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슬픔을 삼킨다
책장을 넘겼을 때 그 특유의 종이와 기름 내음새, 하드 커버일 경우엔 내 손과 마찰되면서 나는 둔탁한 소리가 정겹다. 마음이 긴긴 어둠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때 내 옆에서 묵묵하게 위로해주고 날 살린 건 다름 아닌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게 책이란, 보통의 의미 그 이상이며 애틋하고 고마운 존재다.
책을 통해 내 자신을 일으킨 경험이 있고 삶을 배웠다.
책이 선물하는 새로운 세계에 지금껏 심취해오고 있다.
마음이 칠흑같이 어두워 땅 속 깊이 파 묻혀지던 시절엔, 도서관에서 10권을 빌려와 쉬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은 적도 있었다. 그마만큼 갈 갈 잃은 내 마음이 어디 하나 의지할 데, 정 붙일 데가 없었던 시절의 방증이기도 하다.
책읽을 땐, 심각하고 진지한 내 정신상태와는 다르게 책을 펼친 내 육체는 멀쩡하리만치 고요하고 차분하다.
혼자사는 즐거움.에 독서는 단연 상위 순위를 차지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일, 내 방을 환기하는 일, 잠시 눈을 감고 창밖 공기를, 자연을 있는 그대로 들여 마시는 일, 나를 위한 커피 한 잔 내리는 일, 나를 위한 밥상을 정갈하게 차려내는 일, 소파에 기대어 내 취향의 고전철학과 고전소설을 읽어 내려가는 일, 양 가르마를 한 머리카락에 똑딱 핀 두 개를 꽂는 일... 이렇게 작고 소소한 일상에서 삶을 느끼고 혼자 사는 즐거움과 낭만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만끽한다.
그때 내 마음가짐은 아직도 유효한 거니.
네 마음은 지금 어때. 괜찮아?
이제는 더 많이 너를 내려놓아도 되지 않겠니? 내려놓자.
있는 그대로 지금의 너를 인정하고 수용하자.
이미, 한참은 지나가버린, 후회해도 소용없는 과거를 후회하느라 현재를 놓치지 말자.고 다짐했다.
때로는 못난, 모난, 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내 삶을 다시 정렬하기 시작했다.
#지적인 즐거움
"책을 자주 읽는다고 하셨는데 가장 최근 읽었던 책 제목은 무엇이었나요?" 몇 년전 여의도에서 있었던 한 인터뷰에서 받은 질문이었다. 담백하게 답했던 기억이 있다. 책 읽는 걸 좋아한다고 하면 식상할 정도로 자주 받는 질문이기도 하다.
고전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다. 프랑스 철학자, 소설가들이 많은 걸 보면, 파리에서의 삶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파리를 선택한데에 고전 철학자, 작가들도 한 몫 했다. 문득 고전 작가들의 책을 읽다보면 인간에 대한 그들의 통찰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이런 게 사유와 지식과 생각의 정수.구나. 하고 감탄할 때가 대부분이다.
헤르만 헤세, 아우렐리우스, 니체, 톨스토이, 카뮈, 쇼펜하우어...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이다. 마음에 파도가 일때면 어김없이 이들의 책을 집어든다. 읽고나면 내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잔잔하다.
책은 이들과의 간접적인 방식으로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랄까. 시공간을 초월한 새로운 세계로 날 안내한다. 이들과의 만남은 지적인 즐거움이다.
그 시절 그들의 생각과 통찰과 지식이 지금에 와서도 정확한 방식으로 꼭 맞아들어가는 걸 경험할 때면 존경의 마음이 든다. 얼마나 깊은 고독과 치열한 사색의 결과였을까.
자주 고전을 찾는다. 막막할 때, 앞이 꽉 막혀 보이지 않을 때, 책은 늘 그렇듯 간접적인 방식으로 내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힘껏 돕는다.
책을 읽는다는 건, 내겐 지적인 즐거움이자 기쁨이다.
#이토록 시시한 것들
혼자의 시간을 좋아해서,
익숙해서,
가장 편안해서인지.
굳이, 구태여 약속을 잡지 않는다.
기운이 잘 맞고,
결이 잘 맞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외엔, 하지 않는다.
책 읽고
글쓰고
사색하고
잘 먹고
잘 자고
일하고(일이란, 나 스스로를 책임진다는 점에서, 책임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가족과 시간 보내고,
자연과 벗이 되고,
맑은 하늘을 올려다 보고,
두 발을 땅에 닿아 있고,
밤하늘의 달과 별을 천천히 혹은 뚫어져라 눈맞춤해보기도 하고.
타고난 성향인 것인지.
사색은 나의 벗이다.
나.에 대해 궁금하고 질문하고.
나는 왜 사는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행복이란, 단어에 무심한 편이다.
내게 행복이란, 순간순간 내가 느끼는 기분 좋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 그 이상도 아니다.
행복은 내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평온함도 행복이고 행복도 평온함이고 무심함도 고요도 행복이 될 수 있다.
나를 알아가는 여정이 인생이라면,
나는 죽을 때까지 나.를 알아가는 여정,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통찰하며
그렇게 무심하게 존재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