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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May 30. 2024

밸런스(아우라에 대하여)

파리에 살 때의 일이다. 그날의 내 계획은 튈르리 정원을 산책 겸 지나 16구까지 걸어가 볼 참이었다. 유난히도 을씨년스럽던 그날의 파리 가을 날씨처럼 나 역시 무심하게 툭, 을씨년스러운 표정을 하고 걸었을지 싶다. 무튼, 중간쯤 걸었을까. 갑자기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 남자는 뉴욕에서 왔고 1년째 파리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아무리 젠틀한 뉴요커라 할지라도 알게 뭐람, 나로서는 그저 낯선 이에 불과했다. 어쩌다 보니 대화가 잠시 이어졌다.


그의 요지는 분명했다. 혹시 배우인지, 배우가 아니라면 배우가 될 생각은 없는지 내게 물었다. 약속 장소로 가던 중 튈르리 정원에서 우연히 걸어가는 날 보게 됐고 그의 말에 따르면 아우라가 느껴졌다고 했다. 그래서 말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는 생각보다 진지했고 원한다면 뉴욕과 보스턴에 있는 영화제작자인 친구들에게 프로필을 전달해 주고 소개까지 시켜주겠다고 했다.  


한 번은 학교 가던 길에 낡은 자전거 한 대가 내 옆에 멈춰 섰다. 그는 며칠 전 메트로 샤틀레 역에서 날 보았다며 자신을 소개했는데, 내가 의심의 눈초리로 믿기 힘든데?라는 표정을 눈치챘는지 재차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자신은 책을 읽고 있었고 내가 갑자기 황급하게 샤틀레 역에서 내렸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진짜 샤틀레 역에서 내렸었다. 쨌든 신기했다.


여하튼 이번에도 그의 요지는 같았다. 자신은 파리 출신 조각가이자 예술가로 이탈리아와 미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고 한다. 명함을 내게 건넸고 현재는 예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그때 지하철 역에서 무언가 독특한 느낌에 날 유심히 보게 되었고 자전거를 타고 훅 지나가다 나 인 것 같아서 한 바퀴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자신의 모델이 되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본인의 아틀리에에 흔쾌히 언제든 놀러 오라며 적극적이었다. 내가 명함을 받고 후에 구글에 검색해보니 그는 유명한 진짜 조각가였다.


그 역시 내게 아우라가 느껴졌다고 했다. 나에 대한 첫인상에 대해 낯선 이들로부터 들은 단어가 "아우라"라니... 내가 늘 얘기하던 단어가 아우라였는데... 언제부턴가 주변 사람들에게 "있잖아, 난 나이 들어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아우라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게 멋진 거 같아"라는 말을 달고 살았었다. 와우, 기분이 사실 좋았다.


그 후로도 이런 일은 종종 있었고 심지어 프랑스 친구들로부터도 건너 건너 들은 적이 있었다. 프렌치 친구의 학부모들이 우연히 날 보게 됐는데, 우아하고 아우라가 있다고 했다고 나중에 건너 듣게 되었다. 콧대 높은 프랑스 여자들, 게다가 파리지엔느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니 내 만족이었고 승리의 기쁨처럼 쾌재 했다.


사실 서울에서도 이런 일들은 종종 있었다. 카페 사장님이 연예인 아니냐며 사인을 요청한 적도 있고  친한 동기 언니의 결혼식에서 부캐를 받았는데 부캐 받은 사람이 누구냐며 연예인 아니냐며 내 정체를 궁금해했다는 등, 지나가다 아름답습니다.라는 말을 꽤 많이 들어보았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인데, 이런 정도의 웃지 못할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있다.  


나는 아주 예쁘지 않다. 하지만 아주 매력적이다. 내가 언급한 일련의 일화들만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아주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어릴 적부터 요목조목 단아하게 예뻤던 언니에 비해 서구적으로 생겼다는 말을 들었고 태닝 한 듯한 구릿빛 피부에 큰 이목구비를 가졌다.


아. 우. 라. 내가 사람들을 만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그나 그녀가 가지고 있는 기운, 분위기다. 분위기가 곧 아우라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 사람만의 독특한 분위기, 범접할 수 없는 매력적인 분위기. 그것은 절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그 사람의 외모, 말투, 성품, 내면적 가치, 경험, 내적 성숙과 성장 등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가치들과 요소들이 합쳐지고 어우러져 하나의 아우라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면과 외면의 밸런스다. 내면이 아름답지 않은데 외면이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운이 전혀 다르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아우라 있게, 아름답게, 분위기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다면 분명 이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나를 정말 잘 안다. 내가 어떨 때 제일 예뻐 보이는지, 아름다워 보이는지 말이다. 어떤 색깔과 어떤 머리스타일을 했을 때, 어떤 옷을 입었을 때, 무엇이 나를 더 돋보이게 만드는지 말이다. 


밸런스는 곧 아름다움이고 아우라고 품격이다. 결국 내면이 탄탄한 사람은 그 분위기와 에너지가 절로 외면으로 뿜어져 나올 수밖에 없다. 내면과 외면의 밸런스, 자신만의 독특한 분위기 이거면 올 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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