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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Aug 30. 2024

8월 흘려보내기  

우연히 써보곤 너무 마음에 들어 구입한 핸드워시가 있다. 향이 주는 그 특유의 퐁퐁함, 사랑스러움이 있다. 이미 씻은 손인데 일부러 한 번 더. 씻는다. 가을이 특별한 이유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게 하는데, 가을바람만으로도 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게 하는데 탁월하다는 것이다. 


8월의 끝자락. 가을 바람에 내 몸을 실어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은 마음 굴뚝이다. 8월 끝자락에서도 나는 여름보다 가을을 생각하는 걸 보면 가을의 위로를 받고 싶나보다. 


8월은 내게 잔인한 달이었다. 우울감이 왔다 사라지길 반복했고 곧장 알아차린다해도 그 순간만큼은 있는 그대로, 우울하면 우울한대로 그렇게 나를 받아들였다. 몸과 마음 모두 내 마음 같지 않았으니, 힘이 들었으니 내겐 잔인한 달이었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달도 있고 이런 해도 있고... 확실한 건 모든 것은 지나간다. 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8월의 끝자락이 전혀 아쉽지 않다. 9월이 더욱 반갑다. 안좋았던 기운 모두 함께 흘려보내기로 한다. 9월 1일이 되는 순간, 마치 새로 태어난 것처럼,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야지. 


오늘 따라 하늘은 유난히 파랗고 구름도 유난히 하얗다. 하늘색 맨투맨 긴팔이 있는데, 화이트 스커트와 매치해 입어야겠다. 상의는 하늘, 하의는 구름. 이렇게 해서라도 자연과 더욱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겠다. 실은 은 나도 자연인데, 나와 자연은 하나인데. 


자연스레 상반기 내 삶이 파노라마처럼 스치듯 지나갔다. 무엇을 기대했나? 무엇을 했나? 어떤 경험을 했나? 세상은 내게 어떤 메시지를 주었나? 나 자신에게 어떤 질문을 했나? 잘 가고 있는 걸까? 무엇을 위해 사는가? 질문만 한다고 해서 삶이 변하지 않는다. 질문하고 실천해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


9월 버스표를 예매했다. 2박 3일 여행을 다녀올 참이다. 9월엔 어떤 일들이 내  앞에 펼쳐질까. 확실한 건 아무 일도 내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진 않는다는 거다. 절로 펼쳐지는 대로, 이 또한 다 이유가 있겠지. 즐겁게 씩씩하게 친절하게 다정하게 차분하게 침착하게 살고 싶은 바람이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무언가 꽉 믹힌 것 같을 때,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우울할 때 스토아학파의 책을 읽는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어쩜 이리도 명징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는지. 정신이 번뜩인다.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의 메시지는 그 시절에나 지금에나 어쩜 이토록 유효한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추석이 지나고 나면, 분명하게 선명하게 나답게 새로운 일을 시작할 것이다.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무얼 할 때 즐겁고 행복한지. 내 마음에 설렘으로 다가오는 건 무엇인지. 꽤 오랜 시간 날 붙잡은, 조여온, 가둬둔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나 내맡김의 세계로 나 자신을 풍덩 빠트려 보기로 한다. 


살아보니, 살다보니, 지난 내 걱정과 염려, 불안은 실체 없는 것이었다. 이토록 허무맹랑한 것이 없었다. 그것들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 내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 그러니 미리 짐작하고 결론짓는 일은 더는 없을 일이다. 


이 와중에 제일 잘하고 있는 건, 잘 먹고 잘 자는 것.이다. 기운이 있어야 어떤 일도 할 수 있다. 무슨 일이든 도전하고 해낼 용기가 생긴다. 걱정은 걱정을 만들어낸다. 기운이 현실을 만든다. 기운을 강화하는 것에 진심인 이유다. 


행복이 내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행복은 내가 살아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행복 그 자체가 내게 목적일 수 없다. 행복은 내게,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면서 순간순간의 즐거움, 상태다. 


카페에 앉아 달달한 솔티 라떼 한 잔을 마시는 일,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기, 글쓰기, 책읽기, 가벼운 산책하기, 하고 싶은 것들, 해내고 싶은 것들을 수첩에 적어내려갈 때,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볼 때, 창밖을 내다 볼 때, 비오는 날 비를 쫄딱 맞는 일, 장보는 일, 요리할 때, 낯선 장소에 떡 하니 덩그러니 남을 때, 여행할 때, 사랑할 때, 햇볕에 바짝 말린 수건을 얼굴에 댈 때, 향 좋은 바디워시로 샤워할 때, 노래 들을 때... 무수히 많다. 


모든 순간들이 실은 행복의 자갈이다. 행복이란 이름을 갖다 대었을 뿐, 실은 우리는 행복을 밟고 사는 것이다. 행복의 반대는 불행, 우울이 아니다. 관점을 달리하면, 인식을 달리하면,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실은 본래 있던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아직 한 낮은 무진장 여름인데, 가을가을하는 거 보니, 가을을 이토록 반기는 걸 보니, 올 여름을 어떻게서든 빨리 보내고 싶은 가보다. 이 또한 자연스레 이는 것이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지난 내 감정들과 기운까지 훨훨 날아가길. 완전하게 탈탈 털어질 것만 같은 기분에, 이미 내 마음은 텅빔으로써 채워졌다. 


나는 앞으로 이 푸른 하늘을, 이 계절을 몇 번이나 더 경험하게 될까. 실은 모를 일이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내게 극적인 효과가 있다. 이토록 삶이 아름다워보일 수가 없다. 이토록 살아있음에 감사할 수가 없다. 


죽어가는 과정이 내게 슬픔이나 두려움이 아닌 이유다.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이다. 침대에서 눈을 껌뻑이다 벌떡 일어나곤 한다. "꺄악, 나는 언젠가 죽어.! 이렇게 보내기엔 너무 안 될 일이야. 한 번 뿐인 생,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날들. 일어나렴!" 


8월 굿바이. 훨훨 날아가렴. 나는 이렇게 유난했던 8월을 아쉬움 한 점 없이 흘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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