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후

by Aarushi

책들, 노트, 공책, 다이어리... 웬만한 지난 물건들을 다 비웠어도 버리지 못하고 남겨둔 하나가 있다. 2016년 다이어리다. 이따금씩 꺼내보곤 하는데, 돌덩어리로 쓴 것이 아닌가 싶은, 야물게도 꾹꾹 눌러담은 글씨체. 당시 나의 심경, 에피소드, 플롯, 스토리가 여기저기 흩날려있다. 실은 커버도 이토록 연하게 반짝이면서도 은은하게 멋스런, 이 다이어리만한 걸 찾지 못했다. 2015년 겨울 올리브영에서 받았던 다이어린데 그 해 겨울 12월에 떠난 스페인 여행에서의 일기가 있다. 그때도 내 이름을 불러댄 건 여전했다.


엄마와의 추억도 담겨있어서, 당시 내가 느꼈던 엄마에 대한 마음, 사랑, 감사... 이런 마음들이 뒤섞인 일기가 있다. 2016년이었으니 벌써 십년이 다 되어가는 것. 펼쳐보면 중간 어딘가쯤엔 8년 전 엄마가 서울집에 다녀갔을 때 내 다이어리 사이에 몰래 끼어둔 5만원 권 2장이 포개져 있던 페이지에 스티커로 표시해둔 것과 당시 나의 심경이 고스란히 적혀있다. 숫자로는 8년이나 된 것이라니. 유물이 되어버린 듯하다.


엄마는 분명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내가 떡하니 놓고 간 다이어리를 방청소를 해주시면서 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분명 딸의 일기장을 읽어보았을 것이다. 내 다이어리를 읽어보고 난 뒤 그 사이 어딘가에 5만 원권 2장을 두곤 일기장을 덮었을 엄마의 모습이 절로 투영됐다.


오래 전 나.를 마주하고 싶을 때, 그때의 다짐과 기분을 다시 소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때, 엄마가 그리울 때, 나를 용서하는 마음이 간절할 때, 나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 정말이지 변화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 꺼내보는 것이다.


퇴사하고 나온 직후라 외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걱정보단 미래에 대한 설렘, 용기, 호기로움 가득했던 때인데, 그때의 호기로움과 용기있던 나는 어디로 가버린건지. 의뭉스럽다. 그 사이 8년은 정말이지 총체적 난국이었다. 나의 나약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내 영혼은 점점 너덜해져갔고 우울과 무기력감은 그렇게 내 안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렇게 완전하게 침잠했다가 어느 새 이대로는 안된다.는 강한의지로 그 동굴에서 빠져나오기를 반복했다.


나 자신과의 사투. 투쟁이라 할만하다.

데미안에 나오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었기를.


근원적인 우울이 밀려올 때가 있다. 불안과 두려움과는 분명 다른 것인데 그럴 땐 고목나무에 매달려 있는 매미마냥 침대와 딱 달라붙어 있게 된다.

그럴 때면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녹아내린 시계>의 그것들과 나를 동일시하게 된다.

녹아져내리는 육체를 알아차린다.


얼굴까지 이불에 파묻히고 나서야 찰나 정신이 번쩍 들어 스프링 튕기듯 침대 밖으로 나오게 된다.

무언가에 떠밀러져 나온다는 것이 적확하다.

"어맛. 이럴 새가 어딨어. 이토록 소중한 시간인데, 내게 남은 시간이란 결코 많지 않아. 너 언젠가 죽어 분명 죽게 돼. 언젠간 죽는다구!. 그러니까 지금을 살아!. 뭐가 두려워!."


날 바깥세상으로 떠밀어낸 그 무엇이란, 내면의 아우성이었다.

외국 팟캐스트 몇 개를 자주 듣는다.

듣다가 모르겠는 단어가 나오면 즉각적으로 단어를 찾는데 내가 원하는 류의 팟캐스트를 통해 내적 대화를 이어나가는데다 영어의 감까지 놓치지 않게 한다.


다이어리 커버 위엔 "16"이라고 쓰여있다. 분명 2016년의 16인데,

8년 전 다이어리를 8년 후 이따금씩 꺼내 보는 일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는 듯한 신비로움이 있다.


8년 전의 나는 실은 없는 것이다.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기억 속에 있는 것일 뿐.


기억 속의 나를 다시 한 번 경험함으로써 지금의 나.를 더욱 분명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따금씩 꺼내어 야금야금 살금살금 보다보면 지금의 내.가 더욱 선명해질 때가 있다.

정말 이렇게 살다 갈건지.

아무 것도 해보지도 못하고 살다 갈건지.

그냥 이렇게 저렇게 살다 갈건지.하는 것들에 대하여ㅡ

나다움에 대하여ㅡ


질문하게 한다.

오롯이 경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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