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by Aarushi

모든 걸 다 스톱하고 재즈음악을 켜곤 글쓰기를 시작할 때가 있다. 이것은 마치 쉼과도 같고 호흡과도 같고 명상과도 같은 것이다. 글쓰기를 이토록 사랑하니, 휴대하기도 편한 맥북이나 맥프로를 살만도 한데, 여전히 무겁고 둔탁한 노트북과 함께다. 옛날사람이라 그런지 또 그런 취향을 좋아해서인지 나는 무게만 아니라면 무게감 있고 키보드가 깊어 손가락이 쑥쑥빠지는 옛 노트북이 훨씬 좋다. 이 감성이 주는 편안함이 무게감의 불편함보단 커서 오래돼도 깨진 부분이 보여도 개의치 않고 잘만 들고 다닌다.


몇 년 전 오래쓰던 핑크 노트북이 수명을 다해 유물 꺼내듯 꺼내온 2011년형 엘지 노트북을 2년 가까이 잘 썼는데 구형이라 키보드가 쑥쑥 들어가는 것이 글쓸 때마다 재밌고 즐거웠다. 그립감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사이즈도 커서 맞는 노트북 케이스를 찾기도 어려웠고 당시 차를 판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뚜벅이었는데 그 무거운 걸 들고 다녔다. 무거워도 밖에 나가면 언제 어디서든 글쓰고 싶을 때 쓰고 싶은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집에다 놓고 다닐 수 없었던 이유다.


간혹 스타벅스나 어느 카페에 잠깐 들러 노트북을 켜야 하는 상황일 때 나는 그 구형 검정 엘지 노트북을 꺼냈다. 모두가 회색 맥북일 때, 가운데 영롱하게 하얀 불빛이 들어올 때, 나 혼자만 덩그러니 옛날 노트북인 감성. 아무렴. 상관 없었다. 쳐다보는 말든 상관 없는 것이었다.


지금 그때 생각하면 그 무거운 노트북을 어떻게 그렇게 매일 들고 다녔을까.싶다. 노트북 하나를 살 돈이 없었던 건 아니다. 멀쩡히 아직도 사용가능한 노트북이 있는데 굳이 목돈을 들여 새 것을 들이는 것이 내 성미가 아니었고 오래된 것이든 새 것이든 내겐 그 어떤 차이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 그냥 물건일 뿐 브랜드도 최신이건 그건 하등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외려 그 노트북에게 "고마워"라고 말해주었고 그 노트북이 몇 년 뒤 수명을 다했을 때도 나는, "힘든 시절,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워. 덕분에."하곤 보내주었다.


여전히 타자칠 때마다 따각따각 소리나는 깊게 파인, 둔탁한 키보드가 좋다. 조만간 나에 대한 선물로 둔탁한 키보드를 선물할 참이다. 서른 초반 이후부터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들에 집중하지 않게 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나에게 잘 어울리는 색깔은 무엇인지. 나는 어떨 때 신나하는지. 무엇을 흥미로워하는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을 만날 때 행복하는지... 나에게 집중하면서부터다.


외모는 중요하다. 외적인 것 중요하다. 내면이 중요하다는 말은, 내면만 중요하다가 아니라 내면과 외면이 실은 하나라는 얘기다. 내면이 확장되고 의식이 성장하면 절로 그 빛이 외면으로 확장돼 절로 드러나게 되어있다. 애쓰지 않아도 뿜어져 나오는 빛이다. 아우라고 분위기다.


