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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Jun 24. 2024

일상이 수행이다  

여는 날과 다름없는 아침이 밝았다. 동이 트고 아침이 밝았지만 과연 같은 아침일까. 어느 날 하나 같은 아침은 없다. 일어나자마자 이부정리를 한다. 배게도 하나, 시트를 제외하곤 덮는 이불 심플한 것 하나. 내 침구는 이러하다. 뭐 하나 들여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그런 내 침실을 보고 있으면 정신이 비워진다.  


군더더기 없는 그 심플함이 내게 안정감을 준다. 내게 알맞는 삶의 취향, 방식, 질서를 가지고 살아가면 단출하고 심플한 것 같으면서도 꽤 흥미롭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내 환경이 세팅되면 사특한 생각이 들어올 새가 확연히 줄어든다. 알아차림도 용이해진다. 


마음이 어지럽거나 어둠일 때, 가장 먼저 내 환경을 바꾸거나 재설정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계란 2개를 올리고 8분으로 타이머를 맞춰놓았고 아침에 듣기 좋은 노래도 재생했다. 서큘레이터도 켰고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도 했고 아침 청소까지 마쳤다. 마음이 평온하면 마음이 괜찮으면 청소기를 돌리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서른 중반, 내 삶의 태도와 가치관에 큰 변화가 있었는데, 거창한 것은 아니고 나를 알게 되었다는 것. 나를 아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것. 내 안에 답이 있다는 것. 나는 언젠가 분명 죽는다는 걸 명징하게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다. 끌리셰하지만 그 끌리셰함에 진실이, 진짜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직후 내 삶은 새로운 방향으로 정열되기 시작했고 나도 그리고 내 삶도 변화해왔고 성장해오고 있다. 여전히 나에 대한 앎, 갈망은 계속되고 있다.


나 그리고 세상에 대한, 우주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내 삶은 감사함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이지 축복이자 행운이자 기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앎은 그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과의 치열한 농밀한 대화 끝에 얻은 것이었고 그것은 이미 내 안에 존재하고 있던 것이었다.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지금의 나는 날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함,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 신비와 경외감에 내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명상은 나를 이루는 핵심 기둥이기도 한데, 명상이란 알아차림이고 현재에 머무는 연습이다. 내게 명상은 앉아서하는 좌법만이 아니다. 일상이 온통 명상이고 수행의 장이다. 


간관계에서도 꼭 무엇인가를 내게 가르쳐주고 떠난다. 이젠 인간관계에 어려움이 있어도 내 안을 먼저 들여다본다. 나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닌지. 내 마음의 문제가 아닌지. "또 어떤 성장을 위해 이런 일이 내게 왔을까? 이 일을 통해 이 사람을 통해 나는 또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까. 어떤 지혜를 얻게 될까. 어떤 성장을 하게 될까?"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졌다. 


미운 마음이 일면 가장 먼저 내 안을 들여다본다. 일상이 온통 명상이자 수행의 장이라고 생각하면 화나지 않는다. 화날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 정확하다. 화낼 줄 모른다는 건 약함이 아니다. 침묵이 그 어떤 것보다 강할 때가 있다. 차분함과 온유함이 그 어떤 것보다 강할 때가 있다.  


나는 강하지 않음으로써 강해지는 법을 알게 되었다. 나약했던 부서지기 쉽던 지난 나는 기억일뿐 실재하지 않는다. 모든 건 결국 나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나를 알지 않고선 그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됐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이부자리를 정리하면서도 창문을 활짝 열면서도 요리를 하면서도 먹으면서도 청소를 하면서도 빨래를 개면서도 소파에 앉아 잠시 멍을 때리면서도 버스에서나 지하철에서나 걸으면서도 내겐 세상만물 모두가 수행의 장이고 사유할 거리고 사색할 거리고 소재고 명상이다. 


한 번은 책을 읽으며 천변길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그럴 개연성이 적은데 무당벌레 한 마리가 펼쳐진 책 위에 앉았다. 나는 놀라거나 호들갑 떨지 않았는데 활짝 미소지으며 그 무당벌레를 반길 뿐이었다. "안녕? 어쩐 일이야?" 그러면서 나는 조심스레 책을 땅 아래로 내려놓고 무당벌레를 놓아주었다. 


그러면서, 이 무당벌레가 지금 이 순간 내게로 온 이유가 다 있겠지. 자연이, 이 우주가 내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걸까? 그저 아름다운 순간! 난 즐기면 될 일!. 했다. 


해석은 내 자유일 것이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이 육체가 나'라는 것. '나라는 생각'의 착각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고 했다. 


생각은 내가 아니다. 이 몸은 내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일까. 주의를 내 안으로 돌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 결국 나는 누구인가.의 질문만 남는다. 나는 여전히 질문하고 있다. 


내게 수행이란 일상의 모든 것이다. 일상의 모든 작용이 내겐 수행의 이유가 되고 소재가 된다. 일상이 명상이 되는 삶, 사유하게 하고 사색하게 하고 질문하게 한다. 


절로 자연스레 그리 된다는 게 이토록 감사할 수가 없다. 

일상이 수행이다. 생활 속에 수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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