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은 불이

by Aarushi

딱 오늘과 같은 스산한 날씨에, 비가 추적추적 살그머니 내리던 을씨년스럽던 겨울의 어느 날, 집을 나와 18구에 있는 Basilique de Saint-Denis에 갔다.


즉흥적인 것이었는데 생드니역은 우범지역인데다 혼자 가기엔 다소 위험한 지역이라고 알려져 있다. 메트호를 타고 생드니역까지 가는 내내 바짝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조금만 걸으면 바로 생드니 대성당이 있었다. 늦은 오후였던 것 같은데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어두컴컴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만이 성당 안을 비추고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면 곧장 입장권을 사는 곳이 나온다. 뮤제 카드를 내미니 무료라고 했다.


그렇게 가죽 크로스백을 야물게 다시 고쳐 메고 프랑스 왕실의 왕과 왕비들의 무덤을 지났다. 어릴적부터 서양사에 관심이 많았어서 프랑스의 곳곳은 내게 즐거운 놀이터이자 낭만 가득한 곳이었다. 프랑스 왕과 왕비들의 무덤은 석관이었는데 거의 대부분 누워있는 석관이었던 점이 생경하면서도 한편으론 오싹한 기분이 동시에 교차했다. 날씨 때문인지 내가 경험한 그곳은 생각보다 훨씬 어두웠다. 드문드문 몇몇 사람들을 마주칠 뿐 굉장히 한산했다.


프랑스 루이 10세, 루이 12세, 루이 16세와 마히 앙뚜와네뜨의 무덤을 스쳐지났다. 그 안의 공기는 무척이나 스산하고 을씨년스럽고 무거우면서도 굉장히 차분하면서도 몽환적인 것이었다. 오베흐 쉬오아즈에 있는 반 고흐의 무덤을 찾았을 때도, 쇼팽의 무덤을 찾았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사색의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머문 1시간여의 시간이 내겐 아직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일하러 가기 전, 쿠폰도 사용할겸 집 앞 스벅에 나와 커피를 주문하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그때의 기억이, 경험이 떠오른 것이다. 하나의 날씨에, 하나의 물건에, 하나의 바람에, 하나의 공기에, 하나의 내음새에도 기억하고 추억할 것이 많은 걸 보면 새삼 난 참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을 한다.


마흔이 되어서일까. 죽음이란 단어가 전혀 낯설지 않게 됐다. 죽음은 두렵고 무섭고 슬픈 것이 아닌 너무도 당연한 이치라는 걸,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마지막 날숨이 나의 죽음인 것이겠지. 날숨에서 들숨으로 들숨에서 날숨으로 우리는 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 산다는 건 죽어가는 과정이요 태어났으니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으니 생이 있는 것이구나를 알아차리게 된다.


나의 나이 들어감을 상기하다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면 부쩍 왜소해진 모습에 눈물을 글썽이게 되는 나이가 됐다. 나 자신도 나이가 들어가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부모님의 얼굴에서 눈망울에서 손등에서 지나온 삶의 무게가 너무도 보일 때 나의 슬픔은 더욱 커진다. 나 자신은 과연 좋은 딸이었는가? 착한 딸이었는가? 내 안에서 아니다.라는 말이 금세 나오는 걸 보니 나는 좋은 딸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나 자신이 나이 들어가니 내 부모의 삶이 온전히 이해되고 연민하게 되고 부모님을 더욱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내가 꼭 나이 들어가야지만이 알 수 있는 것들이었을까?하는 자책과 아쉬움과 회한도 있다. 요즘 부쩍 부모님에게 많이 사랑받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조각조각 피어오른다.


노트북 화면에서 절로 고개가 창밖으로 돌려졌다. 내 시선이 꽂힌 건 바람에 강렬하게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이었다.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도 저들이 스러지지 않을 수 있는 건 단단한 뿌리깊은 나무 덕분이겠지. 어린 시절 나의 뿌리깊은 나무는 부모님이었구나.를 알게 된다.


괴테 전문가이신 전영애 선생님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괴테가 말했죠. 부모가 아이에게 줄 것은 뿌리와 날개에요." 그 인터뷰를 보고선 내가 만일 부모가 된다면, 엄마가 된다면 내 아이에게 뿌리와 날개를 달아줘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은 어쩜 이토록 사색할 거 사유할 것들로 가득한지. 경이롭고 신비롭고 도무지 모르는 것, 모르겠는 것 투성이인 미지의 영역과 세계들. 그러다 무릎을 탁 치게 되는, "내 안에 우주가 있다. 내 안에 세상이 있다." 마치 유레카를 외치듯 말이다.


인간에게 사유와 사색, 통찰이 없다면 얼마나 지루할까? 얼마나 재미없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통찰과 지혜로 이어져 온 인류 실은 무척이나 경이롭다.


나는 분명 죽어가고 있다. 죽는다. 죽기로 되어있다.

나의 마흔은 보다 즐겁고 보다 명랑할 것이다.

매 순간, 삶과 죽음이 나의 호흡과 교차하며 이어지고 있는 것이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나는 그렇게 명랑하게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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