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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Aug 28. 2024

이토록 사소한 것들

삶에도 적성이란 게 있다면 나란 사람은 간소한 삶, 단출한 삶이 이토록 적성에 맞을 수가 없다. 비우면 비울수록 차고 넘치니, 만족감을 느끼니, 풍족감을 느끼니.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삶의 적성을 찾았다. 


오늘 오전 싱크대에서 시작한 청소는 냉장고로까지 이어졌다. 미세한 얼룩까지 아주 박박 야물게도 닦아냈다. 반짝반짝하게 닦고나니 이토록 개운할수가. 잡념이 도망가버렸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8월의 여름 어느날, 오베르 쉬오아즈에 갔다. 고흐가 들렀을 교회 앞을,  고흐가 걸었을 밀밭을, 나는 하염없이 걸었다. 


빨래가 바싹하게 마른 듯한 여름 날씨에 그 길위에서 내 그림자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내 그림자를 따라 걷기 시작했는데 그때 땅바닥에 비친 내 그림자를 간직하고 싶어 사진을 찍어뒀다. 


내 뒷모습과 그림자에 대한 애정이 있다. 


인간극장, 예전의 다큐멘터리 3일, 자연의 철학자들, 다큐인사이드 인생정원, 숲이 그린집과 같은 교양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실은 TV 보는 경우는 이런 프로그램들을 볼 때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삶이란, 인생이란, 

사람다움이란 

인간다움이란 이런거구나.를 느낀다. 


어떤 날은 눈물이 난다. 

우리네 삶 그리고 인생을 통해 배우고 느낀다. 

결국은 사랑.이란 생각이다. 


사람의 상실이 더욱 깊어지는 시대가 아닌가싶다. 

지금 보단 내 어릴적이던 때가, 또 그보다 더 이전 시절엔 

그래도 사람.사는 세상이었던 것 같은데,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었던 것 같은데, 

사람 사이 정이 있었던 것 같은데. 

갈수록 세상은 점점 차가워 지는 것 같다. 


저녁에 마트에 들렀다.

장을 보다 예정에 없던 소비를 했다. 


전혀 있을 곳이 아닌 자리에, 

냉동식품을 파는 냉장고 옆에

파자마 바지들이 진열돼 있었다. 


평소같음 그냥 지나쳤을 텐데 

어쩐 일인지 파자마를 스윽 봤다. 

딱 하나가 내 눈을 붙잡았는데

고양이가 그려진 것이었다. 


어맛. 이건 사야돼!^^ 

고양이 그림이나 캐릭터가 들어간 물건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고양이 상이라 그런 것인가. 늘 애써 공통점을 찾는다. 

오른 손을 들고 찡긋하는 것이 꼭 내게 하는 것 같았다. 

일 초의 고민없이 냉큼 장바구니에 넣었다. 

오늘 너를 만날 운명이었구나.했다. 


내 취향의 내 스타일의 파자마라 

집에 가서 입어 볼 생각하니 얼마나 설레던지. 

이 하나에 설렐 일인가 싶지만 나는 확실히 설렌다. 


가격은 10,900원. 만족스럽다. 

사고 오는 길 내내 신바람이 났다.

콧노래가 나는 건 무엇. 


정말이지 즐거움이란 거. 행복이란 거. 

전적으로 내게 달렸다. 


뭘 더 많이 가져서 더 행복한 것이 아니다. 


내 수준 안에서 

내 환경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향유할 줄 아는 것. 

내겐 그런 것들이 행복이다. 


오늘 파자마를 살 계획은 없었지만

이런 류의 즉흥적인 소비는 

새로운 기분으로 데려간다. 

또 다른 경험으로 데려간다. 


내 마음에 너무 들었고 

안사고 돌아서면 후회할 것 같았고 

내 취향의 것이었으므로 

내가 기분좋았으므로

그거면 되었다. 

만족스럽다. 


만원 짜리 고양이 파자마 하나에 

나는 충만함을 느낀다. 

부자된 기분이다. 


나의 작은 사치. 

내게 이 작은 사치는 흔히 말하는 사치와는 다른 의미다. 

내게 사치란, 역설적이게도 

수수하고 단출한 내 살림살이에, 

내 삶에 낭만 한 스푼 더 하는 

내게 소중한 것들에 대한 소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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