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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기의 마음

WELLNESS LIFE=BEAUTIFUL LIFE

by Aarushi

현재 내 삶의 태도와 소비 패턴상 물건을 대용량으로 구매해 놓거나 하는 일이 없는데, 음식도, 식재료도 마찬가지다. 고로 매일 매일 일주일 주기의 나름 계산된 식재료들이 있다. 계획적으로 식재료를 사는 일, 생각보다 설레고 꽤 재밌다.


나이로만 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보다 남은 생이 더 많이 남았는데도 나는 요즘 왜 이리도 사는게 별거라니. 사는게 별건가요?라고 혼잣말을 하는지...^^ 그리 심각하게 살 거 없다 혹은 힘 좀 빼고 살아도 돼. 그래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라는 어쩌면 내게 하는 자기주문일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난 굵직굵직한 이벤트나 사건보다는 작고 소소한 이벤트에 확실히 약해지는, 쉽게 감동받는 사람이 됐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만족할 줄 알아야 내 행복의 지속성이 잔잔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화려했던 시절보다, 나름 반짝였던 시절보다, 나는 지금의 수수한 모습의 내가, 어떨땐 촌스러울 만치 나스러운 내 모습이, 외적인 반짝임보다 내 안에서 빛나는 내가, 반짝이는 내가 훨씬 더 만족스럽다. 어떨땐 참 희한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 시절보다 지금의 내 마음이 더 평온하다는 게. 무튼 사실이 그러하다.


마음이 어두컴컴했던 시절은 자유.라는 것이 나답다는 것이. 나를 안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해 방황했던 시절이기도 한데, 지금의 나는 자유라는 게 별 다른게 아니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의미의 자유가 아니라. 내려놓음, 자기 성장, 개의치 않음, 남과 비교하지 않기, 나를 궁금해 하는 것 등 나를 둘러싼 것들에 초연하리 만치 무심한 의연한 태도에서 나온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이전의 나보다 마음이 평온하다고 느끼는 건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자유로워진 내.가 내 앞에 우뚝 서있기 때문이다.


장보기는 내 삶의 즐거움이자 기쁨이자 낭만이다. 재래시장을 참 좋아하는데, 재래시장의 지극히 인간적인 분위기와 감성과 정겨움이 날 매료시킨다.


집 앞 로컬푸드직매장에서 장을 본다. 농산물이어서 그런지 어느 것 하나 같은 모양이 없다. 울퉁불퉁 모양도 제각각, 그 모습이 나는 무척이나 흥미롭고 재밌다. 어떤 건 흙이 그대로 묻어나 있는데, 식재료를 하나하나 만지면서 느낀다. 자연이구나. 생명이구나. 감사하다.


루꼴라나 아스파라거스도 대형 마트나 인터넷에서 주문하면 하나같이 정돈된 모습에 익숙한 크기와 모양이다. 로컬푸드직매장에서 볼 수 있는 루꼴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샐러드를 만들기에 예쁜 색과 모양이 아니라, 잎이 널찍하고 크고 색도 연두색이 아닌 진한 녹색에 가깝다. 식감도 모양도 연한 흔한 루꼴라보단 잎도 두터운 게 특징이다. 나는 연한 루꼴라보다는 투박한 루꼴라에 더 마음이 간다.


그런 루꼴라를 나는 냉큼, 덥썩 잘 사온다. 가격도 내 마음에 쏙이다. 루꼴라 한 봉지를 사면, 며칠은 아주 잘 해먹는다. 아스파라거스도 굵지 않고 얄쌍하고 아스파라거스 아랫부분이 보랏빛을 띄는 것이 많다. 아스파라거스는 주로 솥밥할 때 넣는데, 굵기가 얄쌍한 것이 솥밥에 넣기 딱이다.


나는 본래부터 완전하게 혹은 완벽한 모양의 것들보단, 무언가 조금 부족한, 미완성의 물건들에 대한 애정이 있다. 그릇도 매끄러운 것, 완벽한 모양보다는, 어딘가 부족한, 조금 삐뚤어진, 꺼끌꺼끌한, 울퉁불퉁한 것들을 좋아하는 취향이다. 그래서 도자기 그릇을 이토록 좋아하나보다.


그런 모습이 나와 닮아서인지도 모르겠다. "너도 나와 같지 않구나." 그들에게서 나.를 투영하기도.


장볼때 내 마음은 흡사 무라카미 하루키의 빵가게를 습격하다.처럼 비장하기까지 한데, 로컬푸드직매장을 습격하다.의 마음이 적확하다.


날 위한 건강한 식재료를 담는 장바구니.에도 소홀하지 않는데, 내 취향의 장바구니를 드는 일은, 태도이자 자세일 수 있다.


양송이 버섯, 단호박, 생강, 루꼴라, 오이, 샬롯, 당근, 애호박, 시금치, 고수는 내 장보기에서 빠지지 않는데, 나.에게 맞는 식재료를 찾고 향유하는 일. 건강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내게 건강함은 아름다움과 동의어다

건강한 삶이란 아름다운 삶이고 아름다운 삶이란 건강한 삶이다.

그래서 내게 WELLNESS LIFE(건강하고 행복한 삶)는 BEAUTIFUL LIFE(아름다운 삶)다.


Wellness life = Beautiful life


내 입안으로 들어가는, 내 몸 안에 넣는, 내 안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신체조직을 형성하는 것을 사는 일에 이토록 진지한 이유는, 비장하기까지 한 이유는, 내가 먹는 곳이 곧 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소홀할 수 있을까. 어찌 의식적이지 않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하는 내 의지 덕분이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화려하고 세련되고 반짝이는 사람보다는 수수해도 투박해도 세련돼지 않아도 반짝반짝 빛나지 않아도 자기 만의 개성과 스타일과 취향과 자기만의 삶의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됐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통해 나를 반추하고 삶을 관조하고 삶의 용기와 에너지를 얻는 편이다.


장보기의 마음에서 시작된 이런 사유의 끝에 난 늘,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것에 울고 웃는 사람이 맞으며 속은 단단하지만 따뜻한 사람이 되자.는 다짐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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