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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Jun 20. 2024

실패한 사람

우연히 이런 질문을 스치듯 봤다. 실패에 대한 정의 혹은 즉 여러분이 생각하는 실패란?


일초의 망설임없이 내 대답은 이랬다.

"내 안의 참나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에고가 만들어낸 걱정 불안 우울이라는 허상을 내  안에 침잠하게 내버려 두는 일."


밝기만 했던 아니 밝을 줄만 알았던 이십대를 지나 서른이 넘은 직후 내 스스로 내린 선택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채 지리하게 내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고 아등바등했던 시절을 지나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이제서야 깨닫게 된 나만의 실패에 대한 정의였다.


아쉬운 건, "어쩌자고 내  인생은 항상 밝을 거라고만 생각했을까? 어쩌자고 내 삶이 순탄하기만 할거라고 생각했을까? 실패에 왜 이토록 민감했을까? 살면서 크고 작은 실패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걸 왜 이토록 몰랐을까? 외면했던 걸까?" 하는 점이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성공 내지 실패에 대한 정의는 다 다를진데, 내가 내린 실패에 정의대로라면야 그렇다. 나는 완벽하게 실패한 사람이었다.


우울에 휩싸여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 나를 잃어 버린 시절도 있었고 그런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내 자신을 처절하게 매몰차게 싸늘하게 차갑게 외면해버린, 방관했던 방황의 시절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정말 왜 그렇게 아파했을까? 힘들어했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나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실패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걸 깨닫게 된 지금, 실패라는 단어는 내게 더는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 살면서 우린 얼마나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는가. 실패는 삶 그자체기도 하다.


이젠 지금 껏 살아온 내 모든 인생을 받아들일 수 있는 깨달음과 지혜가 나름 켭켭이 쌓여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내가 되었다는 것. 나만의 언어와 기운을가 지게 되었다는 것.으로 내 스스로를 위로하고 안아주며 달래고 살뜰히 보살펴가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실체없는 우울과 불안이 찾아올 때가 더러 있다. 다행인 건 그 감정이 어쩌다.라는 것과 있어봐야 몇 십분 일 때가 대부분이다. 마음 습관, 마음 근력 훈련 덕분이다. 이젠 자동반사적으로 쉬이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나만의 질서를 가지고 단단하게 살다보니 이곳저곳 튼튼한 내.가 되었다는 것. 분명 성장한 나다. 쉽게 상처받지 않는 내가 되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가장 먼저 챙기고 돌보는 내가 되어, 대견스러울리만치 내가 나에게 고마울 때가 많다.


우울, 불안, 두려움, 쓸데 없는 걱정 등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들이 날 소위 잡아먹도록 갉아먹도록 내버려두는 일을 태연하게 방관했던 나를 반성한 결과다. 


런 날 구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내가 내린 정의로, 나는 완벽하게 실패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일이었다. 그걸 인정하고 수용하고 나자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나 나는 선명해졌고 내 삶도 선명해졌다.


나의 실패란, 그 누구도 아닌 내 스스로가 내린 것이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보다 더 한 안타까움이 있을까. 나 자신을 실패한 사람이라고 고착화된 오래된 습에 가둬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그 습.의 무서움이랄까. 그 습을 버려야만 내 삶이 변한다는 걸 깨닫게 된 후로 나는 스스로 일어설 수 있었다.

 

실패는 정말이지 축복이었다. 실패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에 스치듯 지나가는 것일지라도 사유할 수 있고 사색할 수 있다는 것, 나만의 언어로 글쓰기를 통해 내가 나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 표현할  있다는 것, 독서의 황홀경을 알게 되어서, 고독의 기쁨을 알게 되어서. 진심으로 내게 온 크고 작은 실패의 경험들을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그럴 수도 없거니와 돌아간다 한들 실패는 너무도 당연하게 또 다시 나와 함께할 거니까.


실패의 아수라장에서 회오리 속에서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순간, 인간은 끝없이 좌절 혹은 절망하기보단 결국 이젠 올라가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소스라치게 온갖 발악과 고통의 과정 끝에 끄끝내 일어서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나는 그렇게 내 스스로 나의 내면의 밑바닥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의 지리멸렬했던 우울이 결핍이 내겐 축복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 나는 내게 주어진 그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고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는 삶을 살게 되었다.


내가 귀하고 소중한 존재이듯 세상 모든 사람들 역시 귀하고 소중한 존재하는 것.

그렇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살갑고 친절하고 상냥해야 한다. 지극히 인간적인 것일 때, 우리는 인간이지 않을까.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 것처럼, 글도 물흐르듯 자연스레 마음가는대로 생각나는대로 쓰면 그만인 것을.한다.


글쓰기는 어려움이나 의무나 부담이 아닌 이유다.


실패한 사람. 실패한 여자라는 사실이 마치 훈장처럼 느껴지는 요즘.

실패해봐서 또 그걸 극복하고 있는 나라서, 여전히 크고 작은 실패를 하고 있는 나라서. 요즘은 그저 미련하기도 어리숙한 모습을 보여도 빵빵한 양볼을 살짝 비틀어 꼬집으며 귀여운 녀석이라고 넘길 때가 많다. 여전히 실수 투성이여도 여전히 실패해도 그런 크고 작은 실수, 실패에도 참으로 너그러운 따뜻한 사람이 되었다.


나라는 사람의 성장에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있을까. 해질녘과 완전한 밤이 되기 전 그 사이. 이 시간쯤 집에 가는 길에 나만의 작은 낭만 하나를 선물하러 발걸음을 힘차게 옮긴다. 며칠 전부터 팥빙수가 그리 당겼는데. 저녁으로 내게 팥빙수 한 그릇을 선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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