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 8

by Aarushi

#시적이다는 것

비오는 밤은 일찍 잠들고 싶지 않다.

이 순간만큼 빗소리는 그 어떤 클래식 연주보다도 고상하고 우아하고 품격있고 분위기 있는 것이 된다.

불빛이라곤 전부 소등한다.

눈을 잠근다.

비는 그 살갗이 대지 위 어딘가와 닿아 촘촘한 소리를 낸다.

그 리듬 속에서 나의 내면은 유연해지고 부드러워지고 말랑해진다.

비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어린 소녀의 자장가가 되어준다.


비오는 밤의 고요는 살갑고 진지하고 착실하고 성실하다.

침대 위 초록 이불을 덮어쓴 소녀는 빗방울의 노래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환희, 기적, 감사함, 안도...


낮과 밤의 해와 달을 보며 "이 아름다운 태양을, 저 달을 나는 앞으로 몇 해나 더 보게 될까?"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보며 "이 비를, 나는 앞으로 몇 해나 더 보게 될까? 이 빗소리를 나는 몇 해나 더 들을 수 있게 될까?"

그럴수록 수시로 무너지려드는 육체적, 정신적 매듭을 야물게 짓는다.

자연은 내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

마치 "모든 건 내게 맡겨둬. 네가 여기 온 이유... 기억하렴. 그리고 자기 자신이 되어 살아."라고 말하듯.


실은 나는 언어학적 혹은 문학적 영역에서의 시적 감수성이란 무엇인지 모른다. 무엇일지 잘 모른다.

시적이다는 건, 내겐 매력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까.


"나 아름다워요. 나 시적이지 않나요?"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방식이 아닌,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절로 느끼게 하는 것이 된다. 절로 드러나는 것. 상대가 알아서 느끼게 하는 것. 청자가 알아서 해석되게 하는 것. 공감과 감동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그렇게 느끼게 하는 기운의 영역이다.


나이 들어가며 좋은 점 중 하나는 겸손함이 습관이 된다는 것.

침묵과 고요가 그 어떤 것보다 강하다는 것.

부드러움은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

부드러움이 강하다는 걸.


겸손은 고결한 삶의 태도가 되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겸손이고 타인을 사랑하는 것도 겸손이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도 존중이고 타인을 존중하는 것도 겸손이다.


잠시라도 사특한 마음이 일 것 같으면, 스스로에게 묻는다.

"너... 뭐 돼?" 그 다음은,

말이 없다.

뭐 돼지 않기 때문인데, 즉각적인 효과가 있다.


나와 자연을,

나와 타인을,

나와 세상을 하나로 보면,

그 어떤 것도 이해되지 않을 것도

용서되지 않을 것도 받아들이지 못할 것도 없다.


나이 들어갈수록 시적인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끓어오른다.

스멀스멀보다 조금은 더 강력한 세기의 그것.

몽글몽글보다 조금은 더 강력한 세기의 그것.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무엇이 되지 않아도,

내 안의 고요와 내면의 확장이 외연으로 절로 드러나는 사람이길.

꼭 그런 삶이길.


시적인 삶이란, 성장하는 삶이다.

정말이지 고귀한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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