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처럼 새해를 맞았다. 별 다를 거 없는. 여느 날과 다름 없는. 특별하지 않은. 이토록 무덤덤할 수가. 이토록 잔잔할 수가. 이토록 무심할수가. 엊그제 저녁 약속 시간 전 광화문 스벅에 들러 한 시간여 머물다 왔다. 작은 수첩과 펜을 꺼내 즉흥적으로 절로 이는 생각들을 적어내려갔다. 내용도 별 거 없었다.
"정말 이럴 수가.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마음의 동요가 없다. 고요하고 꽤나 안정적인데, 결론은 이래도 된다.다.
그렇게 그곳을 나와 광화문 곳곳을 걸었다. 유선 이어폰을 껴곤 faded를 재생했다. 묵묵히 걸으면서 지난 시절의 나, 이십대의 나, 광화문 직장인이던 시절의 나.가 절로 오버랩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깊은 회한과 우수에 젖기도 환희에 젖기를 반복했다.
과거는 기억이다. 오직 이 순간이 있을 뿐. 정말 꿈같다.는 게 맞다. 언제 이렇게 마흔이 되었지? 정말 마흔인 걸까? 마흔이 코앞이라니. 삶의 유한함을 부쩍 실감하고 있다. 이토록 찰나였던가. 찰나다.
새해 아침, 아침 일찍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딸~! 잘 잤어? 새해복 많이 받고 새해에도 건강하게 즐겁게 잘 살아보자! 떡국 먹어야 되는데!"
오리털 이불, 매트,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싸서 택배로 보냈다고 하셨다. 총 4박스가 도착할거라고.
새해부터 엄마의 사랑은 딸에게 용기를 준다. 살아갈 힘이 된다.
엄마와 대화끝에,
"새해라고 별 걸까. 여느 날이지 뭐^^"
웃으며 엄마 왈,
"그런 거야. 나이들어가고 있구나. 여느 날이지."
엄마와 나는 너무도 자연스레 삶, 인생살이, 사람에 대하여 관계에 대하여ㅡ 이야기한다.
엄마와 통화를 끝낸 뒤, 부엌으로 갔다.
얼마 전 엄마가 보내준 갈치 2쪽과 고등어 한 쪽을 꺼내 굽고 고슬고슬한 밥을 했다.
깍두기에 소박한 밥상을 차리고 나니, 이토록 부자된 기분일 수가 없었다.
종종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인데,
"잘 수 있는 따뜻한 집이 있고 먹을 수 있는 따뜻한 밥이 있고... 남과 자꾸 비교하면 나만 불행해지는거야. 내가 나를 가장 아껴주고 사랑해줘야지. 내 입에 들어가는 건 아끼지 말고 잘 먹고 잘 자고."
끌리셰하지만 결코 끌리셰하지 않다.
새해면 애니원에서 하루종일 신도라에몽을 하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어서인데 혹시나 하고선 채널을 돌렸다. 역시나. "하루종일 도라에몽"이라는 제목으로 도라에몽을 연속 방송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저녁 6시엔 24기 최초방송을 한단다. 꺄하. 이런 들어맞음. 즐겁다.
도라에몽을 좋아하기도, 도라에몽을 틀어놓으면 무언가 편해지는 감이 있다. 정서적으로 잔잔해지고 안정되는 부분이 있다. 도라에몽, 아따맘마,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느 주말 같은, 별다를 거 없이 이토록 사소하게 보내는 새해 첫 날.
아무렇지도 않다. 아무 것도 모르겠다.
살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안다.보다 나는 모른다.가 날 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한다는 것.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편안하니 무엇이 걸림이 있겠는가.
이것이 평온이 아니고 무엇인가.
"자유 의지가 있는가?..."ㅡ 절로 이는 물음에 나를 내맡긴 채 앉아있을 뿐이다.
어디 내 마음대로, 내 계획대로 된 것이 있던가?
절로 펼쳐지는 것을.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고 우연인.
필연이면서도 직관적인 앎이 아니면 결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
일상에서ㅡ 몸의 움직임과 마음 작용에 관해 알아차리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알아차림이 나를 살린다.
몇 년 전부터 확실하게 달라진 것은,
새해든, 생일이든 정말이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보낸다는 것.
실제 내 기분도 그렇다는 것.
새해여도 새사람이 되겠다는 둥. 새 사람으로 거듭나겠다는 등의 급작스런 변화를 기획하거나 계획하지 않게 되었다. "내년에 나는 완전히 달라질거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거야."라는 급작스런 다짐이나 생각을 믿지 않아서인데,
단, 말이 곧 실재가 되는데,
나 자신에게 하는 스토리텔링을 다르게 하는 것.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을 바꾸는 것이 훨씬 더 즉각적인 효과가 있다는 걸, 나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바꾸는 것만이 나를,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다.
새해여도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예측하지 않는다.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다.
새해엔, 자리이타의 삶을 살게 되길 바라고
친절하기. 사랑하기.는 변함없을 화두다.
무엇이 되길 기대하지 않는다.
내 삶에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나길 기대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의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