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엔 생각보다 어딜 나가거나 바삐 혹은 분주히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굉장히 정적이고 차분하고 고요하고 침착하게 보내게 된다. 아주 느긋하게 어슬렁어슬렁 부엌에 갔다가 물도 마시고 커피 한 잔 타고 소파로 와서 티비를 켠다. 아침 일찍 유일하게 보는 프로그램이 인간극장인데 그렇게 이십여분 보다 티비를 끈다. 그러다 어느 한 곳에 멍도 때리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는다. 삶이 단순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돌이켜보면 삶이 단순할 때, 단순했을 때 몸을 나름 바삐 움직였을 때 다른 생각이나 망상할 것 없이 가장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가급적 삶을 단순하게 하려고 한다. 복잡한 걸 제거해 나가는 과정이 날 더 생기있게 한다.
벌써 오후다. 새해 늘 그렇듯 잘 먹고 잘자는 것이 본질 아니겠는가. 나의 기운을 가장 잘 끌어올릴 수 있는 것도 이것이다. 그렇게 날 위한 점심을 차려 맛있게 먹고 LED조명 2개만 켜놓은채 고요한 시공간 속에 나를 놓는다. 나가지 않아도 가끔 집에서 메이크업을 할 때가 있다. 있는 옷을 미리 매치해본다거나 헤어롤로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웨이브와 머리를 한다거나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눈매를 강조한 옅은 스모키 메이크업을 하곤 한다. 순전히 내 기운을 높이기 위한 행위인데 효과 있다. 집순이인지라 어디 나가는 것은 귀찮고 그렇게 나는 자기 만의 방에서 고독을 느끼고 다음을 위한 에너지를 비축한다.
집순이다보면 옷정리나 살림살이 정리가 수시로 이루어진다. 지난해 봄에 산 작은 스팽글이 들어간 얇은 가디건이 있는데 그걸 입어보곤 만족스러워했다. 잘 샀군.하는 만족감이겠다. 옷이 대부분 자라인데, 스무살 넘었을 때부터 자라옷을 즐겨 입었던 것 같다. 스타일상 체형상 자라옷이 제일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서다. 여의도 IFC자라 매장만 가는데 익숙해서도 있고 내 기준 가장 옷이 많다. 옷감 퀄리티에 비해 가격이 점점 올라 꽤 부담스러운 옷이 되었는데 자라옷은 무조건 겨울 세일 기간에만 산다. 거의 70%정도는 돼야 사고 싶은 마음이 든다. 겨울 세일 때 봄 여름 옷을 사두는 편이다. 유행타는 옷은 사지 않는다. 지난 겨울 마음에 드는 스커트 두 개를 각각 29,000원에 샀는데 스커트 하나에 129,000원이던 걸 여의도에 갔다가 마음에 들어 산 것이다. 올 여름 아주 잘 입었다. 옷도 소비재라 이런 방식으로 사는 편이 경제적이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옷은 깔끔하기만 하면 얼마든 괜찮다는 생각이 있고 결국 몸매를 관리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란 생각이 있다.
비우고 비워도 비울게 또 나오는 건 무엇일까. 무튼 비우는 것이 곧 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꼭 필요한 물건만 두고 비우면 내게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이 명확히 구분되고 선명해진다. 내 살림살이란 나의 라이프 스타일과 가치관 태도 등의 반영이라 단출할수록 가벼울수록 삶이 단순해진다. 소비도 줄게 된다. 합리적 소비가 는다.
갈수록 쉬는 날은 더욱 집순이가 되어가는데 집순이면 어떠한가. 그것이 날 편안하게 하므로 그러면 되었다.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거나 카페 무드이 재즈를 틀어놓거나 내가 좋아하는 발라드를 틀어놓거나 음악도 내게 벗이 되어주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고전 소설 하나면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내겐 이런 하나하나가 다 낭만이다.
청소도 하고 빨래도 돌리고 바짝 말려진 옷이며 수건을 갠다. 창문을 열어 환기 한다. 마스크 팩도 하고 아주 작고한 사소한 날 위한 관리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글쓰기도 빠질 수 없고 따뜻한 차 한잔으로 마음을 녹인다.
실은 새해 첫 날, 우울감이 왔다. 그러다 눈물이 났고 그렇게 눈물을 또르르 흘려보냈다. 눈물만 흘리면 안된다. 질문해야 한다. 나는 왜 이러는가? 나는 지금 왜 우울한가?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왜 불안한가? 직면해야 한다.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끝까지 가보아야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알게 되고 내 눈물을 내 손등으로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글쓰기는 치유의 과정이다. 이렇게 고요함 속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으면서도 그 고요한 적막 속에 키보드 소리만 유난하게 들린 채 나는 나의 심연으로 어느 새 침잠해 나를 만나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마치 심연의 바닥에 좌표를 하나 꽂고 다시 돌아오는 듯한 그렇게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고 나면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듯한 착각을 한다. 그 몰입감이 날 치유하는 것이다.
나의 요즘 화두는 자유의지가 있는가?다. 로버트 새폴스키 교수에 따르면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질문하고 사색하고 사유하고 통찰하는 삶이 즐겁다. 보이는 것이 다일까? 나라고 할만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아는 것이 다일까? 내가 아는 것이 진실이라고 할만한 것은 무엇인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사색과 사유, 통찰이 즐겁다.
쉬는 날이라고 해서 거창할 거 없는 지극히 평범한 보통의 삶이다. 지금을 살면 무엇이 두려울까? 어제의 우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없다. 헛헛한 웃음이 나올만큼, 어제의 우울은 실체가 있었던 것인가? 실체없는 허상이었음에 대한 안도다.
엄마가 보낸 짤막한 메세지 하나에 여운이 깊다.
"즐겁게 살자 좋은 세상인데~~~^^"
나보다 늘 백만배는 더 긍정적이고 생기있는 엄마를 보며 나를 알아차린다.
그래, 참 좋은 세상인데, 나는 무엇에 집착하며 낭비하고 있는가? 감사하며 즐겁게 살아보자!
나의 글쓰기는 정말이지 언제나 내가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된다.
그걸 또 알아챌 수 있게 한다.
솔직한 나의 고백이자 독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