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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Jun 10. 2024

텀블러의 마음

 물건도 인연이다

쓰임이 있는 건, 각자의 용도가 있는 건 하나씩만 가지고 있다. 텀블러가 두 개일 때, 우산도 두 개 일 때, 하나만 갖고 있을 때와 물건을 대하는 내 마음가짐과 자세가 다름을 깨닫게 됐다. 두 개 일때, 이젠 용도가 같은 물건이 2개 혹은 그 이상일 때 내 마음이 외려 불편함을 느낀다.


용도에 맞는 물건을 하나씩만 가지면 장점이 많다. 어느 걸 가져가지. 어느 걸 챙기지의 고민이 없으니 에너지와 시간 낭비가 준다. 그 하나도 온전히 내 취향의 것일텐데, 그 하나가 굉장히 귀하게 느껴지고 그걸 대하는 내 마음이 굉장히 살뜰해지고 따뜻해진다.


하나를 더하는 것. 하나를 더 채우는 것보다 하나를 잘 유지하는 것. 하나를 더 빼는 것이 지금의 내 삶의 태도와 결이 맞다. 물건 고르는 일이 의도치 않게 생각보다 까다롭게 됐다. 내 취향의 물건을 찾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기도 하고 어떨땐 흡사 보물찾기와도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생명이 깃들지 않은 것이 어딨을까. 물건도 나와 같이 살아 숨쉰다고 생각하면 함부로 대할 수 없다. 물건에 집착하여 아낀다는 게 아니라 나에게 친절하듯 내 삶은 편리하게 해주는 물건들에 대한 존중이다.


물건도 인연이다.

그래서인지 예상치 못한 일로  물건이 망가지거나 잃어버렸을 ,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동안 나와 함께 하는 시간동안 자기 역할을  해냈을 것이고 너와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구나. 와 나의 임무가 끝났구나.한다. 사람 인연과 다를  없다. 놓아주면 된다.


쿨함이 아니라 내려놓음이고 받아들임이고 존중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내 천가방 안에 머무는 텀블러는 지극히 내 취향의 것이다. 물을 한꺼번에 많이 마시지 않아서기도 하고 물만 담아먹는 용도라서 200ml 사이즈로 골랐다. 깔끔한 화이트다. 퉁퉁한 것이 볼 때마다 귀여워 미추어버리겠다.는 마음이다. 그 귀여움이 잠시나마 날 즐겁게 한다. 그립감도 손바닥 안에 폭 안기는 것이 딱 좋다. 내겐 모든 것이 조화로워 보여 선택했다.

 

텀블러를 사용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건데,

1. 지구를 더는 아프게 해서는 안된다는 지구 시민으로서의 부끄러움의 자각

2. 플라스틱이 내 몸에 해롭다는 분명한 팩트와 자각

내겐 이 두 가지 이유다.


하나 뿐인 텀블러는 물을 담아 마시는 용도, 카페가 아닌 실내에서 커피를 마셔야 할 경우 도자기 컵을 손수건에 싸서 들고 다니기도 한다. 마음이 있으면 몸은 움직이게 되어있다. 실천할 마음이 있으면 실천하게 된다. 거꾸로도 유효하다. 실천하면 실천할 마음이 생긴다. 결국 모든 것은 다 내 마음 먹기에 달렸다.


나이 들어서일까. 늦은 깨달음 덕분일까.

서른 후반의 내 삶의 방향이 선명해지고 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의 해답이 익어가고 있다.

늦은 깨달음을 나는 사랑하게 되었다.

 

텀블러가 하나 뿐인 건, 내겐 유용하고 유리하다. 텀블러 입장에서도 자기 본연의 쓸모에 반가워하고 있을거란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텀블러의 마음도 나와 같고 나의 마음도 텀블러의 마음과 같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는 것, 의지가 되는 것, 필요가 되어주는 것.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잊지 말아야할 예쁜 마음이다.


텀블러가 예쁘니 내 마음도 예뻐진다.

이렇게 물건 하나에도 할 말이 많은 내가 되었다. 아무렴 어떤가. 내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겠고 살뜰하고 수수하지만 눈부시고 찬란한 내 삶의 태도와 가치관의 발현이겠다.


지금의 내 살림살이들은 하나같이 나와 꼭 닮았다.

나와 닮은 물건을 고른다.

물건도 쓰는 사람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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