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말이 아닐 때가 있다. 생기와 화사함은 온데 간데 없고 건조하고 칙칙함이 그 자리를 차지한 모습. 나이듦도 있겠고 마음의 동요와 서퍼링 덕분도 있을 것이다. 그 어느 것도 문제가 없다. 무엇이 문제일까. 자연스런 흐름이겠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임을.
몇 해 전 엄마와 거닐었던 제주 사려니 숲길 사진에서 멈췄다. 분명 내가 찍은 것일텐데 강렬한 햇빛과 숲에 대한 경외감으로 포착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빛을 보았고 내리쬐는 빛 속에서 나를 보았다. 애쓸 것이 없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저 그 존재로서, 그 자체로서 나는 빛나고 있는 것임을.
간밤에 꿈을 꾸었다. 레몬색 경차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영롱한 레몬색 경차를 끌고 온 누군가를 보면서 내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나 운전 다시 할까봐."라고 말했다. 내 앞에 레몬색 경차를 끌고 나타난 누군가도 내옆에 있는 누군가도 실은 형체만 있지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른다. 꿈의 세계란 이런 것이었지. 무의식의 발현이었을까. 최근 다시 운전을 해야할까. 찰나 일었는데 그것이었을까.
의식이라는 것에 대하여ㅡ
마흔이 가까이 되어서일까.
나이 들어가서일까.
나의 질문은 더 깊어지고 분명해지고 선명해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젯밤 잠들기 전엔, 혼잣말로 "아직 철들려면 멀었다...^^"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언제쯤 철이 들게 될까.싶기도 그러면서도 영적인 성장은 멈추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공존한다.
나는 모른다.가 내 인식을 더욱 확장한다.
지난 몇 개월간 나는 연습해왔다.
"What am i most afraid of?"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이 두려운가?"
단 하나의 질문으로 몇 개월을 지났다.
그 시기 일도 멈추었다.
일하면, 돈을 벌고 있는 상태에선 도저히 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금세 호기로운 모습은 사라지고 돈.에 끌려가는, 언제 그랬냐는듯 안주하는 나약한 나의 모습을 나는 수십년간 마주해왔기 때문이다.
처음엔 돈.을 잃을까.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러다 "나 이래도 되나?..."하는 것들. 당장 돈을 벌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거란, 돈을 벌지 않으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착각ㅡ 과 망상으로 우울감이 밀려왔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피하지 않음은 그것에 맞서거나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사투와 투쟁이었고 있는 그대로 바라봄이었고 알아차림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니 희한하리만치 이상하리만치 나는 불안하지 않았다. 두렵지 않았다. 남과 비교하지 않았다. 점차 안정적이 되어갔다.
무엇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덜어내는 일이 이토록 날 안정적이게 하는 것이었구나. 날 평온하게 하는 것이었구나. 날 고요하게 하는 것이었구나.
스스로가 정한 기한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게 되었다. 어느 순간, 자동반사적으로 지극히 자연스런 방식으로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과 내가 하고 싶은 것들ㅡ 나는 분명 나아갈 것임을 안다.
어느 순간 점철돼 온, 쌓아온 나의 내적 시공간의 일련의 사건들이 지금의 내가 되게 했다. 지금의 나도 늘 변한다. 찰나만 있을 뿐이다. 절로 질문되어지는 삶에 감사함ㅡ 경외감이 있다.
파리에 사는 동안 루브르와 오르세를 매일 같이 드나들었던 때를 돌이켜보면, 어찌보면 나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한 것이 아닌가.싶다. 예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그러면서도 나는 매일 그곳을 찾았다. 마치 그림들이 내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나를 부른 것이 아니었을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나는 한참을 한 그림 앞에 서서 혹은 앉아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해석하지 않았다. 판단하지 않았다. 그저 바라보았다. 프로젝션 되어 보여지는 현시에서, 현실 너머에 있는ㅡ 저 너머의 것을 볼 줄 아는 통찰과 지혜가 있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나는 그 시절의 내가 그토록 예술을 가까이 접했던 것이 나의 내적 성장에 분명 큰 도움이 되었을 거라 믿는다.
침착함은 내겐 고요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경험하고 나니 이토록 고요할 수가 없다. 차분할 수가 없다. 침착할 수가없다. 이 감을 잃어버리지 않기 조금만 더 나의 것으로. 나의 내적 영역 안으로 스며드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 시기가 지나면 나는 더 나아갈 것이다. 변화할 것이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하나의 문이 열린다. 실은 그 어떤 문도 닫힌 적이 없다.
내가 집착하는 것은 이것이었구나.를 알아차리는 순간 그곳에 해답이 있었다.
부쩍 나이듦을 알아차리게 되는데, 받아들이게 되는데,
당연한 이치 앞에, 자연스러움 앞에 기꺼이 나를 내맡긴다.
젊음은 누구에게나 있었고 당연한 것이었다.
나이듦은 결코 시듬이 아니다. 꺾임이 아니다.
그것이 익어감이고 깊어짐이고 건너감이고 연결됨이고 성숙의 열매다.
진심으로 스물의 나보다 서른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편안하다.
마음의 동요도 금세 사라질 신기루 같은 것임을 안다.
변하지 않는 그것을 알면,
나를 놓으면 나만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