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찾다 5년 전쯤 긴 웨이브 머리였던, 방긋 카메라 렌즈를 향해 웃고 있는 나.를 보게 됐다. 그러곤 그 사진에서 스크롤을 멈추곤 한참을 들여다봤다. 이때만해도 참 젊었네. 어쩜 이토록 생기있어? 긴머리가 또 잘 어울리네?... 그러다 단발머리인 지금의 나를 생각했다. 이십대, 서른 초반때만하더라도 도회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지금의 나.를 보고 있자면 푸근한 언니가 된 듯하다. 그 푸근함이란 인상이 전보다 편안해졌달까. 화려함이나 도시적이나 세련됨보단 지금은 친근함, 편안함, 코지함...이런 것들에 대한 애정이 커졌다.
얼굴이 새카맣게 타 까무잡잡해져도 다소 촌스러워보여도 개의치 않게 됐다. 내가 어떻게 보이든 무엇이 그리 중요할까? 무엇이든 없는데 있어보이려하는 게 실상 더 촌스럽다. 마흔이 코 앞이라 나도 이제 곧 중년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외려 날 더 편안하게 하는 것도 있다.
그저 나답게, 있는 그대로 사는 거. 사랑이든, 일이든, 입는 것이든, 먹는 것이든, 물건이든... 자기 만의 방식으로, 자기 형편 껏, 자기 안의 것을 자유롭게 펼쳐며 사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무척이나 이롭다는 생각이 있다. 웨이브도 한 껏 살린 그 시절 헤어 스타일을 보고선 나도 모르게 참 예뻤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내 눈엔 그 생기.가 그토록 예뻐보였던 것이다. 파리집 부엌에서 찍은 셀카였는데, 어쩜 이렇게 활짝 웃고 있는거니? 절로 이 말이 나왔다. 방긋 웃고 있는 날 보고 있자니, 그 기운이, 그 생기가 지금의 나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진듯 잠시동안 그 생기에 나도 활짝 미소 짓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무엇이 되기를 바라는 게 없어졌는데, 정말이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집착하지 않는 것. 힘든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어떤 일이 닥치면 그것은 나의 집착이 아니었을지. 그것은 내 안의 어떤 걸림이 아니었을지.를 생각한다. 나의 내면의 트리거.를 알아차리고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
똑 단발이 된 차제에, 똑딱핀 몇 개를 샀다. 작은 핑크 곰돌이 핀 하나, 사탕모양 핀 하나, 초록 핀 하나... 곰돌이 핀 하나를 오른쪽 옆머리에 꽂으니 금세 생기 있어보이는 모양새다. 지금의 내겐 이토록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가 낭만이 된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낭만이 되니 지금 이 순간에 머물게 된다.
핀 4개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산책겸 집까지 걷기로 했다. 저녁 9시 반쯤 됐을까. 이 시간쯤이면 이 근방 상점들이 닫는구나...그러다 밤하늘을 위로 올려다보기도 그러다 내 발걸음에 주의를 집중해보기도 하며 그렇게 밤길을 걸었다. 문득 발걸음을 내딛다 한 가지 생각이 일었다. "내가 세상을 경험하는 게 아니다... 내가 세상을 경험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나.를 빌어 경험하고 있는게 아닐까?..." 직관적인 물음이었겠다.
내 안에서 시도때도 없이 솟아나는 질문, 사색, 사유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나의 고독도 더욱 깊어진다. 나의 고독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내 안의 심연의 무한함을 알아차리게 된다. 무엇이 날 이토록 질문하게 했을까? 무엇이 날 이토록 사색하게, 사유하게 했을까? 그것은 지난 나의 고독이었겠지... 그 고독 속에서 나는 빛을 발견했구나...하는 것들.
내가 세상을 경험하는 것일까? 세상이 나를 경험하는 것일까?
내가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경험하고 있는 것일테지.
내 안에 모든 것이 있다는 것, 내 안에 세상이 있다는 것, 세상이 나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 실은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