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하고 싶은 이유

by Aarushi

아주 가느다란 실금반지 2개를 양손에 꼈다. 한동안 반지도 무엇도 끼지 않았는데 다시 끼고 싶었다. 액세서리 착용 하나로 이렇게 기분 좋을 일인가. 내겐 그럴 일이다. 문득 꼭 이 반지를 끼고 싶은 것도 다 이유가 있겠지. 뷰러로 눈썹도 한 껏 올렸다. 마음을 새로이 할 때, 마음을 달리 하고 싶을 때, 이런 방식으로 소소하게 사소하게 날 치장한다. 그러면 기분이 산뜻해지면서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


지난 번 자라에 갔다가 겨울 니트 베스트가 마침 세일이기도 해서 샀는데, 어제 오늘 입으니 더욱 마음에 든다. 남성옷이었는데 아무렴 어떤가. 니트나 가디건이 예쁘면 남자옷 여자옷 구분 없이 잘 입는다. 같은 사이즈라도 남자옷이 더욱 넉넉해서 어떨 땐 더욱 멋스럽고 편할 때가 있다.


지난 연인들을 떠올려보면 다들 나보다 훨씬 멋쟁이들이었다. 패션에 자기 만의 취향이 있었고 화려함보단 지적이면서 세련된, 스타일리쉬한 패션과 낭만, 멋을 아는 남자들이었다. 연애할 때 남자친구의 가디건이나 옷을 잘 입곤했다. 박시한 게, 넉넉한 게 딱 내 스타일인 것들이 많았다.


지나간 사랑이 유난히 다가오는 날이 있다.


사랑.이란 뭘까. 파리 고갱 미술관에서도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사랑할 땐, 나.라는 사람이 여실히, 적나라하게 과감하게 드러난다. 가장 위풍당당하기도, 가장 자신감 넘치면서도, 가장 약해보이기도 하면서도, 가장 나다운 모습을 내 스스로가 마주하게 된다. 어떨땐, 그 모습을 마주할 때 소스라치게 놀라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니, 그이를 만났던 때가, 그이가 딱 지금의 내 나이였을때.다. 참, 그랬구나.싶으면서도 6살 차이가 났던 그이도 어느새 마흔 중반이 되었겠구나. 나이 들었겠구나.싶다. 카리스마 있고 지적였고 스타일리쉬 했던 그였으니, 그 모습 역시 나이들었어도 변함이 없겠지.라는 생각까지. 그이 성향과 취향으로 짐작컨대, 분명 여전히 멋진 중년이 되었음이 틀림없다.


다행인 건, 이젠 지나간 사랑이 문득 떠오를 때, 아파하는 건 없고 그저, 행복했다.는 그래서 참 고마웠다.는 생각이 크다는 점이다. 분명 인연이었고 내 인연이었음에 고맙다. 딱 거기에 머물게 됐다.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면 늘 그렇듯, 언제 그랬냐는 듯. 현재 사랑에 흠뻑 젖게 될텐데. 수십년 인생사에서 수많은 사람들 중에 서로가 눈에 띄어, 마음에 들어, 좋아하게 되어 사랑을 하게 된다는 것. 인연이지 않으면 설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내가 맺은 인연들에 감사하고 지나간 사랑이든 현재의 사랑이든 모든 사랑은 소중하다는 생각에 이른다.


사랑에 엄청난 환상이나 의미부여를 하고 싶진 않다.고 하면서도 난 늘 사랑.을 논할 때, 이토록 감성적이고 또 감성적이고 만다. 마치 나의 엑스에게 혹은 나의 전 남자친구들에게.와 같은 느낌의 글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아무렴 어떤가.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지나간 사랑 그리고 나.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만의 생.을 아름답게 행복하게 즐겁게 멋지게 잘 살아가고 있을 거라. 바래본다.


초등학교 2학년 조카가 언니와 형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초아이모처럼?^^" 이래서 빵 터졌다고 하는데, 혼자사는 것에 관한 것이었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웃음이 빵터져 어찌나 낄낄대고 웃었는지. 사실이기도 했고 순수한 조카가 귀여워서 혼났다.


사는 게 무언지. 서른 중반 나는 혹독한 시간이 필요했다. 지리멸렬한 방황과 고독은 필연이었다. 그 시간을 지나오니 어느새 서른 후반이 되어있었다면 믿어질까. 정신을 차려보니, 그 지리한 시간을 지나오니 마흔을 앞둔 내가 서 있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방황의 시간동안 연애를 했더라면 나는 어땠을까. 그 시절엔 나 자신 밖엔, 나 자신이 바로 서는거 밖엔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끄끝내 이 겨울을, 이 계절을 지나면, 이겨내면 분명 성장할 거란 믿음이 있었다. 분명 저만치 성장한 내가 뻔히 보이는데, 이 과정을 견디지 못할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에 내가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했더라면 과연 행복했을까.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었을수 있었을까.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은 건, 필연이었겠다. 나 자신조차 내가 누군지 모르고 질문하지 않고 지리한 방황만이 계속될 때 누군가를 붙잡아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사실 소스라칠 만큼 다행이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 자신이 될 때, 내가 누군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때, 어느 누구에게도 기대거나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우뚝 설 수 있을 때, 혼자서도 잘 놀 때, 혼자서도 외롭지 않을 때, 성장할 때, 다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고 나니 서른 후반이 되어있었지만, 아쉽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내게 일어난 모든 상황이나, 사건 모두 다 그럴만 이유가 있겠지. 내 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내 삶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


서른 후반이 되어보니 이제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산다는 게 이런거였나. 나는 왜 그토록 인생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나?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것을.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끌리셰하지만 이 끌리셰함이 주는 본질, 메시지는 그렇기에 더욱 강력하고 의미있을 수 있다. 사랑할 때, 그 어떤 것도 나보다 먼저 일 수 없다는 것. 내 사랑의 핵심가치다. 상대도 그랬으면 좋겠다. 상대 자기 자신보다 그 누구도 먼저 일 수 없는 사람이길.


사랑할 때, 상대에게 절로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마음이지 않나. 상대가 움직이게 하는 것보다 내가 움직이는 것이 더 큰 행복과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편인데, 받는 것보다 줄 때 더 큰 행복을 느낄 때 아, 나 사랑하고 있구나.라고 느낀다.


마음이 참 단단해졌는지. 여유로워졌나보다. 다시 사랑이 하고 싶은 걸 보니. 사랑에 정답이 있을까. 이십대의 사랑, 서른의 사랑, 마흔의 사랑이라고 다를게 있을까. 사랑은 하나다.


순수한 사랑이 하고 싶으면 나 자신이 순수하면 된다.

러블리한 사랑이 하고 싶으면 나 자신이 러블리하면 된다.

설레는 사랑이 하고 싶으면 나 자신이 설레면 된다.

편안한 사랑이 하고 싶으면 나 자신이 편안하면 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은 다 내 안에 있다. 내 안을 들여다보지 않고는,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는지를 질문하지 않고는 그 어떤 것도 요원하다.


자기만의 언어를 가진 사람이길. 그러려면 나부터 나만의 언어를 가진 사람이어야겠다.

좋은 사람이길. 그러려면 나부터 좋은 사람이어야겠다.


사랑이 하고픈 걸 보니, 새삼 기분좋은 것 무엇. 새삼 설레는 건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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