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콩 & 단호박 수프
“초아입에 들어가는 건 아까워 하면 안돼.
너의 입에, 너의 몸에 들어가는 건 절대 아끼지 말기.”
어릴적부터 엄마는 늘, 좋은 재료를 사는 일에, 먹는것 엔 돈을 아끼지 말라고 하셨다. 덧붙여 엄마는, 남에게 줄 음식은 항상 깨끗하고 예쁜 것,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보이는 걸로만 소중히 골라 줘야 한다고 하셨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내게 맞는 음식을 먹는 것. 잘 자는 것. 마음이 편안한 것.
지금의 내 요리는 단출하지만 신선한 식재료로 매 끼니 직접 해먹는다.
인간에게 요리란,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과 내 삶의 가치관과 철학과 태도를 담는 그릇과 같달까. 요리할 때의 나는, 마치 창의적인 예술가 혹은 사유하는 철학자가 된 듯한 기분이다.
나는 어떨때 신나할까.
어떨때 즐거울까.
어떨때 행복할까.를 생각하면
그 중 하나가 요리할 때.다.
요리할 때 평온함을 느낀다. 요리할 때 설렌다. 내 요리는 레시피가 대중 없다. 내 멋대로인데. 맛이 좋으면 된다.는 생각이 있다. 머릿속에 상상한 걸 실현하느라 바쁘다. 이걸 넣어보면 어떨까. 마리네이드에서부터 드레싱까지 순전히 제 멋대로인 게 분명하다. 그 와중에도 나름의 질서는 있다.
특히나 사람들에게 대접할 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 때 더욱 정성이게 되고 집중하게 된다. 요리는 몰입의 시간이기도 하다.
요즘은 날 위한 요리보다 이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위한 요리를 할 때, 더 큰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요리는 매 번 설레고 다채롭고 향기롭다.
장보고 집에와서 정신없이 재료를 다듬고 요리를 뚝딱 하고 있는 날 볼 때면,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러다 싱싱하고 신선한 식재료들을 보며 별 거 아닌 것에도 나를 투영한다. 작고 사소한 깨달음은 덤이다.
요리는 내 삶과도 똑 닮았다.
A bowl of chickpea & pumpkin soup
갓 만든 꾸덕하고 짙은 텍스처의 병아리콩 & 단호박 수프는 내 소화력을 돕는다. 피스타치오나 캐슈넛 무엇이든 자기 취향의 견과류를 크런치해서 가니쉬로 올려주면 근사한 수프 한 그릇이 완성된다.
병아리콩 & 단호박 수프와 당근 수프는 나의 시그니처이기도 한데, 이 수프를 먹어본 사람들은 폭풍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어디서도 먹어보지 못한 맛인데 건강한 맛인데다 정말 맛있다고들 한다. 넉넉하게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자주 나누는 음식이기도 하다.
비오는 어느 날, 몸이 피곤하고 으스스한 날, 내 기분이 조금 가라 앉는 날, 내 마음이 어두운 날, 날 위한 따뜻한 수프 한 그릇이 날 기똥차게 위로 할 때가 있다.
건강한 음식은 날 그리고 사람을 치유한다.
요리는, 사랑이다.
다행히 요즘은 날 위한 요리에 행복감을 느끼고 있지만 이전의 나는 나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할 때 엄청난 행복감을 느끼곤 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누군가를 위해 장보고 재료 하나하나 손질하고 음식을 만들고 테이블을 차리는 그 과정 모두가 날 행복하게 한다. 설레게 한다.
일전에 어느 책에서 사랑한다는 건, 상대방을 일하게 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는 문장을 본 적 있는데 격하게 공감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아껴주고 싶고 뭐든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것 아닌가.
음식도 직접 해주고 싶고 상대방은 그저 쉬게 하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나의 그 일이, 그 수고가 전혀 힘들지 않다.
오히려 그 수고가 날 살아있게 하는, 난 늘 그랬던 마음으로 사랑을 했던 것 같다.
내 요리에 감동하고 기뻐하는 상대방을 보는 일이 내겐 더 큰 행복으로 돌아왔다.
사랑할 때 내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더 큰 기쁨을 느끼는 편이다.
그래서 요리는 내게 사랑이자 배려이기도 하다.
사랑할 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자 진한 사랑의 표현이다.
요리의 즐거움이 또 이렇게 사랑.과 연결되는 내 생각의 무작위함이란, 결국엔 또 사랑으로 귀결되는 나.다.
요리는 내가 하면 가장 기분 좋아지는 것들 중 하나인데, 요리는 내게 빛과 소금이며 날 파닥파닥 살아있게 한다. 기분이 다운되거나 마음이 불안할 때, 우울감이나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괴로움과 생각들이 날 지배할 때, 난 어김없이 부엌으로 향한다. 평소에도 직접 요리해 먹는 습관을 가지긴 했지만 이런 감정 들일 때 나는 유독 내 온 에너지를 내 요리에 내 그릇에 가득 담는다.
그럴 땐 아무런 생각 없이 도마 위에 호박, 가지, 양배추, 감자, 당근, 양파 등을 뚝딱뚝딱 썰어내는 소리, 지글지글 보글보글 자글자글 소리에 뚜껑이 팔그닥팔그닥 그 안의 건더기와 국물이 넘을락 말락하는 딱 그때 등등 날 위해 요리하는 그 모든 과정과 소리에 집중하면 이내 날 괴롭히는 잡념은 사라지고 나만 남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요리는 그야말로 특별하지 않다. 우리가 옷을 입고 양말을 신고 신발을 신는 것과 같은 그와 동등한 행위이자 생활이다.
Carrot so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