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용서하기

by Aarushi

나의 지난 시간들이 꿈같다. 나이 들어갈수록 점점 선명해지고 분명해지는 것인데,

확실한 건 과거는 이미 사라졌다는 것. 붙잡을 수도 없고 붙잡지 말아야 한다는 것. 분명하게 없다는 것이다. 지난 나의 우울은 분명 내 안의 것이었다. 내가 놓아버리지 못하는 것이었고 붙잡았던 것이었고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걸 내려놓는 순간 편안해질 것이었는데, 평화로워질 것이었는데, 평안해질 것이었는데, 고요해질 것이었는데 나는 꽤 오랜 시간 그러지 못했다.


나는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왜 왔는지. 왜 사는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걸까. 하는 내재적이고 근원적인 물음... 삶이란 게 뭔지. 인생이란 게 뭔지. 그렇게 아주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을 땐, 아주 조금 알 것 같았을 땐, 이미 훌쩍 나이 들어버렸음을 알아차렸다.


지난 십 년은 내적 풍파로 아파하고 상처받고 슬퍼하고 무기력했던 시절이었다. 때론 아무렇지 않은 척 아주 밝은 모습이었다가 어느 날은 이토록 열정 가득할 수 없는, 삶에 대한 사랑, 감사, 생의 의지가 넘쳤다가 또 어느 날은 이토록 무기력하고 우울해하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지금 이게 나인가. 찰나 이런 질문들이 날 감쌌다. 내 생각과 감정은 내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리게 되면서부터 나는 정말이지 나아져갔다. 회복되어갔다.


길을 걷다가도 나와 같은 사람들의 군상을 보게 되면 연민의 마음이 든다. 그 연민이란 동시대 이 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감사, 우주적 하나됨이다.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그 마음이 사람을 사랑하게 한다. 친절하게 한다. 다정하게 한다. 따뜻한 사람이 되게 한다.


직관적이거나 손이 절로 키보드로 향할 때 후루룩 쉬지 않고 글을 쓰게 되는데,

이 밤 나는 무엇을 이토록 풀어내려는 건지. 이토록 털어버리고 싶은건지.

글쓰기를 통해 분명 나는 내 안의 나를 만나고 싶은 것이다.

다독이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사랑해주고 싶은 것이다.


나를 용서하기 시작하면서 내 안의 우울도 점차 자취를 감췄다.

마치 방 안의 실크 커튼이 가녀린 바람에 살랑이다 어디론가 휘리릭 날아가버린 것처럼.

그렇게 사라져갔다.


여전히 우울하기를 반복한다.

우울.이란 속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의 속성과 같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 마음과 싸우지 않게 되었듯.

이젠 우울과 싸우지 않는다.

기꺼이 받아들인다.


감기가 오기 전 미열이 있거나 목이 따끔하거나 몸이 으스스한 증상이 오는 것처럼 우울도 오기 직전 감지가 된다. "엇, 우울이 오고 있네." 즉각적으로 알아차리곤 몸을 움직이기부터 한다.


나는 알아차리게 되었다.

나는 알게 되었다.


내 안의 우울은, 나를 용서하지 못한 탓이 컸다는 걸. 지금도 완전하게 치유되지 않은 해소되지 않은 해결되지 않은 그 무엇이 있다는 것도. 나는 그 연습을 부던히도 하고 있다. 나를 용서하고 있다.


용서하면 자유로워진다.

나를 용서하고 사람을 용서하기.

용서하면 내가 편안해진다.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 내가 건강해질 수 있다.


삶은 흐름이었다.

올라감이 있으면 내려감이 있고 내려감이 있으면 올라감이 있는.

그것들의 반복 그리고 순환, 자연의 이치다.


내 안의 못마땅함도 부족함도 문제 없는 것이었다.

내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었단 걸.

나를 용서하는 일은, 나를 사랑하는 것과 같다.


괴테 전문가이신 전영애 선생님의 말씀이 오늘 유난히도 깊게 내 심장을 쏜다.

"부모가 아이에게 주어야 할 것은 날개와 뿌리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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