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이 없기를 바라지 말기

by Aarushi

평온한 시간 중 하나는, 일하러 가기 전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여유다. 그런 날이 있다. 집을 나서기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일하러 가기 전 한 두 시간 전에 나가자. 카페에 들렀다 가자."싶은 날. 창밖엔 비가 내리고 반가운 빗방울 소리에 눈을 떴다. 봄비구나. 창밖너머 내리는 비, 그 빗방울이 대지에 차분하게 엄숙하게 가라앉는 순간들, 올려다 본 하늘은 뿌옇게 그러나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의 신비스러움을 더하는 순간들...


1시간 쯤 미리 나왔다. 보라색 텀블러 하나를 들었다. 노트북도 챙겨왔다. 노트북을 챙겨왔다는 건 짦든 길든 글쓰기를 하겠다는 것인데ㅡ 그렇게 쏟아내고 나면, 발산하고 나면 막혔던 체증이 훅 하고 가라앉듯. 속 시원한, 개운한, 청량한 감이 있다.


요 며칠 푹쉬면서도 푹쉬지 못한 것이. "나는 왜 마음 편히 푹 쉬지를 못할까? 생각이 내가 아닌 걸 알면서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급기야 걱정, 불안, 두려움, 용기나지 못하게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편안할 수 있어야 하는데ㅡ 자꾸만 생각과 감정에 휩쓸리는 나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 직면하는 일이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그래, 괴로움이 없기를 바라지 말자." 언제는 뭐 괴로움이 없었나? 돌이켜보면 마냥 괴롭지만도 마냥 기쁘지만도 즐겁지만도 않지 않았나? 모든 건 그때그때 다 절로 흘러가지 않았나? 괴로우면 괴로운대로 직면하고 살았고 기쁘면 기쁜대로 그 기쁨을 만끽하고 살아오지 않았나? 나란 사람, 꼭 서른 후반이 되어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었나? 괴로움이 없기를 바라는 것보다 괴로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사는 일이 이롭다는 걸 알게 됐다. 그 괴로움을 통해 비로소 나 자신이 누구인지.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하는 것들에 대하여ㅡ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질문하기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 괴로움.이란 내게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닌 조이와 행복, 기쁨, 즐거움과 다르지 않은 것이 된다. 참 신기한 것이. 조금만 관점을 달리하면, 많은 것이 변화되는 걸 알 수 있는데, 스트레스받던 일과 인간관계도 내 안에서 변하면, 이미 해결되었거나 더 이상 걱정이나 괴로움이 아니게 되는 것이 있다. 결국 모든 것은 정말이지 내 안에 있구나.로 귀결된다.


39. 마흔의 초입에 와서야 나는 아주 조금씩 편안해지고 있다. 지난 10년을 다크 에이지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내 안의 동굴로 침잠하게 되는 암흑의 시대였다. 그 암흑의 시대가 있어 빛이 있을 수 있었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선물이고 행운이다. 이제는 잘 안다. 암흑의 시대란 빛을 만나기 위한 당연한 과정이었단 걸, 꼭 거쳐야만 하는 것이었다는 걸, 암흑의 시대란 결코 흑.이 아닌 빛과 다름 아니란 걸.


일하러 가기 전 보통은 10분에서 15분 정도 바깥에서 눈을 감고 명상을 하다 들어간다. 깊이 들어가든 아니든 상관없다. 일순간 주위의 소음이 더 이상 소음이 아닌, 아무 것도 들리지 않게 되는 것에 호흡을 통해 내 안으로 주의를 돌려 이 순간을, 지금 여기를, 알아차리는 것. 현존하는 것. 알아차림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렇게 눈을 뜨고 걸어나가면 내 걱정, 불안, 두려움은 사라지고 평온한 나, 나 자신을 존중하는 나, 타인을 존중하는 나, 나에게 친절한 나, 타인에게 친절한 나.로 변신하게 되는 듯한. 오늘 하루도 친절하자. 감사하자. 사랑하자. 용서하자. 이렇게 내 안의 나에게 말을 건다.


웃자.고 수시로 말을 건네는 건, 웃으면 정말이지 내 기운이 환해진다. 내 기운을 환하게 유지하면 그 어떤 것도 날 침범하거나 괴롭게하는 일이 줄어들게 한다.


내 안의 괴로움도 다 내가 만드는 것임을.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차분하게.자기 주문을 걸면 내 마음에 새살이 차오르듯 금세 기운과 마음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다. 목소리와 기운이 방방 뜨는 것을 경계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는 ok.의 마음, 다 받아들이겠다.는 마음. 고로 이제는 정말이지 초연한 마음으로 살아가보면 어떨까?. 살아보니 내 마음대로 된 것이 있었던가? 우연이 작용할 때가 더 많았다. 그러니 무엇을 갖거나 무엇이 되거나 하는 것에 집착할 것도 없다는 걸.


지난 몇 달 동안 활기찼던 시간보다 무기력한 시간이 더 많았음을 인정한다. 받아들여야 나아갈 수 있다는 것도. 그렇게 밍기적밍기적하는 사이, 미루는 사이 눈깜짝할 새 3월이 됐다. 자기 비난이나 자책보단 내가 직면한 문제를 제대로 보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그리고 그렇게 실타래를 풀듯 하나씩 하나씩 잘 풀어 나간다. 선택을 미루는 건 게으름이 아니었다. 무기력감도 아니었다. 본질은 두려움이었다. 그러니 자꾸 결정을 미루고 회피하고 지나온 것이었다.


3월의 초입에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자꾸 밍기적 밍기적 댈텐가? 다시 잘 나아가 볼텐가? 창밖너머 바라본 빗방울은 어쩜 이토록 차분하고 침착할까?


파리 조르주 퐁피두, 루브르, 오르세 미술관을 매일 같이 드나들었던 때, 퐁피두 미술관에서 괴기스런 형상과 색채감 가득한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내가 누군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앞으로 무얼하며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정말이지 모르겠어서 우왕좌왕하고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좌절감과 무기력감으로 몸과 마음이 무너져내렸던 때다. 루브르, 오르세의 수많은 명작들 앞에서 나는 왜 그토록 하염없이 서 있었는지.


지금까지의 내 삶은, 그 모든 과정은 결코 헛된 것이 하나도 없음을. 모든 순간순간이 절로 펼쳐졌고 나.를 살게 하기 위한, 나.를 숨쉬게 하기 위한, 나.를 성장하게 하기 위한 선물 보따리였음을. 나는 그렇게 지난 10년간 지리멸렬한 내면과의 만남,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여전히 나를 진짜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날 알아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는 여전히 나를 모릅니다.라고 하는 것이 내게 더 유리하고 사실이 그러하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바라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시원하게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지는 기분이다.

받아들임과 내맡김으로 나와 내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자.는 마음이면 무엇이 두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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