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육을 삶았다. 사과 하나를 얇게 슬라이스했다. 물은 넣지 않는다. 무수분 수육으로 약불에 삶다 레스팅을 반복한다. 레스팅 하는 사이 차에 물건을 가지러 갔다 차 안의 짐들을 가지고 나왔다. 차 뒷좌석에 있던 털이 복슬복슬한 통굽 베이지 크록스와 신고 나온 운동화와 바꿔 신었다. 운전할 때 신을 운동화는 고스란히 그곳에 두고 장우산 하나도 챙겼다. 그렇게 집으로 걸어오는 길 귀여운 지비츠와 털의 조합이 귀여워 신발 사진을 찰칵 찍었다. 그러곤 엄마에게 보냈다. 지난해 겨울 제주에서 엄마가 선물해 준 것인데, 덕분에 아주 감사히 잘 신고 있다는 사랑과 감사의 무언의 의미였다.
집순이기도 하고 원체 생각이 많고 상상하기도 좋아하고 나만의 낭만을 만끽하는 스타일이라 실은 내겐 모든 것이, 사방이 내가 만들어낸 세계고 언어고 낭만이고 그렇다. 함박눈에 더욱 퐁퐁해진 마음을 안고 집에 도착했다. 곧장 부엌으로 가 수육 냄비를 열어보았다. 레스팅도 잘 된듯. 도마에 올려놓은 뒤 조금 더 식혔다. 그 사이 나는 요리조리 왔다갔다하면서 저녁 먹기 전 내 살림살이 정리를 한다. 음식엔 적당한 뜸이 있어야, 뜸이 들어야 더 맛있다, 더 맛있어진다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갓 한 요리보단 조금은 식은, 레스팅 된 음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기다리는 설렘도 있다. 뭐든 급한 마음으로 빨리 익어라하는 것보다 다른 곳에 집중하다 어느 순간 시계를 봤을 때 적당한 시간이 흘러있을 때 딱 그런 자연스런 모먼트, 여유가 내 음식을 더 맛깔나고 부드럽게 한다는 생각이 있다.
며칠 새 은근하게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었는데 마음을 내려놓고 차분하고 침착하게 가라앉힌 뒤 내려놓고 바라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어찌 안받고 살수 있을까? 지금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선 완연하게 내려놓을 줄 알고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게 되었다. 내가 고민한다고 해서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면 이제는 내버려둔다. 흘러가게 둔다. 생각과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내 소중한 시간을, 하루를, 순간을, 주말을 망치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 않으려 한다.
수육을 삶은 건 나를 위한 것이었다. 잘한 일이었다. 얇게 썰어낸 수육을 접시에 가지런히 담았다. 김장 김치도 담아내고 날 위한 한 끼를 차려 먹었다. 수육을 삶는 과정 속 낮과 밤의 교차처럼 내 하루가 재정렬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열고 재료들을 꺼내 수육을 삶는 순간부터 내 움직임과 생기와 감각은 달라졌다. 아마 내가 원한 건 그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주말 오후의 늘어짐과 나른함도 좋으나 그러다 문득 어느 한 생각에, 어느 갖은 생각에 빠져 잠겨 침잠해 지금 여기.에 머무르지 못하고 두려움과 불안과 걱정에 휩싸이게 되는 상황이 오기 바로 그 직전을 막기위한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것도 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생각보다 거센 바람에 흠칫 놀라도 집 주변 한바퀴를 돌다 온 것도 찬바람을 쐬기 위함이었다. 정신이 번쩍 드는게 있다. 올해 들어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데 이 마음도 천천히 들여다보고 있다. 실은 변화를 원하는 내 안의 강렬한 목소리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독백처럼 나는 말하고 있었는데, "나의 삶은 뭐랄까. 참 무난함과 평탄함과는 거리가 멀었어. 다이내믹하고 진토 용처럼 늘 변화무쌍했던 거라네. 이제서야 알겠군. 이제는 알게 되었네. 나의 지나온 삶이 지금은 많은 면에서 이해가 되고 받아들이게 되네. 그래도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차안에서나 혼자 산책하는 길에서나 자기 전에 침대 위에서나 그렇게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은 아니었을지.
무난하다는 것. 평탄하다는 것. 이것 역시 관념이 아닌가? 무난하다는 거, 평탄하다는 거, 다 내 안의 관념 내지 인식 아닌가? 지금의 나는 겉보기의 무난함과 평탄함이 아닌 내 안에서 무난함과 평탄함과 나 자신의 삶의 아름다움을 찾는다. 어떤 평가가 아닌 그저 나 자신이 그렇다고 느끼면 되는 것. 아직도 내려놓으려면 멀었구나.싶을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용케도 알아차릴 수 있음에 감사하다.
마흔이 되어보니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마치 마흔이 된 자들의 특권인 것처럼. 자기 생을 한 번쯤은 파노라마처럼 되돌아보는 시기인 것 같다. 그 다음엔 나아감이 있다는 것도 깊이 알게되는 나이가 마흔이다. 우연처럼 다가온 고독은 필연이었고 여전히 고독하다. 고독 속에 생계가 있는 현실을 살고 있고 어느 날은 마치 내가 사는 현실이, 세상이 꿈같은 느낌도 드는, 어느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는 그런 기시감이 들 때도 있다.
엄마는 요즘 부쩍 혼자 지내고 있는 딸이 마음에 쓰이는지 자주 카톡 메세지를 보내신다. 엄마의 바람은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가정을 이뤄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으실텐데 엄마는 막상은 그런 부분에 대해 일절 이야기를 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엄마 마음을 더욱 알 것 같다. 딸의 고독을 엄마는 오래전부터 눈치 채신듯하다. "누가 뭐래도 넌 최고야!" 엊그제 엄마의 카톡에서 으쌰으쌰 미소 지었다.
실은 모르겠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겠다. 내 삶을 예측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 편이 수월하다. 그 편이 날 더 안정감 있게 한다. 내려놓음과 수용이 있다. 원하지 않는다가 있다. 막 무언가를 원할 때보다 원하지 않을때 절로 얻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자연의 이치와 우주의 흐름은 어쩜 이토록 한치의 오차가 없을까.싶을만큼의 우연성을 경험하다보면 오히려 직관적이게 되고 바라지 않게 된다. 필연임을 알게 된다.
내려 놓아라. 이번주 내 안에서 들려오는 강렬한 목소리다.
"내려 놓아라 그러면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