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도 나와 맞는, 기운이 드라마틱하게 동하는, 때로는 그 안에서 굉장히 자유로운, 평화로운, 고요의 적막에서 마음껏 유영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렇게 축적된 음악들이 모여 자기 만의 플레이리스트가 된다.
그 중 한곡인 앨랜 워커의 "faded"를 밤산책 내내 들었다. 짙은 네이비 밤하늘에 잠시 먹색 구름이라고 해야할까. 먹색의 것이 달 사이를 왔다갔다 기웃거릴 때를 제외하곤 오늘 밤하늘의 둥근 보름달은 정말이지 영롱했고 투명했고 선명했다.
달은 늘 "나 여기 있어? 난 늘 너와 함께 있어. 실은 나는 너와 하나야."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달과 눈맞춤하고 있으면, 정말이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에 경외감의 순간들을 찰나로, 수시로 경험하게 되는데, 그것은 마치 그 어떤 것도 날 해칠 수 없다는, 날 파괴할 수 없다는 우주의 embracing, 내게 하는 말로 나는 해석한다.
"faded"를 우연히 처음 들었을 때 그 몽환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멜로디에 내 안의 에너지가 파릇파릇 돋아나는 걸 경험했다. 생에 대한 의지가 절실할 때 나는 이 곡을 곧장 재생한다. 음악도 에너지고 바이브레이션이고 프리퀀시가 아닌가. 이토록 인간에게 유익하다는 걸, 이토록 인간을 돕고 있다는 걸, 인간 뿐일까. 이 세상 만물 모두가 서로가 서로를 돕고 의지하고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하나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경험한다.
멈추지 않아도 걸으면서 보름달과 눈맞춤하고 대화하는 방법은 이토록 간단한데, 내 눈, 시선을 달이 자취를 감출 때까지 떼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달을 만나고 오는 길이면 엄청난 에너지를 온몸으로 맞고 돌아오는 기분이다. 그것은 마치 허트 어택과도 같은 사랑이다.
"늘 네 곁에 있어."
"나는 늘 너를 지켜보고 있어."
"나는 사라지지 않아."
"난 늘 너와 함꼐야."
달은 분명 말이 없는데 나는 왜 이토록 달이 내게 말하고 있는 것 같은 걸까.
분명 내게 말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찰나ㅡ 를 넘어선 저 너머에 대한 앎, 갈망은 곧 내가 사는 이유일 것이고 의미일 것이다.
논리로도 이성적인 것으로도 확인되어질 수 없는
그러나 분명한 것. 직관적인 앎과 지혜가 움트고 싹트고 피어지는 것이 있다.
오늘밤 달에게 나는 대답했다.
"서두르지 않으려구. 조급하지 않으려구. 불안에 가득한 상태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고 싶지 않아서. 여유 있는 마음일 때 차분히 가라앉은 마음일 때, 평온할 때,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일 때,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들로 내 안을 가득채우고 싶어. 그렇게 결정하고 행동하고 싶어."
밤하늘을 보면,
달을 바라보면,
나는 소녀가 된다.
나이가 소녀이든, 청년이든, 중년이 되어도, 노년이 되어도 나는 변함없는 소녀일 것이다.
진짜 나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나에겐 나이가 없다.
그래서일까.
나이듦과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내 몸은 내가 아니니,
육체가 나일까.
진짜 변하지 않는,
늘 그자리에 있는 나는,
그 자체로서 밤하늘의 달과 같이 빛나고 있다.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는 달을 보며 나라고 생각한다.
나도 너와 같이 빛나고 있다고.
나는 너라고
너는 나라고.
나는 달에게 말한다.
"네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 네가 나를 꼭 껴안아주고 있는 것 같아.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되지.
내가 너를 바라보고 있고, 내가 너를 내 안에서 꼭 껴안아주고 있단 걸."
그렇게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경험하고 있다. 알아가고 있다. 알아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