내면을 관리하면 외면도 함께 관리되는 것이다. 불이. 둘이 아니고 다르지 않다. 내가 입으면 편안하고 쇄골과목라인이 살짝 드러나 내 체형을 잘 살려주는 옷들 2-3벌로 여름을 나고 평소에도 똑같은 옷을 매일 입을 때가 많다. 똑같은 옷을 입어도 아무렇지 않은 이유는, 내가 입는 옷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일 뿐, 물건일 뿐, 내 본질이 아니란 걸 진짜 내가 아니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은 살면서 명품 지갑이라든지 가방이라든지 산 적이 없다. 명품 매장에 가본 적도 없고 브랜드도 잘 모른다. 정말 관심이 없는 것도 맞고 직장인인 내겐 맞지 않은 소비인 것도 분명했다. 명품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부러워한 적도 없다. 다 개인의 취향일 것이고 자기 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로고 하나로 나 명품이에요.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방식보단 절로 드러나는 무형의 명품에 관심이 더 컸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 원짜리 패브릭 에코천 아니면 내 취향의 스팽글이 들어간 3만원 짜리 자라 유아용 크로스백을 맸을 때 훨씬 나답고 편안하다.


파리에 있던 시절, 파리 현지 친구 덕분에 초대받아 팔레 루아얄에서 하는 이자벨 마랑 패션쇼에 All Access로 가본 적이 있다. 브랜드도 잘 모르고 명품 하나 잘 모르는, 게다가 패션도 전혀 모르는 나에겐 색다른 경험이었다. 휘볼리가에 있는 자라에서 산 카키색 레이스 상의를 입고 갔는데 화려한 사람들 사이 소위 쫄 것 없었다.


친구의 동료가 쇼 시작전 백스테이지안을 구경시켜줬는데 그곳에서 마헝 언니를 마주쳤다. 이자벨 마랑 옷은 한 번도 입어본 적도 매장에 들어가 본적도 없지만 아무렴 무슨 상관이던가. 이자벨 마랑.이름과 얼굴은 알고 있었고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주저없이 인사했고 잠깐 새 대화를 이어나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그녀 왈,

"혹시 우리 전에 한 번 본 적 있어요? 서울에서 봤었나요?"라고 물었다.

물론 초면이었고 3-4분 새 대화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다.

그녀는 나를 꼭 안아주었고 흔쾌히 사진도 함께 찍었다.


당시 내가 아는 모델이라곤 지지하디드가 있었는데 백스테이지 안에서 그 어느 톱모델보다도 마헝 언니가 빛났다. 그녀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메이크업 하지 않은 얼굴에 머리는 높게 올려 말았고 그녀가 직접 디자인 한 옷을 착장하고 큰 귀걸이에, 염색하지 않은 자연스런 그레이 헤어. 아름다운 눈빛. 많은 말이 필요 없었다. 아우라다.


나이들어갈수록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향해 가는 건 인간의 본성일까. 덜어내어봤자 실은 거기서 거긴데ㅡ 덜어낼 것도 이젠 없는데 비울 것도 이젠 없을 만큼 축소지향적으로 사는데 나는 여전히, 아직도 뭘 자꾸 덜어내고 비우려고 한다. 텅비어있음으로 꽉차고 싶은 마음인 걸 안다.


타고난 이목구비와 체형을 탓하거나 나 자신의 외모를 불만족스러워하기 보단 내가 가진 것 안에서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이 빛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사는데 훨씬 유리하다. 확실한 건 친절하지 않은, 상냥하지 않은 표정없는 빼어난 미인미남보단 친절하고 상냥하고 표정있는 보통의 외모가 훨씬 빛날 수 있다는 거다.


언제 이렇게 마흔이 왔어?정말이지 깜짝깜짝 놀라는데 눈깜짝할 새 어느 날 이럴지도 모르겠다. 언제 이렇게 쉰이 왔대?. 이렇게.


나를 손쉽게 벌떡 일으키는 말 중 하나는, 내가 나에게 수시로 하는 말이기도 한데.

"너는 죽어가고 있어."

그럼 절로 벌떡 일어나진다.


내 의지대로 내가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우연히 나는 이곳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그러니 어떤 환경이든지간에 어느 곳이던지간에

받아들여야 한다.

찰나에서 어떻게 살다갈 것인가.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것.

사랑.사랑.사랑... 성장하는 것 뿐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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