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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Jun 23. 2024

모든 것은 이미 내 안에 있다

잠시 멍한 상태다. 책을 덮은지 몇 분 채 되지 않았는데 여운이 아직 남아있다. 갠 옷들을 넣으러 침대방으로 갔는데, 침대 맡에 둔 라마나 마하리쉬의 책이 날 불렀다. 늘 생각하는 건, 내가 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책이 날 부른다. 책이 날 선택한다는 것. 


너무도 자연스럽게 책을 들고 소파에 앉았다. TV는 켜놓은채 조용히 모드였고 서큘레이터 돌아가는 소리는 여전했고 이제 막 세탁기를 돌려놓은 상태였다. 책 읽기전 시각은 6시였다. 


책을 덮고 나니 8시 13분. 2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그 2시간 동안 나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도, 서큘레이터 돌아가는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 어떤 것도 날 방해하는 것이 없었다. 순간순간 내 호흡을 알아차리고 있던 기억 밖에 없다. 책 읽을 때 나는 어느 순간 몰입에 이른다. 명상이란, 몰입이란, 알아차림이란 내겐 이런 방식이다. 내 삶에 자연스레 녹아있고 내 곁에 머물고 있다. 


오늘의 책 읽기는 계획에 있지 않았다. 예상치 못했다 한들, 다 예정되어 있었던 거겠지. 이 책이 날 부른 이유가 다 있겠지. 내 가슴에서 부른 거겠지.했다. 그 경험은 늘 내게 행복감을 선물한다. 일요일 밤, 나는 또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우주로부터 선물 하나를 받았다. 


분명 내가 한 거라곤 책을 편 일인데, 눈깜짝할 새 2시간이 지나있었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신기할 노릇이다. 자주 경험하지만 늘 새롭다. 동시에 지금 내 정신은 아주 맑은 상태다. 무언가가 싹 씻겨 내려간 기분이랄까. 


이런 경험일 때면, 시공간에 대한 질문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시간이라는 개념, 공간이라는 개념 과연 실재하는 것일까.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에 있었던 것인가. 나는 그 사이 어디에 머물고 있었던 것인가. 그걸 경험하는 나는 누구인가. 불과 몇 초 전의 나는 나인가. 절로 사유하고 사색하는 내가 된다. 


결국 그 사유와 사색의 끝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과 마음을 내 안으로 돌리는 것.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할 것.으로 귀결된다. 


고전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인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시절 철학자들과 작가를 만나는 일은 시공간을 초월한 시공간, 세계와의 직접적인 만남이다. 읽다보면 어느 순간 헤르만 헤세가 나와 마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깊은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다. 


그들의 어떤 책을 읽어도 결국 단 한가지의 질문만 남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아는 것. 나에 대한 탐구가 결국 내 삶의 괴로움을 해소하는 길이라는 것. 나를 먼저 알아야 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이해할 수 있고 나를 먼저 알아야 타인을 알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나를 안다는 것. 나에 대한 탐구를 하는 여정을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싶다. 내가 생각하는 나에 대한 탐구는 건강한 몸과 마음 근력을 쌓는 방법과도 동의어가 된다. 


내가 나 자신일 때, 나다운 모습일 때. 일이 쉽게 풀렸다. 일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결된 적이 많았다. 내게 유리한 방식으로 작용했다. 가령 나다움을 잃지 않고 나답게 행동하고 입고 말했을 때,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주의를 그곳에 돌리지 않았을 때, 집중하지 않았을 때, 집착하지 않았을 때, 선물처럼 좋은 결과들이 내게로 왔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기만의 생의 철학자이자, 편집자이자 감독이자 연구자이다. 나를 연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 뿐이다. 나를 알면 괴로움이 해소될 수 있다는 걸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이토록 감사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은 이미 내 안에 있는데, 나는 어디에서 그토록 찾아 헤맸는가. 돌고 돌아 내 안에 집중할 줄 알게 되었다. 자유란 외부에 있지 않다, 내 안에 이미 있다는 것. 내게 자유란, 완전하고 완벽한 심오한 것의 자유라기보다 나를 아는 것. 나에 대한 갈망이자 탐구다. 그럼으로써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 나다운 것. 그런 류다. 


책이 날 불렀고 두 시간 동안 나는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은 채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어떤 해석이든 자유로울 수 있다. 내겐 몰입이겠고 명상이었다. 순간순간 이런 경험은 내 삶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신비롭게 한다. 그 신비감이란 곧 경외감이고 이 세상에 태어난 나 자신이 얼마나 행운인지. 축복인지. 기적인지.를 느끼게 한다. 삶을 더욱 즐겁게 아름답게 따뜻하게 친절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언제라도 이런 방식의 독서와 경험은 어느 방향에서라도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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