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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Jun 18. 2024

친절하세요

오이 김밥으로 도시락을 쌌다. 부엌에 오이 향이 은은하게 뱄다. 천연의, 자연의 향기에 촉촉한 오이처럼 내 마음도 은은하게 촉촉하게 안정됐다. 나오기 전 깨끗하게 빨아 바삭바삭하게 잘 말려 놓아 접어둔 커버로 쿠션갈이를 했다. 뽀송뽀송한 쿠션을 만지작 만지작하니 내 기분도 덩달아 뽀송뽀송해졌다.


평소 친절함. 상냥함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 나란 사람이 먼저 친절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내게 친절함이란 지나친 친절, 상냥함 혹은 의미없는 밝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친절함이란, 우리 모두는 소중한 존재며 귀한 존재.

고로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고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들인지... 너무도 당연하다. 내가 나를 귀하게 여기는 만큼 마찬가지로 남들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친절함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을 대할 때 상식적이지 않을 수가 없으며 상냥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친절하지 않은데, 상냥하지 않은데, 아름다울 수 없다.


친절함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문득 이십대 은행원으로 열심히 일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본점으로 발령나기 전까지 압구정지점에서 일했다. 지금도 압구정역만 지나가도 씨티은행 압구정 지점 앞을 스치듯 지나가기라도 하면 그때 생각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곤 한다. 어떨 땐 아련하기까지 하다. 아직까지 잘 다니고 있는 동기들은 만났다하면 그 시절의 나를 소환하느라 정이 없다.


아침 행낭을 열어보면 내  앞으로 온 동기들의 응원 편지가 있었고 펜이라든지, 예쁜 메모라든지, 여행에서 사온 작은 주머니 지갑이라든지, 주전부리라든지... 동기들이 보낸 깜짝 선물은 그 시절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때까지만해도 참 순수했고 어렸다.


압구정 지점에서 근무하던 시절, 난 참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었다. 정말 괜찮은, 인간적으로 본받고 싶은 어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다양한 직군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느끼는 게 많았던 시절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 같다. 좋은 고객들이 오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고 좀 한가하면 나는 기꺼이 지점 문앞까지 배웅해드리곤 했다. 당연한 게 아니었지만 나는 그저 내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분들에 대한 진심어린 존중이었고 내 마음의 표현이었다. 진심은 통한다는 건, 경험적으로 잘 알게 된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진심의 힘을 잊지 않는다.


그런 인간적인 마음의 나눔이 유독 애틋했던 시절이다. 주말농장에서 따온 거라며 퇴근할   집에 가져가라고 상추  포대기를 가져다 주시는 고객도 있었고 커피,  등을 살포시 전해주고 가시는 분들도 많았다. 바빠보이는 내게 방해될까 직접 전해주시지 않고 쳥경언니에게 케이크를 전달해 놓고 가신 분들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한 마음을 전해줬던 고객들이 참 많았다. 그때 생각했다. 이렇게  예쁨받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이렇게  예쁨을 받다보니 어쩌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렇게 좋은 고객들을 만났고 좋은 추억들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친절함과 상냥함 때문이었단 걸 깨닫게 됐다.


상냥한 말투, 친절한 말투 뿐인게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무엇. 진심.  상냥함이 그때의 나였던  아니었을까.


그때 고객 중에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중이셨던 멋쟁이 여교수님이 계셨다. 올 때마다 늘 내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초아씨처럼 젊은이들이 갖춰야 할 게  세 가지가 있어. 하나는 말씨, 다른 하나는 맵씨, 또 다른 하나는 솜씨야." 기억에 남는 또 다른 분은 그레이 헤어에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와 아우라, 카리스마를 모두 갖고 계신 분이었다. 말씀도 얼마나 아름답게 하시는지 그분과의 대화는 늘 신났고 배움이었다.


추억을, 기억을 가다듬기만 하면 곱씹기만 했다하면 이렇게도 요술주머니처럼 술술이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글이 길어지니 문맥상 줄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요즘 드는 생각은, 내가 쓴 글이 나의 지나간 시절의 기록이기도 하고 현재 삶의 기록이기도 하고 내 인생영화의 시나리오와 같다는 생각이다.


나란 사람의 한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내 글쓰기와 글이 이토록 소중할 수밖에.


나의 친절함과 상냥함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친절함은 내 일상을 내 삶을 더욱 가치있게 만든다.는 생각이 확고해서다. 나에게 상냥함이란 내가 나를 대할때처럼 남도 같게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치 "나는 너를 다 이해하고 있다고. 나는 너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무언의 눈맞춤 내지 공감 그리고 위로이기도 하다.


꽤 오래전 친구와 합정역 어느 가게에 맥주 한 잔 하러 들어갔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이 주문 받으러 오면서 언니와 내게 기분좋은 칭찬을 해줬는데, 우리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 예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현했고 나는 마침 들고 있던 꽃 한송이를 그녀에게 전했다. 그러자 그녀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게  아닌가. 언니와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곧 그녀의 눈을 바라봐주었고 그녀가 진정 될 때까지 기다려줬다. 무엇이 그녀를 눈물 흘리게  했을까. 나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알 것 같다는, 너를 이해한다...는 그런 작은 위로와 공감과 응원이 필요한 게 아닐까. 이 모두는 사랑이자 내가 생각하는 친절함과 상냥함과 일치한다.


사람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글을 쭉 써내려가다보니 어느새 내 마음이 촉촉하게 젖었다.


살며 사랑하며 아름답게 친절하게 상냥하게.

그렇게  나답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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