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nerplate Jun 26. 2024

내면의 빛

신선한 식재료, 내가 좋아하는 재료들을 사는데, 내 입에. 내 몸 안에 넣는 식재료를 사는덴 돈을 아끼지 않는다. 매일 직접 요리하고 매일 조금씩 장을 보면 이점이 훨씬 많다. 몸과 마음, 장 건강, 감정 관리의 기본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어느 면에서나 훨씬 경제적이다. 식재료를 보관하는 것 외에 냉장고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적당량을 만들어 먹고 남김이 없다. 먹다 남은 음식을, 한 번 조리된 음식을 냉장고에 넣지 않는다. 


대부분 로컬푸드 직매장이나 새벽 배송이나 로켓 배송으로 장을 보는 편인데, 마감 시간 때 매장에 가면 반값에 식재료들을 살 수 있다. 어쩔 땐 파격적인 가격으로 사는데 나는 그런 알뜰함이랄까. 살뜰함이 좋다. 그 행위만으로도 기분좋아지는 효과가 있다. 


오늘 밤이 지나면 상품으로서의 가치도 없고 신선하지 않을 텐데, 늦은 밤 사와서 다음날 아침, 바로 요리하면 면 된다. 이상 없고 신선도 면에서도 크게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자주 이런 방식으로 장을 휘뚜루마뚜루 잘 본다. 


바나나를 빠짐없이 구매해 놓고 먹는 편이 아니라서, 어쩌다 바나나를 산다. 마감 때 바나나 1묶음이 700원이었다. 아주 잘 익었을 뿐, 즐거운 마음으로 바나나 1묶음을 사왔다. 


이번엔 바나나로 어떤 요리를 만들어볼까. 헤비하지 않으면서 맛있게 한 번 만들어 봐야지!^^ 창의적인 생각들로 분주하다. 순두부와 바나나로 수프를 만들었다. 수프라는 개념이 내겐 한없이 자유로운데, 부드러운 것엔 수프를 곧잘 붙인다. 아무렴 어떠한가. 수프라는 것도 개념이지 어디 정해진 게 있던가. 실체가 있는 걸까. 


무튼 휘뚜루마뚜루 요정답게 시원시원하게 금세 뚝딱 완성했다. 완성된 요리를 담을 때도 진지하다. 어떤 집착이라기보다 이 음식이 내 몸안으로 들어가면 생명이 될텐데, 내 피가 되고 살이되고 몸의 신체조직을 형성할텐데, 일종의 사랑이랄까. 존중이랄까. 감사함이랄까. 배려랄까. 친절과 상냥함이랄까. 좋은 기운과 에너지를 전달하는 의미다. 


요리와 글쓰기, 독서, 운동, 명상 자체가 곧 삶이다. 이것들 없이는 나도 없고 나 없이는 이것들도 없다. 


요리가 명상이 되는 이유는, 어느 순간 사색이 되고 그 사색의 깊어감은 몰입으로 이어지고 그 몰입은 알아차림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 주의를 내면으로 돌리는 것. 하루에도 수시로 시시로 그런 작은 몰입감을 경험하면 지금 여기. 현재에 머물러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다 곧 그 현재도 곧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는 것, 1초 전의 나와 지금이 나는 같지 않다는 것. 사색의 힘이 더욱 강해진다. 


내가 생각하는, 이라는 것에도 질문을 한다. 과연 내가 생각하는 것일까? 생각은 내가 아니다. 생각하는 자는 누구인가?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누구인가? 진짜 나는 누구인가?로 귀결된다. 심오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나의 내면이, 나의 세계가 궁금해진다. 


결국 나 자신이, 나 자체가 곧 우주라면?이라는 것에 이른다. 그저 이 과정이 재밌고 즐겁고 신비롭다. 경외감이 든다. 고통이란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곧잘 하는데, 고통이 있기에 성장이 있었다, 성장이 있기에 고통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 어느 것도 다르지 않다는 걸. 결국 하나라는 걸. 


글쓰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글 쓸땐, 공.이랄까. 텅빈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그러곤 조금 전 쓴 글을 쭉 읽어 내려가본다. 이 글을 쓴 사람이 과연 나인가. 어떨 땐 소스라치게 궁금하고 알듯말듯한 묘한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가만히 바라보기.도 내겐 명상이다. 버스에 앉아서도 지하철에 앉아서도 노트북 앞 키보드를 두드리면서도 카페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커피잔을 바라보면서도. 순간순간 일어나는, 드러나는 대상들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게 된다. 


내가 진심으로 내 삶이 아름답다고. 감사하다고. 빛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다. 내가 가진 조건으로 나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로서 인식하는 것. 주의를 외부가 아닌 내면으로 돌리는 것. 그저 바라보는 것. 알아차림 덕분이다. 


지금의 내게 고통과 성장은 하나다. 그러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기. 친절하고 상냥하되 무심하기. 많은 말을 하지 말기. 눈동자와 눈빛의 안녕을 살피는 일. 심상을 돌보는 일. 습관이 됐다. 


"초아야, 초아야..." 마음의 갈피를 도통 못잡던 시절, 여행을 훌쩍 떠나기도 이름을 수천 번을 불러봤지만 그 어느 것도 내게 답을 주지 않았다. 아니 줄 수 없었다. 답은 내 안에 있었고 내 인식의 전환에 있었다. 


지금 이렇게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나라서, 사색할 수 있는 나라서, 감사하다. 그냥이 아니라 오감에서 느끼는 감사함이다. 


살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 진짜는 말이 없다.는 것이다.

바나나 1묶음을 700원에 득템하면서 일으킨 한 생각이, 의식의 흐름이 오늘 역시 기어코 여기까지 오고야 말았다. 이런 나의 흐름이 나는 그저 자유롭고 반갑고 기쁘고 즐겁기만 하다. 


내가 세계인데, 내가 세상인데, 내가 우주인데 무엇이 자유롭지 않을 수 있을까. 

이전 23화 농밀한 사색의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