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자정이 넘은 시각, 늦은 밤 내가 한 일은 조촐하고 차분한데 자세를 고쳐잡고 마음 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얼굴에 마스크팩을 올려놓고 나 자신을 쓰담쓰담하며 기운 좋은, 기분 좋은, 긍정적인 말들을 아주 침착하고 차분하게 해줬다.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만큼 강력한 것이 있을까. 자정이 넘은 지금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인다.
2026년 병오년이 밝았구나. 새삼 그러면서 내 안의 여러 말들 중 계속해서 "나를 귀하게 여기기"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진심으로 그러한데 나를 귀하게 여기자. 사랑해.라고 말하며 양팔로 있는 힘껏 나 자신을 꼬옥 안아주었다.
아빠와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중년 부부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아빠라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예순 중반이 넘어 곧 칠십을 바라본다고 이야기하자 오십대 중반대로 보이시는데 딸이 아빠라고 해서 놀랐다고 했다. 어릴적부터도 딸들이 아빠와 함께 걸으면 다들 아빠가 이렇게 젊으시냐고 물어보곤 했다. 나이보다 젊어보이는 아빠여도 딸의 눈엔 아빠도 정말 나이가 드셨구나.싶고 어느 날은 많이 작아진 어깨에, 뒷모습에 몰래 눈물을 훔칠 때가 있다. 엄마도 아빠도 이젠 정말 나이가 드셨구나. 나도 나이가 들었으니 당연한 것이면서도 나의 늙음보다 부모님의 나이듦에 대한 아쉬움, 언젠간 찾아올 이별에 대한 슬픔같은 것들이 밀려올 때가 있다. 마흔이 되니 이제는 나의 죽음보다 내 부모님의 죽음이 더욱 선명하게 와닿고 아련하게 느껴진다.
저녁을 먹고 나오면서 달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빠에게 소원을 빌자고 했다. 그렇게 아빠와 걸었고 그 시간이 나는 무척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부모님이 늘상 하시는 이야기는 먹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말라는 것이다. 엄마는 어릴적부터 내 몸에, 내 안에 들어가는 건 아끼지 말고 좋은 것으로 골라 먹어야 된다고 하셨다. 유일하게 좋아한 과일이 딸기였는데 주말에 서울에서 집으로 놀러가면 새벽시장에 함께 가서 딸기 2박스를 사며 서울 올라갈때까지 마음 껏 다 먹고 가라고 하셨다. 엄마는 지금도 여전히 카톡으로 이 말을 빼놓지 않으신다. "나를 가장 사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해~ 네 자신이 가장 소중한거야."
내 마음에 어둠이 짙었던 시절,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고 지금은 그 시기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채 나 자신에 대한 비난, 후회를 반복했던 그 시절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한편으론 그런 시기가 있었기에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질문할 수 있었고 고독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방금 보니 노트북 화면 속 년도가 2026-01-01이 되었다. 병오년 나는 무럭무럭 잘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면의 힘, 내면의 평온과 안정, 사랑이 무럭무럭 잘 자랐으면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지금은 온통 모든 것에 사색이 인다. 어느 순간부터 절로 그리 되었고 그래서 심심할 새가 없다. 침대 위 포근한 이불 속으로 쏘옥 들어가니 글을 쓰고 잘까.싶어 노트북을 가져왔다. 그러곤 내가 좋아하는 여전히 아름다운지.노래를 틀어놓고 물흐르듯 써내려간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새해 새벽 글쓰기 하나로 나의 모든 것이 경건해졌다. 정화되었고 치유되었다.
물흐르듯 써내려간 글을 쓰고 난 뒤 곧장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려간다. 내가 나 자신의 글의 첫독자가 되는데 글쓰기 그리고 직후 나의 글을 제3자 처럼 읽어내려가는 것까지 나는 그렇게 나 자신과 대화하고 치유하고 위로하고 안아주고 다독인다.
실은 글을 읽어내려가는 매순간 놀랄 때가 있는데 그것은 내 글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내 사색과 사유 그리고 지적인 활동에 대한 감사함과 나름의 놀람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내가 스토리라면 나는 이런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구나.하는 것들. 내 안의 것들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희열도 있다. 기교있지 않아도 화려한 문장이 아니어도 나는 나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글쓰기가 내겐 어려움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대화 그 자체라는 것에 언제라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외면과 내면은 하나라 모두 중요한데 새해에는 좀 더 잘 입고 다니자.라는 생각이 든다. 옷도 안사는 편인데 이제는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사서 잘 입고 다니자. 그것이 날 또 기분좋게 하니까. 기운을 높이고 내면의 질량을 높이자. 그렇게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자.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자.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데 누가 날 귀하게 여길까. 짧지만 강렬하게 오가는 내 안의 속삭임에, 대화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눈물이 날 땐 그냥 펑펑 우는 편인데 이 새벽 글쓰기를 하고 난 뒤 또 갑자기 일으켜진 어느 생각에 눈물이 쏟아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날 흔들지 못한다. 행복과 기쁨도 실은 슬픔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흘리는 눈물은 나약함이 아니란 것도.
사랑하자.
나를 귀하게 여기고 타인을 귀하게 여기자.
친절하자. 다정하자.
건강하자.
결국 본질로 귀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