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광화문에서

by Aarushi

아침 일찍 광화문 카페에 갔다. 이른 아침 카페 안 특유의 고요함과 차분함을 만끽하기 위함이었다. 사색이 용이해지고 절로 기분좋아지는 바이브가 있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따뜻한 물 한잔도 부탁했다. 그렇게 자리로 와 늘 그렇듯 통창을 바라보았다. 보슬보슬 내리는 창밖 너머 비 그리고 그것의 물줄기를 바라보다 저만치 가깝게 보이는 전광판의 네온사인은 내가 서울 한복판에 앉아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모든 것이 조화로워보였다. 그렇게 한 시간여 앉아있다 교보에 들러 책도 좀 보고 이쯤돼서 점심약속 장소로 걸어가면 되겠다... 타다닥 내 머릿속은 그렇게 빠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꽤 오래 전 이 카페가 생긴지 얼마 안되었을 때 어느 겨울 저녁 퇴근 후 유연언니와 이곳에서 만나 베이글과 따뜻한 라떼 한잔을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유난히 어두웠던 그 겨울밤이 생각났다. 광화문 직장인 시절 퇴근 후 저녁 먹고 들르던 곳곳의 카페들, 그랑서울 지하에 있던 수제 맥주집, 종로 빈대떡, 화목 순대국... 그 시절 나름대로의 짙은 낭만이 있었다. 이제는 지나는 곳곳마다 나의 지난 시절이 알알이 박힌듯 속속들이 절로 떠오르는 건 무어람. 언제 이렇게 흘러왔나 싶기도 하고 그 시절의 나는 어디로 간건가?싶기도 하면서 그 시절을 붙잡는 대신 아름답게 추억하고 기억하고 떠오르면 떠오르는대로 절로 미소지으며 흘려 보내는 성숙함도 있다.


눈이 올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의 비라니. 이 또한 아름답다. 추적추적 보슬비 내리는 광화문의 아침은 낭만 있었고 늘 그렇듯 지적여보였다. 광화문은 기운적으로 확실히 내게 알맞다.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나고 기분좋아지는게 있다. 교보로 들어가니 사람들로 북적였다. 평소보다 훨씬 많아 보였는데 우산만 사서 곧장 나왔다.


신문로에서 점심약속이 있어 그쪽으로 걸어가던 중 내가 자주 다니던 길로, 골목길로 걸어가보았다. "와, 이곳 정말 자주 드나들었는데... 여기가 이렇게 바뀌었네?" 스물 후반의 광화문 직장인의 나가 오버랩됐다. 매일 이 주변에서 동료들과 점심을 먹었는데... 아련해졌다. 그때와 비교해보면 광화문은 무언가 바뀐거 같으면서도 또 가만보면 그리 바뀌지 않은 것 같기도 한 묘한감이 있다. 무튼 광화문 일대는 내게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이다.


원래부터도 약속을 광화문 아니면 여의도에서만 하는 편이라, 친구들도 안다. 이젠 내가 광화문에 있다고 하면 어디있을지 알 것 같다고 한다. 내 기운이 잘 맞는, 가면 내가 편안해하고 차분해지고 기분 좋아지는 장소만 찾게 된다.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카페로 이동하는 길, 광화문 사거리는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본래 가려던 카페가 자리가 없어 나왔는데 그 이후로 들른 카페 여러 곳에도 자리가 없어 소화도 될 겸 계속 걸었다. 그러다 리사르에 갔다. 이곳도 붐볐지만 입구 쪽 스탠딩 바에 서서 친구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나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테라로사 다행히 딱 한 자리 남아 있었다. 올 겨울 첫 뱅쇼인데 너무 맛있는게 아닌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이 참 따수웠다. 카페 안 그 북적임도 이토록 따뜻했달까. 그게 바로 사람사는 맛아닌가. 사람들도 각자 저마다의 사는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싶고 그 모습들이 참 다정해보이고 친절해보였다.


인생이란, 여전히 모르겠는 것 투성이지만 이렇게 좋은 기운을 얻고 오는 날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겠다. 지금 여기. 오직 이 순간밖에 없는 것이구나. 행복도 즐거움도 기쁨도 삶의 환희도 다 내 안에 있구나. 나는 분명 죽는다. 그러니 순간 순간 즐겁게 살자.


우울할 새가 어딨니?

무기력할 새가 어딨니?

슬플새가 어딨니?

좌절할 새가 어딨니?

절망할 새가 어딨니? 절로 내 안에서 인다.


광화문 직장인 시절엔 광화문역이 출근길이라 365일 늘상 이곳에 머물렀지만 퇴사한 후론 광화문은 내게 약속 장소, 나들이 장소가 됐다. 자주 가게 되는 날도 있지만 또 나서지 않으면 한동안 안가게 되는 곳이 되어버렸는데 마음 안에서는 늘 광화문의 추억이랄까 하는 것이 아주 깊게 자리잡아있다. 그 보따리 상자를 열면 봇물처럼 쏟아져나올 귀하고 소중한 아름다운 그 시절의 나의 기억들, 추억들, 사람들이 있다.


내년이 되면 광화문을 더욱 자주 드나들어야겠다.

그곳은 분명 내게 활력소가 되어주니까.

좋은 기운을 받으러 말이다.


늘 그렇듯 토요일 광화문 나들이는 이토록 행복했고 날 미소짓게 했다.

이곳은 내게 늘 깊은 여운과 영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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