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듣는 노래 중 하나는 여전히 아름다운지.이다. 멜로디가 좋아서다. 노래를 재생하고 침대에 앉았다. 글이 날 불렀고 노트북을 켰다. 그렇게 음악을 들으며 나는 늘 그렇듯 무심하게 글을 써내려간다.
문득 떠오른 제목은 새해여도 여느 날처럼 그렇게. 내 마음의 반영이겠다. 아직 오피셜한 나이는 39이지만 마흔이다라는 생각이 있다. 이제 나도 마흔이구나싶고 마치 다시 태어난듯 변화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며칠 전 한산한 시간에 영화관에 갔다. 예전엔 여의도 ifc로 토요일 조조를 보거나 광화문 씨네큐브에 가서 영화를 봤다. 개인적인 취향은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하는 영화들이다. 영화관에 간지 정말 수년만인듯한데 문득 아바타3가 보고싶었다. 아바타는 영적인 영화다. 물의 길은 수기운 반영이고 불과 재는 화의 시대 반영인듯 감독은 그걸 알았을까? 놀라운 통찰력이란 생각이 든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영화관으로 저녁 예매를 했다. 영화를 본 건 잘한 일이었다. 3시간이 내겐 전혀 지루하지 않고 1시간 반 정도 같았달까. "우리 모두 위대한 어머니와 연결돼 있다" 고개를 끄덕였다.
연말이라고 해서 특별하진 않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생일이건, 연말이건, 어떤 연휴이건 여느 날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방식대로, 나의 선호대로, 기호대로, 취향대로 잘 보내는 것에 집중한다. 스벅의 블루마블 치즈케이크 하나면 달콤한 하루를 보낼 수 있고 고전 소설 하나면 잠시나마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그것이 내겐 자유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며 함께 연결돼있음을 느끼고 나 자신이 행복하고 기분좋아지는 일을 한다.
마흔이 되어보니 정말이지 인생은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심각하게 받아들일 거 하나 없었다는 것. 그리고 지나온 나의 삶 모두를 연민하게 되고 안아주게 되었다. 온전히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그것은 우연이면서 필연이었음을 나는 그렇게 아주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를 실감하게 된다. 문득 그럴 때가 있다. 현실감에서 벗어나 마치 딴 세상에 온 사람같은, 지금 내 앞에 펼쳐진 것들이 무척이나 낯설고 나 자신이 아닌 것 같은 그런 기시감. 나이 들어갈수록 나의 통찰과 사유와 사색은 좀 더 깊어지고 짙어지는 것 같다. 이런 내 안의 것을 드러낼 표현할 쏟아낼 도구가 내겐 글쓰기였음을. 글쓰기는 내 안의 것을 꺼내 그것을 확인하고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글을 통해 내면의 나를 바라보고 안아줄 수 있었다.
새해가 곧이지만 나는 늘 그렇듯 여느날과 같을 것이다. 예전에는 연말이니 내게 선물을 줘야지.라는 생각도 있었는데 이젠 그런 것조차 별 감흥이 없게 됐다. 내 일상에 필요한 것, 작고 사소한 걸 사는 것만으로도 기분좋아지고 그러면 그것이 선물이지 한다. 연말 끝자락 새해로 넘어가는 즈음 내가 꼭 하는 것은 있다. 묵은 것들을 다 털어내는 것인데, 안입는 옷이나 물건들을 미련없이 정리하고 버린다. 집안 곳곳을 깨끗하게 한다. 내가 꼭 입는 옷만 몇 벌 두고 1년 동안 도통 손이 가지 않고 입지 않았던 옷을 버리고 기운적으로 버리고 싶은 내 마음이 그렇게 동하는 물건들도 미련없이 버린다. 현관과 신발장도 깨끗하게 정리한다. 그릇이며 수건이며 버릴 건 버리고 내 살림살이 전반을 수정한다. 단출한 살림살이어도 비울게 나온다.
꽤 오랜 고독의 시간동안 나는 무얼 기대했나?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의 마지막 구절처럼,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 나는 무엇을 기대했나? 그러면서 사색하기도 하고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를 맞으며 걷는 산책길에서조차 나는 나 자신, 삶, 인간에 대해 사색하게 된다. 절로 그리되는 것이 신기하다. 고립될 정도의 고독은 경계하지만 어느 날은 깊은 심연으로 침잠해 나를 만난다. 그러다 펑펑 눈물이 쏟아질 때가 있는데 그것은 내게 어떤 강력한 슬픔과는 다른 또 다른 슬픔이다. 그렇게 고개를 들어 눈물을 내 손등으로 닦아내면 다시 태어난듯 내 안에선 생의 의지가 샘솟는다.
삶과 죽음은 같은데 나는 그동안 뭐 그리 인생을 심각하게 생각했나? 대단하게 생각했나?하는 아쉬움과 회한도 있다. 마흔의 나는, 마음이 평온하고 어떠한 일에도 침착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마흔에 사랑이 찾아온다면 나는 서로가 편안한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젊었을 땐 화려하고 세련되고 멋진 사랑이 좋았던 때도 있었다. 그런 사랑도 겪어봤고 외려 마흔의 사랑이 기대되는 이유는 고독 속에 피어난 내 안의 내면의 성찰과 탐구와 사람에 대한 이해, 통찰, 지혜 이런 것들이 이제는 좀 더 편안하고 차분하고 침착하고 현명한 사랑을 할 수 있게 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에서다. 이해되지 않을 게 무언가. 존중하면 되는 것을 이라는 생각이 있다. 아집에서 벗어나 사랑과 존중으로 인간을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라는 알아차림이 있다.
올해의 마지막 날도 새해의 첫날도 나는 여느 날처럼 치즈 케이크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땅을 밟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산책을 할 것이다. 내 두발이 언제나 그렇듯 붕뜨지 않게 늘 땅의 대지에 야물게 닿아있도록 나는 그렇게 나의 마흔을 맞이할 것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다. 삶이란 내가 사는게 아니라 절로 펼쳐지는 것이었다. 내가 할 것은 그저 내맡기는 것. 놓아버리는 것이었다. 나의 마흔은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기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는 괜찮다는 것과 침착하게 차분하게 내게 펼쳐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수용의 마음이 내겐 더 이롭다.
중년에 접어든 나는 지성을 놓지 않는 섹시한 중년이 되고 싶은 바람이 있다. 생기는 이전만 못하더라도 여전히 빛나는 눈빛을 가진 그런 사람. 그러려면 내면의 아름다움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