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by Aarushi

취미 중 하나는 재래시장, 옛날 정취가 물씬 풍기는 오래된 골목길 곳곳을 걷는 일이다. 아침 일찍 볼 일을 다 마친 뒤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곧장 타지 않고 재래시장까지 걸었다.


여름이 쉽사리 가을에게 자리를 내주고 싶지 않은가보다. 가는 길까지 거리가 좀 있었지만 기어코 산책겸 걸어가기로 한 것이다. 걷기는 언제나 날 살린다. 사특한 생각이 비집고 오지 못하게 한다. 잡생각을 즉각 멈추는데 효과적이다.


아이스 카페 라떼 하나를 테이크 아웃했다. 재래시장을 둘러 보는 내내 고소함 달콤함 그 경계의 맛이 힘차게 걷는데 도움이 됐다. 모자를 챙겨오길 잘했다. 송글송글 땀방울의 맺음이, 촉촉함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가끔은 이런 종류의 끕끕함이, 축축함이 정신을 깨어있게 한달까. 사우나에 앉아있는 기분이 때론 이토록 개운할 수가 없다. 더위를 크게 타는 편이 아니라 한 여름에도 종종 얇은 긴팔 가디건이나 티셔츠를 입곤 하는데 주변에서 그렇게 입었는데 안더워? 덥지 않느냐고 물으면,


"적당히 따뜻해서 좋아."라고 답한다. 정말이지 덥다.기 보단, 적당히 따뜻해서 좋다. 이렇게 입으면 어느 건물에 들어가도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중화돼 아주 적당한 온도로 내 몸 온도의 밸런스를 기가 막히게 맞춰준다. 무튼 내가 덥지 않으니 되었고, 이러나 저러나 상관없지 않은가.한다.


재래시장에 들러 이것저것 식재료를 사는 일에 진심이다. 같은 값이면 양도 넉넉하고 가격도 합리적이다. 재래시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식재료를 살 때면, 장바구니 한 가득 들고 재래시장을 나올 때면 정말이지 부자된 기분이다. 넉넉한 마음이다.


양배추 큰 거 하나가 3,000원, 청양고추도 한 봉지 사고, 단호박도 1개에 3,000, 사과와 포도를 사고 싶었는데 뚜벅이인 관계로 며칠 내 다시 장 봐야지.하고선 돌아섰다. 뚜벅이라서 장점이 훨씬 많은데, 장 볼 때 무거운 짐이 있을 때, 즉흥적으로 어디론가 훌쩍 드라이브 나가고 싶을 때, 딱 이 두 가지 경우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이마저도 치명적인 것은 아니어서 괜찮다.


재래시장에 가면 꼭 사는 게 있다. 들기름하고 즉석김이다. 엄마는 자주, 혼자 객지생활하는 딸에게 김치며, 과일이며, 즉석김이며, 삼겹살이며, 소불고기 양념이며, 자반 고등어며, 갖은 먹거리를 택배로 보내주셨다. 꼭 당일배송이었고 퇴근후 집 문앞에 놓여진 택배박스는 엄마의 온기가 담긴 다정한 선물이었다. 즉석김 파는 곳을 지나다 엄마 생각이 났다. 그 시절 흰 스티로폼 아이스박스는 내겐 엄마의 사랑이었다.


종종 아침 6-7시 사이 이곳을 찾는다. 아침에 가면 살아있음. 생명력. 부지런함. 성실함. 비비드함. 삶의 순간순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서다. 콩나물을 파는 방식도, 두부 한 모도 어쩜 저리 통통한지.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애호박이며 오이며, 감자며, 당근이며, 사람도, 모든 것이 생생하게 싱싱하게 살아있다.


재래시장은 살아있다. 오전에 재래시장을 찾은 건 즉흥적이었는데 덕분에 낭만 한 스푼 더하게 됐다. 소소한 걸음이 내겐 소소하지 않은 것이,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내겐 삶 그 자체고 일상이고 하루고 순간순간이다. 한 발자국 내딛는 걸음은 앞으로 나아감이기도 하다. 씩씩함도 있고 때론 머뭇거림도 있고 느린 걸음도 있다.


나만의 속도로 가야지. 내 인생인 걸. 내 걸음걸이는, 내 걸음걸이의 속도는, 어느 것 하나 남과 같은 것이 없다. 내가 살 수 있는 삶을 살아야지. 단 한 번 뿐인 인생, 모든 것은 순간일 뿐. 빠른 걸음도 느린 걸음도 그 어떤 것도 잘 못된 것이 없다.


그러니 지치지 않게만 부디, 적당한 걸음으로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기. 움츠러들지 말기. 씩씩하게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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