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플하다
커피 한 잔 후 소파가 아닌 바닥에 기대 앉았다. 때로는 소파위가 아니라 바닥이 내게 편안함을 줄때가 있다.
아침일찍 눈을 뜨고,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고, 이불을 가지런히 포개고, 배게를 탈탈 털어 쫙 펴준다. 그러곤 잠시 창밖을 내다보며 아주 잠시동안 멍.의 상태에 머문다. 오늘도 무사히 잠에서 깼다,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감사해한다. 오늘 하루 내게 또 어떤 재미난 일들이 펼쳐질까. 무튼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부엌으로 향한다.
한끼 잘 먹었다는 생각은 플라세보 효과처럼 내 몸이 금세 건강해졌다는 느낌이 들기에 충분하다. 어느 정도 정해진 루틴이, 자기만의 생활 규칙이 있다는 건 날 의도적이게, 의도적인 삶을 살게 한다. 그러므로 전혀 복잡하지 않은, 심플하다 못해 지나치게 심플한 지금 내 삶의 패턴과 태도와 생활이 나는 만족스럽다.
의도적인 삶을 산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의도적인 삶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더 영민하게 더 소중하게 보낼 수 있게 하는지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외적으로 멋쟁이로 보이거나 부티나 보이려는 것들에 관심이 없어진지 꽤 되었다. 지금의 나는, 화이트나 아이보리, 베이지, 연한 브라운, 연한 그레이톤 계열의 심플한 색감을 입고 가방은 조금은 낡아보이는(뭐든 새것 같이보이는 것보다 조금 낡은 것이 좋아졌다. 초라해보이는 것과는 별개다)에코백을 맨다.
옷매장에 가서 아무리 옷을 들여다봐도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새 옷을 사지 않은지 꽤 됐다. 이십대 시절의 내가 보면 놀랄일이다. 운동화 2켤레, 여름엔 주로 보헤미안 풍이나 히피스러운 샌들을 신는 편이라 여름 샌들 2켤레 있는게 전부다. 이마저도 부족함이 없다.
예쁘다고 필요하지 않은데 미리 덥석 사버리는 일은 없다. 운동화도 잘 신다 헤졌다 싶을 때, 내가 잘 신은 운동화의 쓸모와 용도가 이만하면 되었다 싶을 때, 다른 디자인의 내 취향의 운동화로 새로이 하나 고르는 일이 주는 소소한 기쁨이 있다. 내가 이리도 알뜰하고 살뜰한 사람이었던가.하는 마음이 일게 한다.
이미 넘치는데 하나 채우고 또 하나를 채우는 일보다 하나를 비우고 하나를 채우는 일이 내겐 훨씬 기쁘고 만족스럽고 안정감을 준다.
지금은 가방도 커리어우먼 느낌이 물씬 나던 것들도 다 정리해서 없고 에코백 4개 정도 남았다. 같은 또래 여자들보다 정말 없는 편일텐데, 나는 누가 뭐래든 이마저도 충분하다고 느낀다. 옷도 정리한지 오래돼서 특히 블라우스류.는 내 스타일이 아니라 모조리 정리했고 나다운 옷들만 남게 되었는데, 이마저도 단출해서 내게 남은 옷가지수들이 한 눈에 들어올 정도다.
옷이나 가방, 신발 등... 외적으로 날 화려하게 혹은 멋쟁이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것들에 집착하게 되지 않게 된 데에는 내면에 집중하면서 부터다. 어느순간 어느시점에서부터인가 나는 내안의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했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했고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일이 옷과 신발과 가방을 사고 멋있어 보이고 예뻐보이고 섹시해보이고 있어보이고 인기있는 일보다 훨씬 더 가치있고 의미있고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이란 걸 깨닫게 됐다.
그러려면 몸과 마음의 건강한 밸런스도 필수라는 생각인데, 특히나 꼭 비싸지 않은 옷이여도, 내 몸이 가볍고 내 체형이 올바르고 곧으면, 자기관리로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면 얼마든지 몇 천원짜리 몇 만원짜리 옷도 몇 십만원 몇 백만원 짜리 옷보다 훨씬 더 빛나게 하는 마법을 부릴 수 있다.
나는 곧잘 특히나 해외에 나갈 때 삼청동 골목 길거리에서 파는 5천원 짜리 끈으로된 민소매 2개 정도 사서 나가는데 목선은 목선대로 드러나면서 날씬한 체형과 어울리면 전혀 5천원 짜리 옷으로 보이지 않는다.
결국 내 마음과 몸이 명품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몇 천원 짜리 몇 만원짜리 옷과 신발과 가방도 그 가치는 그걸 입는 사람에게 달렸다는 생각이다. 이런 것도 사실 지극히 개인적인 지극히 사적인 취향과 삶의 가치관과 태도일 것이다. 개인적으론 내게는 이런 것들이 훨씬 가치있고 의미있게 다가온다는 것과 이런게 나답다는 걸 깨닫게 된 탓이 크다.
어떨땐 몇 천원짜리 옷을 입었는데 친구들이 예쁘다거나 혹은 어디서 샀는지 물어라도 보면 그 쌈빡함에 쾌재할 때가 있다. 살뜰하고 알뜰한 소비를 할 때 즐겁고 기뻐하고 감사해한다. 그러다보니 집에 채워진 내 살림살이나 물건들이 이렇게 단출할 수가 없는데 아무렴 어떤가. 나는 이만해도 부족하지 느끼질 않는 걸. 남을 의식하느라 보이는 것에 집중하느라 소중한 내 취향과 내면의 가치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가끔 생각한다. "초아야, 너 원래 이런 애였니? 갖고 싶지 않은게 사고 싶지 않은게 이리도 없어서야...^^"
심플하게 살면, 내 생각도 심플해진다. 고로 쉽게 부정적인 생각들로 날 잠식하게 내버려두는 일이 줄어들게 된다. 사특한 생각에서 멀어지니 주변엔 온통 감사한 일들로 내 삶이 가득 채워진다. 내면을 살찌우는 일은 해도해도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내게 내면을 살찌우는 일은 곧 내공을 쌓는 일이며 그 내공은 결국 앞으로 남은 내 인생에 빛과 소금이 돼 줄거라 확신한다.
"네 멋대로 해!"
심플해도 부족함이 없다.
심플한 삶은 집착하지 않는 삶이다.
집착하지 않는 삶은 심플한 삶이다.
나는 심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