게 세상은 경이롭고 신비롭고 도저히 모르겠는 미지의 영역 그러나 이토록 재밌고 호기심가득하지 않을 수 없는 놀이공원이다.


어느 아침 일찍 한산한 카페에 들러 모닝 커피를 마실때면,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책 제목이 생각난다. 책 내용과는 상관없이 책 제목 그 자체가 내게 적확하게 보인다. 내가 앉아있는 이 자리, 내겐 자기만의 방이다. 시끌벅적한 카페 안에서도 창가의 좁은 한 자리가 내겐 자기만의 방이 되는데, 어느 순간 사람들의 목소리도 갖은 세상의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된다. 오롯이 내 안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겠다. 그런 모먼트가 주는 고요함과 생의 즐거움이 있다.


아침에 택배 문자가 도착했다. 보내는 사람은 토퍼회사로만 나오고 받는이는 내가 정확하다. 순간 내가 시킨적이 없는데?하면서도 경험적으로 "엄마일까?"했다. 혹시 몰라 곧장 운송장번호로 보내는 곳에 전화해 확인해보니 엄마가 보낸 것이었다. 어릴적부터 엄마는 이렇게 선물을 보내주시곤 했는데 추운 겨울 딸이 포근하게 잘 숙면했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 내 마음이 금세 몽글해졌다. 그렇게 끊자마자 순간 눈물이 났다. 그것은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엄마의 사랑이었다. 마흔이 된 지금 엄마가 내 나이였을때가 생각나곤 한다. 내가 중학생이었을때다. 회식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 엄마는 자고 있는 내 침대방으로 와서 자고 있는 내 뺨에 있는 힘을 다해 뽀뽀를 하곤 "사랑해"라고 말하곤 나가셨다. 엄마는 분명 내가 자고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나는 잠결이었는지 그 기억이 선명히 남아있다. 나이 들어가니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든 시절을 지나왔을 그랬을 엄마의 삶이 보이고 이해되고 연민하게 된다.


신입행원이던 시절 반포지점으로 발령나 첫출근한 날, 엄마는 지점으로 떡을 보냈다. 막 신입연수를 끝내고 이곳으로 발령받은 첫날 긴장을 잔뜩해 있던 때 오전, 누군가 내 이름을 찾길래 봤더니 지점 근처 떡집에서 내 이름으로 배달이 온 것이다. 엄마였다. 반포지점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텐데 엄마는 지방에서 지점 근처 떡집으로 전화를 걸어 주문을 넣은 것이다. 엄마는 혹여 딸이 기죽을까싶어 사회생활을 첫 시작하는 딸에게 이런 방식으로라도 응원을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궁서체로 내 이름을 새겨 주문한 피에흐 가흐뎅 펜도 선물로 보내주셨다. 그 이후 다른 지점으로 발령이 났을 때도 한 번은 생일날 아침 떡 케이크를 보내주셨다. 지점 언니들은, "초아야 엄마께 잘 먹었다고 감사하다고 전해드려. 와 우리 초아 사랑받는구나!"라고 내게 말하곤 했다.나를 아는 언니들은 내게, "초아 어머니 정말 멋지신 분 같아. 그래서 초아 네가 이렇게 밝고 자신감이 넘치나봐."라는 이야기를 했다. 엄마에게 선물을 받은 이 아침, 일으켜진 한 생각이 아주 오래전 신입행원시절의 그때로 이어져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서른 초반에 시작된 나의 방황과 고독은 엄마를 아프게 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서 정말 건강한 건, 정말 중요한 것은 각자의 삶을 건강하게 꿋꿋하게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란 걸. 엄마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였다. 딸의 안녕. 딸이 아무쪼록 건강하게 즐겁게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이 생을 우울해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나가기를! 오로지 단 하나 그것이었다.


엄마도 엄마에게 주어진 삶의 짐을 오롯이 자기가 책임지며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나도 내게 주어진 삶의 짐을 오롯이 나 자신이 책임지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부모 자식 간 건강하고 성숙된 관계라는 걸.


엄마의 말들.

단순하지만 마흔이 다 된 딸은 이제 그 짤막한 문장 속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즐겁게 살자^_^"

"씩씩하게 살아"

"몸과 마음이 늘 건강하고 행복했음 좋겠어^~^"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흔의 이상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