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이유

by Aarushi

기어코 울고야 말았다. 엉엉 울진 않았다. 절로 눈물이 났다. 진짜 마음 아프거나 슬프거나 감정에 복받히면 소리내어지지 않는다. 목이 맺히고 입술이 꽉 다물어지고 그 채로 입술을 바르르 떨게 된다. 어쩌다가라도 눈물이 나면 나는대로 마음 아프면 아픈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감정이 복받히면 복받히는대로 가라 앉을 때까지 놔둔다. 눈물을 흘리고 난 뒤 찾아오는 그 특유의 깊은 고요와 평온의 순간을 사랑한다.


눈물이 글썽글썽하다 어느 순간 목이 맺히고 그러다 한없이 눈물이 따뜻한 온천수처럼, 폭포수처럼 양 갈래로 나뉘어 내 뺨에 흘러 목까지 내려온다. 그 젖음이 익숙하게 되었다. 실은 그 상태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정화된 기분에, 정신이 쏙 든다. 잿빛 구름이 커튼 장막처럼 환하게 걷힌 기분이 든다.


늦은밤 어쩌자고 엄마와의 통화에서 눈물을 쏟았는지. 통화를 끊고 잠시 얼굴에 남은 잔여 눈물 방울을 손등으로 닦아내고 멍하니 우두커니 있으니 글이 쓰고 싶어졌다. 지금 내게 이는 순간을, 감정을 타는 몰입감으로 한바탕 쏟아내고 싶은 거였겠지.


눈물의 이유는 많다. 눈물의 종류는 많다. 슬픔의 이유도 슬픔의 종류도 마찬가지.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기 만의 사연이 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기 만의 슬픔과 눈물이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슬픔과 상처가 있는 사람에게서 더욱 매력을 느낀다. 특유의 슬픈 눈망울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어두움과는 다르다. 슬픔을 아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동질감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서로가 서로에 대한 연민, 사랑일 수도 있다.


전화 너머 대화는 소통이다. 나와 타인과의 소통이지만, 실은 나 자신과의 소통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이야기들은 순전히 내가 자의적으로 편집한 이야기들이 아닌가. 기억도 마찬가지. 대화는 어떤 면에서든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ㅡ 매개체가 된다.


엄마란 무엇인가. 엄마란 무엇일까.

엄마가 되어본 적이 없어서 엄마를 완전하게 이해할 순 없겠지만,

부모의 마음을 완전하게 헤아릴 순 없겠지만.

요즘 나의 화두 중 하나다.


이 밤 엄마와의 대화는 유익했다. 중간중간 미소도 있고 웃음도 있고 아픔도 있고 슬픔도 있고 상처를 꺼내야 할 때도 있었지만 나는 알고 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한단 걸. 나도 그렇다. 엄마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자 가장 상처주기 쉬운 존재란 걸. 아직 철들려면 멀었구나.싶지만,

확실한 건 엄마에게 진심으로, 정말이지 감사해한다.

엄마를 사랑하기. 엄마에게 감사하기.는 실로 내 면역체계와 정신건강에 전적으로 좋은 것이란 걸 안다.


소통하고 있는 나를 알아차린다.

"나는 지금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어떤 스토리텔링을 전하고 있는가?"하는 것들...


엄마와 통화에서 흐른 눈물은,

지나친 슬픔으로 점철된 눈물이 아니라, 부정적 감정들로 사무친 눈물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좀 더 깊게 사랑하고 배려하고 이해하고 수용하고 용서하고 감사해하고 하는 과정들이 만들어낸 눈물이었다.

그래서 그 끝은 늘 이토록 개운하고 따뜻하고 깊은 여운이 있다.


눈물을 훔치고 나니 기운이 빠지기는 커녕 기운이 난다.

나 자신과의 소통도 유익했나보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있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있다.

이제서야 나는 아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진짜 이해한다는 건,

실은 옳고 그름이 아니란 걸.

진짜 이해한다는 건,

상대가 이야기하도록 두는 것.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상대에게 친절한 마음을 갖는 것.

상대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

상대를 사랑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란 걸.


나의 눈물이 저 멀리 엄마에게 닿기를.

엄마에게 정말 감사해하고 있다는 걸.

엄마를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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